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에 소재한 초등학교 좋은 아버지 모임(‘조아모’)에서 "아빠와 함께 가는 가을소풍"을 며칠 전에 자녀와 함께 다녀왔다. 과천의 가을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에는 때늦은 단풍이 한창이었고 낙엽은 떨어져 땅바닥에 오색 장판을 깔아 놓은 듯하였다. 미션으로 주어진 것이 가을의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담아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 것이었다.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에서는 사진 촬영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을 하늘에 닿으려는 듯 내가 점프하는 장면을 연출하자 아빠들은 자녀들과 함께 가을의 보물을 찾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남긴 보물을 찾듯이 불현듯 대한민국 역사가 남긴 보물은 무엇일까? 라는 화두를 갖고 걸었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빛날 찬란한 보물일까? 그 보물은 바로 지금의 한국인들이다. 그들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으며, ‘홍익’의 유전자와 함께 빛나는 얼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때로는 저항정신으로, 때로는 상생과 화합으로, 조화롭게 우리의 역사를 써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물이기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하였고, 지금까지도 역사논쟁이 끝없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논쟁의 중심에는 고조선이 있다. 이렇듯 고조선 논쟁이 치열해진 데는 대일항쟁기 때 조선총독부가 고조선 역사를 조직적으로 말살하고 왜곡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건국 초기의 역사는 그 기록이 많지 않다. 만약, 수천 년 전의 사건인데 그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이것은 그 기록이 조작되었거나 아니면 후대로 넘어 오면서 임의로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건국 초기의 역사에 대해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조선 논쟁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고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일제에 의한 역사 왜곡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들어서서 ‘조선사 편수회’라는 기관을 만들어 1932년부터 1938년까지 37권의 『조선사』를 펴내게 되는데, 이것은 한국의 역사를 일본인의 시각으로 편찬한 것이었다. 일본의 역사말살과 왜곡은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고,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대일항쟁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한 조직적인 역사 왜곡과 말살이 없었다면 오늘날 고조선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지는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 말살과 왜곡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피해의식을 심어주게 되었으며, 이것이 끝없는 역사 논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앞으로 역사 왜곡의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복원된 역사와 문화를 역사 교과서에 반영함으로써 세대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고대 역사에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며, 대립되는 가설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집트, 인도, 유럽 등의 고대 역사에도 여러 학설이 있지만 고조선의 역사처럼 뚜렷하게 대립되는 학설이 공방을 벌이는 것은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조선의 역사 논쟁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 논쟁을 중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신에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 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학설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치열한 논쟁 속에서 만나는 단군과 고조선은 과거의 인물이거나 나라가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는 듯 그 생동감이 느껴진다. 논쟁거리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논쟁의 양상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논쟁의 쟁점을 통해 논리가 선명한지 아니면 부족한지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고조선 역사 논쟁 자체가 훌륭한 논술 교재가 될 수 있다. 역사 과목이 딱딱한 암기 과목이 된 것은 생생한 논쟁의 실체를 감추고 특정 학파, 특정 학자의 견해를 마치 진리인 양 확정시켜 그것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끼리 논하는 역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편향적인 역사관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조선 논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고조선 역사가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고조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직접적인 조상일까 하는 물음조차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일항쟁기 전 우리 조상들은 고조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이고 단군이 우리의 조상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의 언어 습관 중에, “단군 이래 최대 ~ 이다.” 예를 들면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다.” 혹은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평가를 내 놓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단군 이래로”로 시작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은연중에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 조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론 등에서 심심하면 강조하고 싶은 내용에 '단군 이래 최대' 등의 문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곧 '유사 이래 최대'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고조선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고조선의 역사가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실제의 역사보다 축소되었을 수도 있다. 과장되었다면 과장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축소되었다면 축소된 과정을 밝혀야 한다. 논쟁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문과 예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고조선을 포함한 고대의 역사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영광스러운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가 교차된다. 역사는 부끄럽다고 덮을 수도 없지만, 영광을 과장해서도 안 된다. 과거 선조들이 경험했던 역사를 밝혀나갈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세계를 제대로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 논쟁이 계속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를 극복하고 동북아시아 시대의 평화 협력 체제를 이루기 위해서 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우익 진영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을 미화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국민 여론이 악화되어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우리는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언뜻 적극적인 대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정 요구를 반복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며 오히려 근본적인 대책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대일항쟁기 때 조선총독부는 단군과 고조선 그리고 삼국 초기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하고 말살했다. 우리 손으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선총독부가 왜곡하고 말살한 역사를 대일항쟁기 이전의 원형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평화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및 중국학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를 공동으로 연구할 필요도 있고, 역사 공동연구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먼저 우리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 연구를 시작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그 기반이 튼튼해지면 남의 손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될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형성 과정에 역사 교과서 공동 연구가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일본·중국이 역사 분쟁을 겪고 있듯이 독일·폴란드·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역사 분쟁을 겪었다. 가해국인 독일이 앞장서서 유럽 여러 국가의 역사 교과서 공동 연구를 주도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유럽연합이라는 정치·경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듯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역사 논쟁을 통한 새로운 검증 기준과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고 밝히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보물인 한국인들이 가져야 할 역사관이며, 그러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단기 4346년 11월 13일

 
학교법인 한문화학원 법인팀장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