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조사기간을 거쳐 영국의 이라크전쟁에 관한 ‘칠콧(Chilcot) 보고서’가 지난 7월초에 발표됐다. 2003년 이라크 참전을 결정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정책이 정치적으로 타당했는가를 이라크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공개조사(public inquiry)’한 결과이다. 보고서는 당시 영국의 이라크 참전은 합당하지도 않고 잘못된 정보로 내려진 결정이었음을 밝혔다.

영국의 ‘공개조사’는 총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종의 "정치적 재판"이다. 시작은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이라크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조사위원회는 정부가 내린 결정임에 불구하고 150억 원이나 되는 비용을 들여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고 문제를 인정했다. 그리고 결과가 발표되자 전 블레어 총리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어떤 예외나 변명도 없이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는 자세로 입장을 해명했다.

영국사회가 보인 이러한 모습들은 왜곡된 정보로 일어난 6년의 전쟁 동안 영국군 179명, 미군 4,487명이 전사한 반면 이라크인은 15만 명이 숨지고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역사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양심, 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균형 감각이 최소한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테러와 폭력, 착취와 억압으로 일어나는 증오와 분열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역사란 이런 끝도 없는 집단 이기주의가 유발한 전쟁과 분쟁 속에서 결정된 승자와 패자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실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진실은 국가와 종교,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범주를 초월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종교와 종교 간의 대화가 끝이 없듯이 국가와 국가 간의 역사 역시 아무리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도 갈등과 반목으로 시작한 결말은 끝이 나지 않는다. 법과 법이 싸우고 신과 신이 싸우는 것이다. 그러다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법도 신도 아닌 힘을 지닌 강자가 모든 것을 주관하게 된다.

승자와 패자의 역사 속에서 패배자에게 승리한 자는 개척자나 통일의 업적을 이룬 영웅이 아니라 침략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류사를 훑어본다면 모두가 공감하는 세상은 꿈조차 꿀 수가 없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새로운 문명시대를 맞이하려면 수없는 전쟁으로 얼룩진 시간들 속에서 해원할 수 있는 큰 정신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구를 중심 삼는 사상, 지구촌 사상이다. 새로운 가치, 큰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구촌 사상은 기존 역사관에 내재한 마이너스나 플러스의 개념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0점 의식’이 되어 바라보게 한다. 저울의 눈금이 영점일 때 제대로 된 측량이 가능하듯 영점을 회복한 의식의 눈으로 보면 지나온 역사는 같은 지구에 태어나서 살기 위해 서로 겪었던 생존투쟁의 결과였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이해가 국가와 종교, 강자와 약자의 틀을 넘어선 지구시민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간이 찾은 제도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의 대결구도를 극복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참된 민주주의란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하며, 자연 파괴로 지구 전체에 만연한 문제들을 하나 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느 특정 종교나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시작은 인성회복에 있다. 자연과 교류하며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기 자신이 자연이라는 우리 모두의 자각이 지구시민으로서 화합하고 연대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자유로운 왕래와 국경 개방이 허용된 적이 없다. 인류의식 전체가 밝게 깨어나 지구촌이 형성될 수 있는 이 여명(黎明)을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뇌교육 창시자
국학원 설립자
한국인 최초 美 4대 일간지 베스트셀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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