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박성수

서양문화의 홍수 속에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우리의 정신문화, 국학을 바로 알고 지켜 나가야


본시 우리나라에 국학이 있었다. 국학이란 우리 고유한 학문을 말한다. 현묘지도였다. 신라의 석학 최치원이 난랑(鸞郞)이라는 이름의 한 화랑의 비석에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다.(國有玄妙之道)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그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선사는 지금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도 즉, 고유의 학문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원리가 다 들어 있었다고 했다. 유교는 공자, 불교는 석가, 도교는 노자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인데 이들 삼교가 이미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니 매우 중요한 증언이었다.

옛날에는 학문이 종교형태로 존재했다. ‘도’ 라고 할 때 그것은 종교인 동시에 학문이요 또 수련이기도 했던 것이다. 최치원은 신라 제일의 유학자였다. 그의 증언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이 김부식의 ‘삼국사기’ 에 실렸으니 우리들 후손으로서는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김부식이 화랑 이야기를 하다가 국학에 대한 최치원의 말을 인용, 화랑도가 국학의 일부로서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려줬다.

국학에 대한 또 하나의 기록은 ‘삼국유사’ 에 들어있다. 원광법사가 신라에 ‘세속오계’ 가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세속오계란 유교 불교 도교 등 외래종교가 아니라 신라 고유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외국학이 아니고 국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광법사가 불교신자이면서도 신라에 본시 고유의 국학이 있었다고 했을 뿐 아니라 그 중요한 내용으로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생(生) 등 다섯 가지 예를 들었다. 이 증언 또한 후손으로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최치원과 원광법사의 증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연 스님 자신이 ‘삼국유사’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홍익인간’ 이란 말이다. 만일 이 말이 없었다면 국학은 영원히 의심받거나 인멸되고 말 뻔했다. 환인이 환웅을 태백산으로 내려 보내면서 홍익인간 하라고 당부했다고 하니 이 말이야 말로 태초에 로고스(말씀)가 있었다는 기독교성서 첫 구절의 원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역사는 홍익인간하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단군이 처음 한 말씀이 아니라 환인이 환웅에게 한 것을 단군이 이어받은 것이었다.

홍익인간이란 말씀으로 시작된 우리의 국학은 훗날 삼한과 삼국시대에도 이어져 계승 발전돼 이 때가 선도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선도는 이웃한 중국(한족) 등 여러 후진 민족에게 전파돼 또 다른 국학을 만들어냈으니 바로 불교 유교 그리고 도교이다. 기독교도 영향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현묘지도에는 삼교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으니 우리 국학이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 쉬웠던 것이다.

그 실례는 바로 중국의 도교이다. 중국에 인도 불교가 전파돼 곳곳에 사찰이 들어서서 민중이 감동하자 이에 반발한 지식인들은 노자라는 가상인물을 설정, 그의 가르침을 도교라고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교는 사실 우리의 선도를 빌어 성립된 종교였다. 그래서 도교는 우리의 선도와 가장 가까웠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 역시  선도(仙道)와는 잘 융합돼 오늘의 한국불교로 발전했다.

이처럼 우리의 국학은 중국과는 무관한 동방의 나라, 한국(桓國) 또는 일명 진단국(震旦國)에서 발생했고 ‘후진국’ 인 중국에 수출됐다. 중국 문화는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니라 동방에서 우리 국학을 모방해 비롯됐다. 중국의 상고시대인 삼황오제의 역사도 알고 보면 우리의 역사였다.

우리의 국학은 지금 서양문화의 홍수 속에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우리 고유의 국학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을 다녀간 한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떠났다.
“한국의 여성들이여! 왜 서양을 모방하시나요. 한국은 한국 나름의 역사와 문화가 있으니. 거기서 우러난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배우십시오”

필자는 한국의 남성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은 외국학만 하지 말고 국학을 하시오. 그리고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가 무엇인지를 공부하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