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금융사기에 당했나 봅니다. 전화요금에 40만원이 추가로 부과됐네요.”
지인이 이런 하소연을 했다. 아무리 많이 나와도 매달 10만원이 넘지 않는다는 지인. 전화 받고 문자메시지 확인한 일밖에 없는데, 40만원이 더 나왔다. 그도 모르게 스미싱에 넘어간 거였다.
그는 요즘 모르는 번호에서 오는 전화는 받지 않고, 문자메시지는 읽지 않고 삭제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오면, 휴대폰이 아닌 유선 전화로 걸어 상대방을 확인하는 습관도 새로 생겼다.

금융기관이나 검찰, 경찰 등 정부기관을 사칭해 금융기관 계좌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빼내가는 보이스 피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한 금융사기도 심각하다. 휴대전화에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면 악성애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소액결제가 되는 스미싱이라는 신종 사기로 극성을 부린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에 맡겨둔 예금을 통째로 빼내가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어떻게 빼내는지 금융기관조차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은행 예금 잔고를 수시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지경이 됐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니 국내 금융기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발생하는 금융사기를 보면 예금주 개인이 대처해야 할 단계를 넘어섰다고 생각된다. 주의한다고 하지만 그 수법이 날로 교묘해져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타인에게는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절대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불안해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그 틈새를 파고드는 범죄수법에 곧잘 넘어가는 것이다.

이제 개인이 아무리 예방 조치를 잘해도 금융기관이 나서지 않으면 금융사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이스 피싱 등 금융사기가 근절되지 않은 원인을 세세하게 따져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 애를 쓰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것은 금융사기가 계속 되는 데는 금융기관이 대포통장을 계속 발행하기 때문이다. 대포통장은 예금통장의 명의자와 사용자가 다른 통장이다. 실제 예금통장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그 통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경로를 추적해도 명의자만 드러날 뿐 사용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을 노려 탈세·금융사기 등에 대포통장을 주로 이용한다. 대포통장 양도를 막기 위해 전자금융거래법에 의거 처벌조항까지 두었다.

그렇지만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에도 대포통장이 4만5,000건(피싱사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16.3%증가했다. 지연인출제도,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 신분증 진위확인 통합 서비스, 대포통장 의심거래자 예금통장 개설절차 강화 등 각종 대책을 시행했는데도 10% 넘게 늘어났다. 대출사기 관련을 포함할 경우 8만4,000건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금융기관이 나서 대포통장 근절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대포통장 근절에 특히 은행이 이 노력에 더욱더 동참해야 한다. 우체국이나 단위농협이 의심거래 모니터링를 강화하면서 대포통장 개설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체국이나 단위농협에서 자주 발생했던 대포통장 개설이 이제 은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판단이다.

우리은행과 외환은행 등이 대포통장 뿌리 뽑기에 동참했다. 우리은행은 예금계좌 개설기준 및 통장 재발행 절차를 강화하는 종합대책을 24일부터 시행한다. 외환은행은 이미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모든 고객에게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받고 있다. 통장 개설이 까다로워지면 고객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예금계좌 개설 등을 어렵게 하는 것은 대포통장 근절 없이는 금융사기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예금자는 이러한 은행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도록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호응하여야 한다. 내가 거래하는 은행이 대포통장 근절을 어떠한 대책을 시행하는지 확인하고, 미흡하다면 근절 대책을 시행하는 은행으로 거래은행을 바꾸는 방법도 예금을 보호하는 방법일 것이다.
정부, 금융기관, 예금주가 함께 힘을 모아 이번 기회에 대포통장을 근절하여 금융사기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