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 단기연호(올해 4346년)를 쓰기만 해도 불법행위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까. 서기(2013년)가 익숙해진 것은 둘째로 치고,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자긍심을 대변하는 고유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불법행위로 법이 명시되어 있다니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8일 국회에서는 이종걸 의원(민주당)을 포함한 14인이 공동발의한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일한 공식 연호인 서기에 단기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다.

▲ 단기연호 병기사용 법제화 추진위원회는 28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단기연호를 서기와 함께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라며 "개정안 통과를 위해 단기연호 병기사용 법제화 추진위원회와 1천만 서명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의 온갖 만행을 겪은 뒤 만들어진 제헌국회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건국시조인 국조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 10월 3일 개천절을 민족의 생일로 경축하고자 국경일로 지정했다. '연호에 관한 법률'도 제정하여 고조선 건국된 해를 기준으로 하는 단기연호를 대한민국 공식연호로 지정했다. '교육기본법'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정하여 계승토록 했다.

 이는 제1, 2공화국에서도 이어졌다. 개천절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행사를 주관했고, 정부 공문서를 비롯해 모든 국민들의 일상에서는 '단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학교에서는 널리 만물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을 시급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기는 헌신짝처럼 버려지게 되었다. 1961년 당시 서구와의 수출사업을 하기에 단기(당시 4294년)는 혼란을 초래하고 선진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3년간 공식연호로 사용되었던 단기연호를 폐지하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서기를 우리나라의 공식연호로 단독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단기연호는 정말 구시대의 유물일까. 선진적이지 않은 국수주의적 문화의 흔적일 뿐일까. 공공기관에서 단기를 쓰면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단기연호가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 필요한 근거 여섯 가지를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1. 단기연호를 함께 쓴다고 하여 외교 및 일반행정을 비롯해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거나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키지 않는다.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이른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인 1961년(단기 4294년) 5월 16일, 당시 육군 소장 박정희의 주도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정변이 발생하였다. 입법 사법 행정부를 장악한 군사정권은 변화를 필요로 했고 그 한 방책으로 공식연호 변경을 택했다. 

 당시 제출된 '참모연구서'에 따르면 "사학계의 권위 있는 학자들이 단군기원의 신화적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서기사용에 적극 찬성하였다...단기연호를 폐지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문명국가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우리나라의 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발의된 법안은 이같은 우려를 반영하였다. 공식연호를 서기로 하여 교역이나 수출 등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서기를 사용하되,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서기에 단기를 함께 쓰는 것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선진적이지 못한' 민족고유의 연호를 우리보다 앞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일왕의 즉위와 함께 황위(皇位) 계승 직후 새롭게 원호(元號)를 정하는 것으로 일본만의 '연호'를 쓰고 있다. 올해는 '平成 25年 (헤이세이 25년)'이다. 간단한 이력서 한 장을 적으려고 해도 일본은 서기보다 '헤이세이'를 선호한다.

 일본이 자신들만의 연호를 강조하고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호는 아무나 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속 연호라는 것은 천자(天子) 즉, 천하를 다스릴 정통성을 인정받은 군주만이 제정할 수 있었다. 제국의 군주가 아니면 연호를 제정할 수 없었다.

 단기연호의 사용은 '선진화' '세계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세계 속 우리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는 위대한 상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 외에 중화민국, 태국, 네팔,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사와 전통 있는 나라에서는 자국의 고유한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중화민국(중화민국 102년), 이스라엘(유대력 5773년), 사우디아라비아〔헤지라력, HEGIRA 1434년〕, 태국·네팔(불교력 2557년),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력 2006년), 아프가니스탄(태양력 1392년) )

▲ 발의된 법안의 주요 내용

2. 단기는 불기(佛紀)나 공기(孔紀) 등과 형평성 문제 또는 특정 종교간 대립을 초래하지 않는다.

 서기는 예수그리스도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종교연호다. 하지만 단기는 고조선 건국일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건국기원이다. 종교연호와 민족의 건국기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이 민족의 건국기원을 챙기지 않으면 과연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이를 지키고 계승해나갈까. 

