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일본의 100년 내전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밀한 전략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조선을 경유하여 육지로 요동에서 산해관을 거쳐 명나라로 진출하여 중국대륙을 통채 먹으려고 했다. 그는 두 가지 전략을 짜고 전쟁을 일으켰다.
첫째, 조선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여 조선군의 선도 하에 중국 대륙으로 진출한다. 둘째, 조선 전역을 단기간 내에 점령한 후 명나라와 외교 협상을 통해 전열을 강화하고 사태의 변화에 따라 중국 대륙으로 진출한다. 글을 잘 모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각각 색깔(경상도 백국白國, 전라도 적국赤國, 충청, 경기도 청국靑國, 강원, 평안도 황국黃國, 함경도 흑국黑國, 황해도 녹국綠國)로 나누고 임진(1592)년 4월 13일을 기해 신속, 강력하게 침략하였다.

▲ 이순신 장군 밝은 달빛 아래 서다. <그림=장영주>

이에 맞선 49세의 이순신 장군은 다음해인 계사년 7월 15일, 여수에 전라 좌수영 본영을 둔 채 견내량을 낀 한산도로 전투본부를 옮겨 왜적을 무찌를 만반의 준비를 한다. 조선 조정에서는 화답하듯이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수군 치고의 직위를 신설하여 장군을 임명하였다. 장군은 수군을 통괄하며 전라좌수사까지 겸임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여 수만 석의 군량을 확보하고, 전선 건조, 각종 무기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군무에 정진한다.
그러나 1597년, 강화회담은 결렬되고 ‘도요토미’는 반드시 조선을 점령하려고 재차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이 와중에 이순신 장군은 누명을 쓰고 투옥되고 선조에게 잔인한 친국을 당하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다. 뜻있는 대신들의 간곡한 구명운동으로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하여 백의종군으로 풀려난다. 어머님께서는 아들을 마나러 오시다가 4월 11일 배위에서 돌아가시고, 장군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도원수 권율의 휘하에 배속되어 정개산성에 머문다.

비극은 계속되어 7월 16일 조선수군은 전멸을 한다. 총사령관이 원균 자신은 물론 이순신 장군 휘하의 역전의 용장들인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조방장 배홍립이 모두 전사하였다. 122척의 전함이 모두 격침되고 일 만여 명의 조선수군은 모두 죽어 사실상 궤멸당했다. 장군은 실태 파악을 위하여 무너지고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슬러 고된 장정을 하던 중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다. 결국 장군은 어머니를 여윈 상중에 더구나 군인 수,  전함, 무기,  군량, 군수체계 등등 세계 역사상 가장 초라한 해군사령관이 된 것이다.

12일 후인 8월 15일의 '난중일기'이다.
‘식사 후에 열선루에 나가 앉아 있으니, 선전관 박천봉이 유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8월 7일에 만들어진 공문이었다. (중략) 곧 잘 받았다는 장계를 썼다. 보성의 군기를 검열하여 네 마리 말에 나누어 실었다. 저녁에 밝은 달이 누각 위를 비추니 심회가 매우 편치 않았다. 술을 과음해서 잠들지 못했다.”

선전관이 전달한 선조의 지시는 장군에게 대규모의 일본 수군에 비해 ‘적고 고단한 조선 수군을 폐하고 권율이 지휘하는 육군에 편입되어 싸우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시인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했던 장군의 과음은 추석의 밝은 보름달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선조의 답답한 유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장군은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의 장계를 올리고 목숨으로 명량을 지켜낸다.

"임진년으로부터 5, 6년 동안에 적이 감히 충청 전라를 바로 찌르지 못한 것은 우리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이제 신에게는 전선이 12척이 있는바 죽을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만일 수군을 폐한다는 것은 적이 만 번 다행으로 여기는 일로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신의 걱정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전선은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우리를 감히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그날, 밝은 달을 보며 이렇게 기원했을 것이다.
“곧 있을 명량전투에서 소장의 목숨으로 나라를 지켜내게 도와주소서. 이로부터 38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병자호란을 당하지 않도록 하소서. 단군기원 4243년(서기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아예 잃지 않게 하소서. 단군기원 4283년(서기 1950년) 동족상잔의 6.25 동란의 참담함을 겪지 않도록 하소서. 소장의 명량 승리 이후 417년 후, 대한민국의 ‘세월호’가 진도에서 침몰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세월 호 때문에 나라의 정사는 멈추고, 나의 귀한 백성들이 또다시 핏물 넘치는 전장의 노예가 되는 고통을 받지 않게 하소서. 이윽고 하나 되어 조상대대로 이어 온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뜻을 펼쳐 인류를 명량의 거센 물살에서 구해내는 영원히 어여쁜 겨레가 되도록 하소서. 밝은 달빛, 오히려 남의 애를 끊나니. 무릇 국회의원의 충은 늘 백성을 향하게 하소서."

국학원 원장 (대), 전국민족단체 협의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