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는 오랜 기간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수년간 교류하며 서로의 문제의식을 교환했다. 이 과정에서‘팬데믹 시대의 아티스트’에 관한 주제로 나눈 대화가 전시로 결실을 맺었다. 티파니 리(Tiffany Lee)와 정윤영 작가의 이야기이다.

 

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2),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2),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서울 성수동에 올해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는 개관전으로 티파니 리(Tiffany Lee)와 정윤영 작가의 2인전 “In the waiting line”을 개최한다.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온 정윤영 작가와 다매체를 응용한 작업을 이어온 티파니 리 작가는 많은 것이 불투명해진 고립의 시대에 어떤 기다림으로부터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냈을까?

2월 12일(토)부터 20일(일)까지 9일간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예술가로서 또한 팬데믹 시대의 한 개인으로서 막연한 기다림에 관한 문제의식을 전면적으로 다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20여 점의 영상, 설치, 회화 작품들은 예술적 신념과 사회적 상황의 간극에 주목하여 풀어냈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를 모티브로 막연함과 망설임, 기다림 등에 관한 작가적 해석이 돋보인다.

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티파니 리는 2012년부터 유토피아적 기호들을 재전유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해피 버스데이 프로젝트 (Happy Birthday Project)’ 역시 ‘생일’이라는 특정 기호를 재전유하는 과정을 담은 작업인데, 알록달록한 구성과 함께 생일축하노래까지 곁들여졌지만 어쩐지 이 장소에 들어서서 체험하는 이들에겐 낯설고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누구의 생일인데요?” 이 작업에서 달콤한 아이콘들이 부유하는 설치작업은 반대 벽의 영상이 되고, 이 영상은 다시 평면이 되며, 평면작업은 설치의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영상에서 느릿하게 울리는 생일축하노래는 얼핏 설치물과 어울리는 것 같지만, 반복해서 재전유된 기호들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는 없다. 매체가 옮겨가는 과정에서 생일이라는 기호에 관한 재전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해피 버스데이 프로젝트’는 코로나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식과 실존 사이의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웠던 작가의 감각을 매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했다. 이 작업의 의도는 기약 없는 기다림 중에 열려버린 생일파티의 황당함이다. 누구나 아는 생일축하 음악은 도대체 누구의 생일을 축하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생일’이라는 언어적 기호를 구현한 이 작업은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라는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티파니 리는 이 작업에 대해 “팬더믹 시대에 생과 사의 중간에서 또는 삶과 예술의 중간에서 여전히 서성이며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목적 없이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생일이라는 기호를 재전유한 이 작업을 통해 각자가 기다리는 것의 실체에 대해 떠올리며 질문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정윤영,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 100x130cm,  2022(1). [사진=​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정윤영,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 100x130cm, 2022(1). [사진=​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미술대학 졸업 후 약 10년 이상 작품 활동을 이어온 정윤영 작가는 이번 전시 "In the waiting line"에서 팍팍하기 그지없는 창작자로서의 삶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예술고등학교와 미술대학을 거치며 오랜 시간 함께 미술을 공부했던 수많은 동료는 예술과 함께하는 삶에서 자취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조적으로 풀어냈다. 정윤영 작가는 “이런 모습들이 때때로 남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짓으로 보여졌을 지도 모르고, 무모하고 형편없어 보였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에게 창작은 선명하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꽤 절실한 것이었고, 투박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이었어요.”라고 한다.

"솔직하게는 ‘돈벌이’도 아닌데, 절대 시간이 필요한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을 전시에서 모두 선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서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낄 때가 꽤 있었어요."

 어딘가에 적을 두지 않은 채 부유하듯 살면서 작업을 이어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불안정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예술가가 처한 척박한 현실은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전시 공간으로부터의 소외, 사회적 고립 등으로 이어지며 그저 더 치열하게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정윤영,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 100x130cm, 2022(2).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정윤영,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 100x130cm, 2022(2). [사진=피어 컨템포러리(pier contemporary) 제공]​

두 작가가 경험한 내용을 공유하며 출발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전시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팬데믹 시대의 딜레마를 예술적 맥락으로 끌어들였다. 피어 컨템포러리 이승연 대표는 “이 공간은 전통적인 장르 구분을 벗어난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을 알리는 것에 있어요.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이고 직관적인 현대예술을 대중에게 알리고,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질문들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피어 컨템포러리의 운영 방향은 개관전인 "In the waiting line"의 기획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티파니 리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단체전에도 수차례 참가했다.

정윤영 작가는 동국대학교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회화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작가의 담화에서 출발한 2인전 "In the waiting line"은 새로운 실험을 진취적으로 이어가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 ‘피어 컨템포러리(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일로 10가길 18 지하 1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