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각하다. 극한의 대립 상태이다. 진보와 보수 양측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화합을 말하지만, 실상은 상대를 억압할 힘의 우위를 추구할 뿐 현실은 암울하다.

이 같은 갈등과 대립은 정치 분야에서 가장 심각하다. 한국 사회는 프레임 정치와 가짜 뉴스의 남발 속에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소통과 대화, 협치도 단절되고 설득과 관용의 여지조차 없다. 그러니 가까운 가족, 친구 간에도 정치 이야기는 회피해야 할 주제가 되었다.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K스피릿 DB.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K스피릿 DB.

이러한 현실에 대해 역사학자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진보라는 용어와 개념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집단의 특정한 목적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지성계가 습관처럼 진보의 개념 또한, 스스로 찾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 결과 무엇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진보인가에 대한 혼란이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월 7일 개최한 갑진년 역사문화 특강에서 우리 역사와 사상에서 찾아낸 진보이론을 통해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진보의 개념과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특강을 바탕으로 윤 교수를 서면 인터뷰했다.

윤명철 교수는 이미 30년 전에 이러한 문제의 발생을 우려하면서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책을 출판한 바 있다.

먼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진보(Progress)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을 뜻하고, 보수(Conservatism)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을 뜻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 2024년 현재 새롭게 전개된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본격적으로 정치력과 사회력을 갖고 세를 과시하면서 이념, 세계관 등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빚고 충돌하는 중이다. 이러한 불쾌하고 우울한 현상은 천천히 해결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각각 어떻게 보는지
- 진보와 보수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 문제나 가치의 우열, 가치의 선악을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다. 다만 방법론의 문제이고 특히 운동성, 그중에서도 속도와 양에 관한 문제다. 속도가 빠르냐 늦으냐이고, 또 한 가지는 폭발적이냐 아니면 천천히 가느냐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는 원래 상호호혜의 관계이지 갈등 관계 또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상대적 요소인 보수와 함께 궁극적 상태인 그 자체가 아니라 달성하는 방법, 전략 등을 말한다.

진보를 과도하게 평가하고 오해하면 진보라는 용어를 선점한 세력에 의해 오용,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라는 용어와 내용을 폄하하거나 갈등과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가 좌와 우, 특히 정치와 연동되는 것을 막고, 특정 집단이 진보라는 가치를 독점하는 것을 저지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므로 진보라는 개념을 사회 전체가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진보의 개념을 어떻게 보는지 
- 진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 역사의 주체인 인간이 주어진 상황을 적절히 극복해 나가는 행위이자 현재보다 나아진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보는 시대 상황을 뛰어넘는 ‘절대선’과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상황이 더 나아진 상태로 진행된다는 의미이고, 둘째, ‘이익의 증가’라는 실제적인 측면이 있다. 전 시대, 전 단계에 비해 생산물의 총량이 증가되거나 자연에 대한 예속의 정도가 약화되는 것이다. 셋째는 인류사에서 일정한 단계에서 새로운 단계로 이행, 또는 비약하는 것을 진보라 한다. 넷째는 인간이 누리는 기본권의 범주가 확대되어 가는 것을 의미했다.

지난 2월 7일 윤명철 교수는 '우리 역사와 사상 속에서 찾는 '진보'의 성격- 홍익과 풍류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갑진년 역사문화 특강을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2월 7일 윤명철 교수는 '우리 역사와 사상 속에서 찾는 '진보'의 성격- 홍익과 풍류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갑진년 역사문화 특강을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우리 문화와 사상에서 한국에 맞는 진보이론을 찾아야하는 이유는
- 진보가 보편적인 개념이라면 진보의 논리를 왜 우리 역사나 우리 문화 속에서 찾지 못할까? 이게 역사학자로서 또는 지식인으로서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외세 의존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지식인들은. 모든 이론과 행위의 근거, 남을 설득할 때도 꼭 외국 것을 끌어온다.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를 경험하고 긍정적인 역사를 이루어 온 사실은 진보의 개념에 걸맞은 사상 체제를 가졌고 성공적으로 실행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다른 민족, 다른 국가들, 다른 문화권과 다른 점이 있다. 철저한 혈연공동체이기 때문에 갈등과 충돌로써 공동체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하면 우리가 과거에 찾고 가졌던 사상과 논리, 시스템 속에서 현재의 문제점들을 찾고 규명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검증된 모델, 이미 경험한 모델이 있다.

고구려 등 고대국가, 뒤이어 부족하지만, 고려시대까지는 공동체 의식과 다양성이 강하고 내부적으로 보수와 진보 등 사상과 발전 전략 등에서 갈등이 적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대의 생활과 세계관, 진보와 보수를 바라보는 인식과 문화, 사회체제 등은 우리의 시원과 직결된 원(proto)조선을 계승한 것임을 여러 사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조선의 사상 가운데 원형이자 핵심이 홍익인간 정신과 풍류정신이다.(윤명철 교수는 고조선을 원(原)조선으로 부른다)

진보의 모델로서 ‘홍익인간’의 구체적인 내용과 논리는 무엇인지
- 첫째는 철저한 ‘인간주의’를 지향해 진보를 실현했다. 널리(크게) 인간 사이 즉,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운 최초의 정치체인 원조선이 존재하는 목표이고 실천하는 사상의 핵심이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 세계관, 역사관을 논리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 인간은 고대 그리스나 근대 이후에 사용한 ‘인간주의(Humanism)’의 개체적 독립적인 ‘인간(Human)’은 아니다. 人과 人 사이 즉 인간을 주축으로 한 세상 전체를 의미하고 이는 전체론적 인간임을 표방한 것이다.

둘째는 ‘평등주의’와 ‘역할론’이다. 일연이 쓴 단군기록에는 ‘홍익인간’이라는 궁극의 상태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다양한 용어와 상징, 수리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각각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단군왕검의 탄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창조 사업을 집행한 상황을 표현한 논리이다.

환웅이라는 태양숭배를 하는 천손강림신화의 유목문화 집단과 곰(웅)으로 표현된 지모신 문화집단이 결합할 때 그들은 각각 자유의지로 자신의 의사에 따른 평등한 관계였다. 수동적이고 복속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웅은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청했고, 환웅과 상의해서 ‘쑥 1줌’, ‘마늘 20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는 것’이라는 변신과 타협의 통과의례 과정을 극복했다. 또, 임신하기를 원하여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하면서 신질서를 창조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변혁의 논리, 즉 운동성의 문제이다.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와 신문화와 신체제를 지향하는 ‘진보’라는 상반된 두 힘을 그동안 ‘정과 반’, ‘도전과 응전’, ‘1과 2’ 등 이원론을 제기하고 해결방법론을 제시했다. 특히,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자들은 정과 반을 대립적 투쟁적 관계로 설정했다. 즉, 사회적인 모순들이 양적인 축적이 되면 특정한 계기를 만나 질적 진화가 이루어지는데 그때 계급투쟁을 통해 혁명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단군 기록에서는 계급투쟁을 야기하여 혁명을 유도하지 않았고 체제의 전면적인 전복도 없었다. 집행의 주체자 또는 주도자인 환인과 환웅이 일방적으로 자기 질서를 강요하지 않았다. 통과의례 즉 예비 상황과 중간단계 등의 완충장치를 만들어 검증과 판단을 통해 협력할 준비를 갖추게 했다. 결국 3단계로써 결정체인 단군왕검의 탄생, 조선의 건국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갈등과 투쟁, 즉 토착 세력과 이주 세력, 구체제와 신체제 등의 상반된 힘과 관계가 ‘조화와 균형’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의 수용과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라는 ‘합일과 상생’이라는 결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