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1,2 표지. 이미지 민음사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1,2 표지. 이미지 민음사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는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번스, 1819~1880)의 《미들마치(Middlemarch)》(1870~1871)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436・437번)으로 출간되었다.

《미들마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욕망,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의 명암을 포괄적으로 고찰한 대작이다. 1832년의 제1차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인 즉 1830년대의 영국 중부의 한 지방도시 미들마치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로 ‘지방생활의 연구(A Study of Provincial Life)’라는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특정의 개인을 중심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조지 엘리엇은 가상의 소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결혼, 종교, 선거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극적 사건들을 촘촘하게 전개한다. 그래서 《미들마치》는 그 주제들의 방대함과 등장인물 하나 하나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세밀한 필치로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새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풍경화라는 찬사를 받는다.

《미들마치》에서 한 인물의 이야기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와 여러 갈래로 교차하고 상호 연결되어 있다. 촘촘한 이야기 구조와 전지적 화자의 방백 같은 내러티브 기법을 통해 조지 엘리엇은 한 지방 도시와 그 주민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낸다. 조지 엘리엇이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1860년 말은 영국의 산업화와 제국주의적 기획이 절정에 달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전, 선거권 개정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철도 부설 사업이 시작되며 가톨릭 해방령으로 종교 논쟁이 가열되고 의회가 해체된 후 총선을 치르면서 귀족에게 제한되어 있던 선거권이 일반 서민에게 확대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변화를 모색하는 에너지가 꿈틀대기 시작하는 소도시 미들마치에 제각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화의 근원을 연구하면서 정작 당대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 무지하고 지엽적 확신에 매몰된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 첫 번째 결혼에서 쓰디쓴 절망을 겪었음에도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유산을 포기하며 또 한 번의 결혼과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는 도러시아, 질병의 획기적인 치료를 꿈꾸며 의료 개혁을 추구하는 터시어스 리드게이트, 대학까지 마치고도 성직이 적성에 맞지 않아 갈등하는 프레드 빈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한치의 불의도 눈감지 않는 굳건한 메리, 이들은 내적 결함이나 외적 제약으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변화에 맞춰 도전하며 삶의 궤적을 그려 간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들마치》를 “성인을 위해 쓰인 극소수의 훌륭한 영국 소설 중 하나”라고 평했다. 울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전의 로맨스 소설들과는 달리 《미들마치》가 결혼을 다양한 역학 관계가 작용하는 사회 심리학적 결단으로 그린 것에 주목했다.

《미들마치》의 뼈대는 세 커플의 결혼 이야기다. 여주인공인 도러시아 브룩(Dorothea Brooke)은 여성의 독자적인 자아성취가 어려운 19세기에 자아성취나 주체적 삶을 원했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런 포부의 실현에 실패한다. 《미들마치》에서는 도러시아 브룩의 고귀한 꿈과 포부가 편협하고 불완전한 미들마치 사회에서 어떻게 좌절하게 되는지, 그녀의 꿈과 현실을 보여준다. 도러시아는 당대의 사회 규범 또는 제도적 제약 때문에 여자로서는 해내기 어려운 학문적 성취를 이상적인 결혼을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하려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재산과 신분, 나이 등 당대 기준에서 볼 때 누구나 그녀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으로 여기는 제임스 체텀 경의 청혼을 거절하고 주변에서 괴팍한 목사라고 수군거리는 27세 연상의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와 결혼한다. 도러시아는 훌륭한 학자처럼 보이는 45세의 캐소본 목사와 결혼해 그의 연구를 도우면 자신의 꿈을 간접적으로 실현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는 학자로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반려자로서도 이기적이고 옹졸하다. 그는 도로시아와 결혼한 것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위한 보조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로시아는 결혼 이후 남편의 연구를 도우며 그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캐소본은 그녀를 배제한 채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한다. 결국 도러시아는 행복한 결혼생활뿐 아니라, 남편의 학문적 성취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욕구에서도 실패하게 된다. 어린 아내에 대한 자격지심에 아내와 친분을 나누는 윌 래디슬로와 불륜을 의심한 캐소본은 만약 자신이 죽고 나서 도러시아가 윌과 재혼한다면 자신의 유산은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하도록 유언장까지 고친다. 도러시아는 자기 생각보다도 훨씬 '비열했던' 남편의 실체를 깨닫고 몇 주 뒤 윌과 재혼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국회의원이 된 윌의 내조자로 만족한다. 엘리엇은 이러한 가부장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성을 고발하고 나아가 병든 이 사회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탐구하는데, 이 치유의 과정에 공동체 구성원 간의 공감적 연대와 윤리를 강조한다.

터시어스 리드게이트는 혁신적인 의술로 의학계를 진보시키겠다는 높은 이상을 품고 미들마치에 온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자신을 아름다운 장식처럼 꾸밀 줄 아는 아내를 원하며 로저먼드 빈시에게서 그런 여자를 찾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들마치의 답답한 중산층 집단에서 벗어나 귀족 계층으로 상승할 기회만을 갈망하던 로저먼드는 리드게이트가 준남작의 조카라는 사실에 매력을 느낄 뿐이다. 이들은 애초에 상대의 내밀한 욕구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소망을 상대에게 투사하고 그에 따른 오해와 갈등만 키워가고, 결국 그들의 결혼은 ‘재앙’이 되고 만다.

어린 시절의 소꿉동무였던 프레드 빈시와 메리 가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가진 것이 없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인물들이지만, 상대에 대한 허상이나 자기기만 없이 계층적 차이나 편견을 극복하며 관계를 일구어 간다. 프레드는 매력적이지만 경제관념이 없는 무책임한 청년이고, 메리 가스는 존경받는 토지 중개인의 딸이다. 프레드는 메리를 줄곧 짝사랑하고, 현명한 메리는 프레드를 좋아하면서도 무모한 행동으로 늘 빈곤을 겪는 그의 자질에 의구심을 품는다. 메리는 프레드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프레드는 메리 가족의 반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메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한다.

조지 엘리엇은 《미들마치》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결혼의 다양한 양상을 다루는데, 그것은 결혼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 사회적 기대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를 탐구할 수 있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들마치》는 빅토리아 시대 평범한 한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 개인의 선택이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 또는 사회 구조 자체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문학적으로 고찰한, 한 시대의 정밀한 초상이자 독창적 탐구이기도 하다.

《미들마치》에서 재현되는 현실은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 그리고 이들이 갈등하고 공존하는 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은 매우 복합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지속되는 유기체의 그것으로, 이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관찰의 결과물이다.

《미들마치》는 뛰어난 사실주의와 심리적 고찰로도 독보적인데, 등장인물에 대한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전형적 묘사에서 확연히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의 차별성과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은 작가 조지 엘리엇이 살았던 특별한 환경에서 비롯된다. 조지 엘리엇은 여성 작가가 공식적으로 남성 작가와 동등한 인정과 존중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대에 남성적 필명으로 글을 쓴 여성 작가였다. 《미들마치》는 여성작가로서 조지 엘리엇의 특수한 조건, 사회적으로 제한된 기회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 작가로서 기울인 지적 단련의 과정에서 탄생했다.

엘리엇이 추구했던 사실주의적 미학에 따르면, 당대의 문학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목가적 풍경이나 영웅적 인물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진실이 아니다. 엘리엇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인물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정교하게 그리고자 한다. 엘리엇의 심리적 사실주의 미학은 삶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감수성의 결실이고, 이런 미학을 통해 엘리엇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도덕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장르로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