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산동면 일대에는 봄이 되면 노랑 물감으로 발라진다. 산수유꽃 때문이다. 산수유꽃은 산동면 뿐만 아니라 지리산 한쪽 품안에 안긴 구례군 전체를 노랑 물감으로 범벅을 해 놓는다. 지리산 자락의 그 노랑 물감은 요즘 아주 빨간 색으로 변해 있다. 단풍이 들어서가 아니다. 봄에 피었던 산수유꽃이 열매를 맺고 한여름 뙤약볕 세례속에서 살찌우고 가을 땡볕에 마침내 익혀 잎은 다 떨구고 빨간 열매만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가을에 빨갛게 익은 산수유.

‘산동(山洞)’은 말 그대로 ‘산마을’이다. 산수유는 군 단위로 따지면 구례군에서만 집중적으로 난다. 이웃 남원이나 곡성, 하동 또는 광양군에는 다른 나무는 많아도 산수유나무는 그렇게 집중적으로 모여있지 않다. 또 면 단위로 따지면 왜 그런지 산수유는 산동면 일대에만 특별히 모를 쏟아 부은 것처럼 무성하다. ‘산동’이란 이름도 산수유 때문에 붙었다고 한다. 한글로만 쓰면 구례 ‘산동(山洞)은 중국의 ‘산동(山東)’과 이름이 같다. 우리나라 산수유 주산지가 구례 산동이고 중국의 산수유 주산지도 산동이라고 한다. 두 ‘산동’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먼 옛날 중국 산동성의 한 처녀가 이곳 지리산 자락의 산간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그때 그 색시의 혼수 속에는 특이하게도 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었다. 그 나무가 바로 산수유나무였다.

▲ 산수유. <사진=구례군>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산수유나무의 학명은 Cornus officinalis이다. "두 번 개화한다."는 산수유꽃은 봄소식을 전하는 첨병이고, 요즘 빨갛게 익어 고추잠자리를 불러모으는 산수유 열매는 한 해의 갈무리를 알리는 전령사이다. 그리고 그 산수유나무는 내년 2월 중순께, 고드름이 채 녹기도 전에 다시 꽃망울을 틔울 것이다. ‘설중매’니 뭐니하여 매화가 맨 먼저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산수유가 훨씬 선배이다. 꽃이 피어 있는 기간도 여느 꽃보다 길다. 2월 중순에 핀 꽃이 4월 초에 가서 이울게 되니까 무려 40일이 넘게 피어 있는 것이다.

▲ 산수유. <사진=구례군>

"두 번 개화한다."는 말에도 근거가 있다. 일단 꽃받침이 벌어지며 그 속에서 꽃망울이 나오고, 곧이어 "꽃망울이 터지면서 노란색 꽃술이 나타나는 것이다. 꽃술은 대개 12-15개 정도인데, 꽃술 하나하나에 산수유 열매가 맺힌다. 다른 꽃들은 봉오리 하나에 열매 하나씩을 맺는데 산수유는 꽃봉오리 하나에 열매를 12-15개 씩이나 맺는 것이다. 산수유꽃은 빛깔이 화사한 뿐만 아니라 향기가 은은하고 진해서 꽃꽂이나 분재용으로 가지가 많이 팔리기도 한다. 또한 산동면 일대의 산수유꽃은 최량의 밀원이 되어 이곳에서 따는 토종 꿀은 전국 최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 봄에 노랗게 꽃이 핀  산수유.

산수유 나무의 번식은 쉽고도 까다롭다. 씨앗으로도 번식시키지만 꺾꽂이로도 번식이 잘 된다. 지대가 너무 낮지만 않으면 아무데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여느 과실수처럼 특별한 비배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우물이나 시내가 가까워서 땅에 물기가 많고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큰 곳에서는 더욱 잘 자란다.

그러길래 산수유 열매는 경기, 충청 지방에서도 나지만 해발 7백미터의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구례 산동 산수유 열매가 육질이 두껍고 시며 떫은 맛이 두드러져 국내 최고품으로 알아준다. 생산량도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웃돌고 있으며, 한 해에 14억~15억원의 수입을 산동면 사람들에게 갖다 준다.

