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촌 고분에서 완벽한 백제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羅州 伏岩里 古墳群, 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에 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완벽한 형태의 백제계 금동 신발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을 확인하였다.

정촌 고분 발굴조사는 삼국 시대 복암리 일대 마한 세력의 대외관계와 세력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조사에서는 고분의 규모와 다양한 매장시설(돌방, 돌덧널, 옹관) 9기가 확인되었다. 올해는 고분 안에 만들어진 3기의 돌방무덤 내부 조사를 시행하여, 금동 신발, 금제 귀걸이, 금제 장신구, 마구, 화살통 장식, 화살촉, 옥, 토기, 석침(石枕), 개배(蓋杯, 뚜껑 접시) 등의 중요 유물이 확인되었다. 돌방무덤은 석재를 쌓아서 만든 무덤을 말한다.

▲ 매장 시설 현황과 위치. <사진=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금동 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ㆍ백제권의 초기 대형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내부 구조는 돌방 바닥 부분에서 천장 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 들게 축조하고, 출입구에는 석재 문틀을 만들었다.

 ▪ 연꽃과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완벽한 형태의 금동 신발 출토

금동 신발의 크기는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부착되어 있다. 특히, 신발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透彫)와 선각(線刻)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투조(透彫)는 금속, 목재 따위의 재료를 도려내어서 모양을 나타내는 조각 기법이며,  선각(線刻)은 선처럼 파서 새긴 그림이나 무늬를 말한다.

▲ 1호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우측 상단 용머리 장식 엑스레이사진). <사진=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이번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 신발은 용 모양 장식과 발목 덮개, 연꽃과 도깨비 문양 등의 장식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특히, 신발 바닥 중앙에 장식된 연꽃 문양은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하였고, 중앙에 꽃술을 새겼다. 도깨비 문양은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 형상화된 몸체 등이 연꽃 문양을 중심에 두고 앞뒤로 2개가 묘사되어 있다. 그동안 금동 신발은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흥 안동 고분 등에서 발견되었으나,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수습되었다.

금동 신발은 백제와 관련이 깊은 유물로, 백제가 영산강 유역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시점과 토착세력과의 관계 등 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금동 신발은  백제의 지방 지배와 관련된 사여품(하사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금동 신발 이외에도 마구와 고리칼, 금제 장신구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유물은 남원 두락리, 월산리의 가야계 석곽을 비롯하여 경주의 황남대총 등에서 확인된 바 있어,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뿐만 아니라 가야, 신라와도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호 돌방무덤 내 입구 부분에서 출토된 호형토기. <사진=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돌방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법 등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 발굴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유물 수습을 완료하고, 올해 11월 말에 최종 발굴 성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현장을 방문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의 상호 연관성 등을 검토하여 국가지정문화재 확대 지정 등 최적의 보존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복암리 고분군은 1996년부터 5회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금동 신발, 은제 관식, 고리칼 등 1,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영산강 고대 문화의 보물창고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