 게다가 서기에 건국기원인 단기를 함께 쓰는 것에 대해 일부 종교계와 학계에서는 불교의 기원을 말하는 불기와 유교의 기원을 뜻하는 공기 등과의 형평성을 비교한다. 하지만 이 역시 논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단기연호 병기사용 법제화 추진위원회에는 불교, 유교 등 5개 종단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또한 조계종단 외 18개 불교종단에서는 지난 1987년 7월 '범불교 단기연호 찾기 운동'을 추진한 바 있다.


3. 단기를 사용한다고 국수(國粹)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기연호를 폐지할 당시 정부는 단기는 세계화시대에 선진적이지 못한 문화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일부 사학자들은 단기 사용을 '국수주의'로 치부하며 단기연호 폐지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단기연호의 근간이 되는 고조선을 살펴보면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법으로 지정된 '홍익인간' 정신을 살펴보자. 널리 만물을 이롭게 하라는 이 철학은 국제화시대 다민족, 다문화, 다양성을 강조하며 세계를 아우르는 조화와 상생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외래 종교연호인 서기는 유일한 공용연호로 하면서 한민족의 고유한 건국기원을 쓰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라 하는 것은 다양성의 시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4. 단군기원은 신화적 비합리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일부 학계에서는 '단군기원은 역사가 아니다'라는 몰상식한 사고를 여전히 갖고 있다. 하지만 고조선은 고고학계의 연구성과로 그 실존이 입증되었다. 신화가 아닌 역사라는 것이 증명되어 지난 2007년에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등재되었고 200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실이 설치되었다. 

 《삼국유사》가 저술되기 1천여 년보다 훨씬 전에 중국측 문헌인《사기》,《한서》,《산해경》,《관자》사료에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에 단군, 단군조선 관련 사료가 약 390 여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연도에 대하여 《동국통감》,《해동이적》,《동국역대총목》등의 우리 문헌과「사고전서」,「조선세기」등의 중국 문헌에서 요(堯) 25년인 무진년으로 기록(B.C 2333년에 해당)한 것을 정부에서 채택하고 있다.


5. 어떠한 경우라도 공공기관이 단기를 병기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은 안전행정부 및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세계사적 흐름에 비추어 사용의 근거가 충분한 단기이지만 현행 규정상, 어떠한 경우에도 공공기관이 단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법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962년 1월 1일부터 단기사용이 폐지되면서 정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단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의 단기사용이 불법행위로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공공기관에서 공문이나, 각종 자료집, 현수막 등에 서기만을 사용해야 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단기를 함께 써서는 안 된다. 이는 안전행정부와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를 이유로 문화재청은 공용연호가 서기이므로 국보 1호인 숭례문 복구 상량문에 서기와 단기를 함께 쓸 수 없다고 유권해석 했다. 결국 국보 1호인 숭례문 상량문에는 민족의 기원 대신, 외래 종교의 기원만이 자리하고 있다.


6. 자랑스러운 반만년 역사와 문화를 가진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여 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남북간의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며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의 상징이며 문화유산인 단기를 사용함으로써 선진국으로서 높아진 국격에 걸맞는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자랑스러운 반만년 역사를 가진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나아가 남북 간의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1961년까지 단기연호가 우리나라의 공용연호였다. 게다가 1961년 단기가 폐지된 당시와 달리 이젠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서 국격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국사와 단기연호 사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탤런트 송일국씨가 추진하는 ‘국사 수능 필수과목 선정 100만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2011년에는 한민족역사문화찾기추진위의 ‘단기연호 함께쓰기 100만 서명운동’, 1987년 조계종단외 18개 불교종단의 ’범불교 단기연호 찾기 운동‘ 추진된 바 있다.

 최근에는 우리얼찾기국민운동본부에서 우리얼과 역사에 대한 바른 교육, 국사 수능 필수과목 선정, 단기연호와 서기연호 함께 쓰기, 개천절 공식행사에 대통령 참석 등을 골자로 한 전국민 100만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벌써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이 서명에 동참했다고 한다.

 남의 나이(서기) 빌려 내 나이(단기) 말하기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서기는 기존대로 사용하되, 민족의 정체성을 공고히하는 단기를 사용함으로써 21세기 진정한 글로벌사회의 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