산수유나무는 참고 기다릴 줄을 안다. 산수유 씨앗이 발아하기까지는 꼬박 2년이나 걸린다. 1년간 노천에 묻어 두어야만 다음해에 싹이 나오게 된다. 싹이 터서 묘판에 옮겨지기까지는 2년이 걸린다. 어쩌면 산수유나무는 사람에게 참고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산수유나무는 무척 청결하다. 해충이 전혀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톱이나 도끼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 단단한 목질과 사람 살갗에 닿으면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꺼끌꺼끌한 잎 때문일 것이다. 껄끄러운 잎이 만들어낸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다른 곳에 사는 사돈네가 어느날 산동 딸네집을 방문했더란다. 그는 똥을 싸러 뒷간에 들렀다. 뒷간은 참으로 엉성했다. 화장지 대신 지푸라기를 쓰던 시절이었겠다. 그는 뒷간에 늘어진 산수유나무 가지에서 잎을 따 위를 닦았다. 그는 그 후유증-쓰리고 가려운 증세에 여러날 고생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한다는 말이 “사돈네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나뭇잎까지 독헐 줄 내 몰랐다......”

산수유나무의 특성 가운데 돋보이는 한 가지는 계절을 미리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수유꽃은 열매가 익기 시작하는 가을에 꽃봉오리를 맺힘으로써 일찌기 ‘봄 예감‘을 시작한다. 그 꽃봉오리는 겨울을 견디고 나서 다음해 봄에 개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산수유꽃의 빛깔이 강렬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인 지 모른다.

 

산동 마을 사람들은 산수유 때문에 장수한다고 믿고 있다. 산수유 열매를 따서 갈무리하기까지는 두 달이 걸린다. 10월말부터 시작되는 작업에는 무척 잔손이 많이 간다. 촘촘하게 매달린 열매를 딸 때는 이미 맺혀있는 내년의 꽃봉오리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그 다음은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는 작업인데, 그 일이 쉽지가 않다. 낱낱의 열매를 입에 물고 깨물어서 씨앗을 발라내야만 한다. 오랜 세월 그 일을 하다보니 앞니가 견뎌내지를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동 노인네들의 앞니는 다 닳아져 있다. “그 대신 장수는 허는 갑디다. 씨빼기를 험시러 쬐끔씩 목구멍으로 넘어간 산수유 국물때문이지라우....” 산동 사람들의 고생담 겸 자랑이다. “옛날에는 겁나게 재미있었지라우. 산수유 딸 때가 되면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응께요. 그러고 그 때는 산수유 드시는 양반치고 아마 산동 처녀하고 입 안맞춰본 사람 없었을 것이요. 산동 처녀들이 입으로 깐 산수유가 전국 어느 곳이든 안 간 데가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산수유 열매는 술을 담그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정력강장제로 널리 애용돼 왔다. 산수유에는 말산, 타르타르산, 갈산 등의 주성분이 들어 있어서 한방에서느 지한, 해열, 혈증, 보허, 자양강장, 음위, 월경과다 등에 사용한다. 또 민간요법에서는 식은 땀 흘리는 데, 오줌 자주 누는 데에 산수유를 술에 쪄서 달여 먹기도 한다.

요즘 어느 시골에 가더라도 그곳의 특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무슨 무슨 ‘아가씨‘를 뽑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주에 ’감귤 아가씨‘, 금산에 ’인삼 아가씨‘, 무안에 ’양파 아가씨‘는 물론이고, 고추로 유명한 경북 영양에 가면 ’고추 아가씨‘가 다 있다. 아가씨가 고추 달고 나와서 나체쇼라도 하자는 말인가? 이게 다 일본의 ’일향 일품 운동‘을 본 딴 것에다가 여성의 상품화를 가미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산동에는 정말 ’산수유 아가씨’ 다운 <산수유 처녀>가 있다. 산동 사람들이 ‘산수유 처녀’라고 부르는 여성은 <산동애가(山洞哀歌)>의 주인공으로 신동면 중동마을에 살았던 백부전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열아홉살 나이로 여순사건의 여걸이었던 모양인데, 국군이 들어온 뒤 ‘폭도’로 몰려 포승줄에 묶인 채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조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부른 노래가 오늘날 산동 사람들의 산수유 노동요인 <산동애가>라는 것이다. <산동애가>는 중동 마을 홍수남 씨(여, 53살)가 ‘인간 문화재’처럼 잘 부른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
가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며절며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중간 대사)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스러졌네.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다리머리 들어오는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산수유 축제

 11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산동면 이장단 주관으로 지리산온천지구에서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 함께하는 가을여행'을 주제로 제5회 산수유 열매 체험 축제가 개최된다. 산수유 열매 따기 및 과육 분리 체험, 산수유 효소 담그기, 산수유 술 담그기, 산수유 비누 만들기 등 산수유를 소재로 하는 다채로운 체험행사를 마련했다. 체험 축제 기간에는 누구나 지정된 장소의 산수유나무에서 무료로 직접 열매를 딸 수 있으며, 원하는 경우 수확한 양에 따라 건피 산수유로 바꿔준다. 

전 한겨레신문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