이애주ㅣ서울대학교 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

생명이 자연에서 태어났듯, 사람도 자연에서 태어난 한 생명으로 그 생명의 태동이 춤의 시작이다. 웅크린 태아가 폈다 굽히며 쉬는 숨이 생명력으로 이어지듯, 시종일관 굽히고 펴는 우리 춤의 숨쉬기는 나와 우주가 하나 되는, 사람이 곧 신이고 신이 곧 사람(人卽神 神卽人)이라는 원리로 우주의 기운을 주고받음이다.

태고적부터의 몸짓과 역사가 어우러져 오늘에 이른 우리 춤의 시원은 우리 민족의 시원과 같고 역사구조 또한 같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민족정신의 바탕이 천지인 정신인 것처럼 우리 춤사위도 하늘 땅 사람을 아우르는 삼태극 사위가 있다. 물이 흐르듯 바람에 흔들리듯 유연함도 자연만물의 움직임이며 보이는 동작보다 움직임 안에 함축된 정신을 더 중요시함도 춤이 우리 생활사와 같아서이다.

의식적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현대무용과 만년이 넘는 우리 춤은 같을 수 없다. 우리 춤은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라 하여 “춤을 익힌다는 것은 자연을 따르고 몸을 통한 수행(修道)으로 깨달음을 얻는다.”가 제일 정확한 표현이다.

‘춤’이라는 말은 ‘추다.’에서 온 우리말로 옛 문헌에는 ‘춤출 무(舞)’로 표현되어 있다. 무(舞)는 첫 번째 무(巫)의 의미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춤을 추는 형상의 글자로 하늘과 땅 우주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으로 굿춤이나 무당춤에 잘 나타나 있는데 모든 춤도 같은 이치다. 또 다른 의미의 무(武)는 무예에서 볼 수 있는 강건하고 역동적인 춤의 본성을 갖고 있다. 마지막 무(無)는 몸을 숙여 낮추고 자기 자신을 비우는 절 드림과 같이 무아(無我)·무심(無心)으로 외형적인 춤의 움직임을 통해 내면의 정신을 나타낸다. 舞·巫·武·無의 4무는 서로 조화롭고 융합하여 너나 할 것 없는 대동의 춤 세계를 보여준다.

전통춤은 불변의 진리를 찾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춤이며 수행이다

이런 우리 춤의 특징은 몸을 굽혀서 웅크리는 절로 시작해서 절로 맺는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예로써 마음을 비운 경지에서 풀어내는 굿춤이 대표적이며 역사와 지역 환경 특성에 따라 천지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풍물 춤, 춤과 재담 가락이 어우러져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탈춤, 유형만 남은 태껸이란 무예춤, 남사당패의 예술적이고 푸근함과 안정적인 아름다움이 으뜸인 곡예 춤, ‘손잡으면 천 년이요, 원으로 이어지면 만년’의 원무가 특징인 소리 춤, 춤추고 줄을 메고 당기고 응원하고 구경하는 모든 사람이 즐기는 놀이 춤, 홀로 추는 독춤(獨舞)으로 발전해 왔다.

독춤은 하늘과 땅사이에 중심 잡고 홀로 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의미로 전통문화재로 지정된 승무가 대표적이다. 승무를 보통 불교 춤으로 알고 있으나 인간사 희로애락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전통춤이다. 휘날리는 장삼 자락이 매우 긴 것은 억겁의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는 우리 춤의 또 하나의 미학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천지인의 움직임처럼 보일 듯 말듯 매우 느린 절로 시작해서 우주 만물과의 상생을 나타내는 승무는 연풍대 돌리기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이르면 자진모리에서 휘몰이로 가락이 격렬해지고 순리에 따르듯 흥겨운 굿거리장단으로 되돌아가 절로 마무리한다.

우리의 모든 전통춤이 신인합일의 춤이며 수행이고 생활이었다. 수행이라면 보통 산에서 도를 깨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실 삶에서 도를 통하는 것이 진짜 수행이다.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을 향해 길을 닦아 가는 과정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굿의 마지막도 긴 베를 반으로 가르는 길 닦음(修道)이다. 이 길 닦음이 바로 수행으로써 나 자신이 무엇인지 찾고 본질에 덧씌워진 욕망을 벗겨 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이는 단(丹)이나 선(仙)에서 수련을 통해 신인합일을 깨우침과 같고 그 깨우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으로 이어질 때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까지를 관통하는 철학, 이것이 바로 우리 춤의 근원적 실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