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수업의 두 번째 현장 체험학습지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수업에서 배운 삼일절과 광복절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는 생생한 답사에 초중고등학생 40여 명이 참석하였다. 장맛비가 내리는 무더운 여름. 덥고 어두운 감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그 어느 때보다 당시의 고난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하여 1945년 해방까지 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 일제의 침략과 역사 배경을 설명하는 강사.

감시를 위한 높은 담장과 망루를 지나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보안과 청사가 나온다.  구한말의 세계정세와 일본의 식민지 수탈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대문 형무소가 만들어지고 증축되어 온 과정, 해방이후 민주화 운동 등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루기위해 희생된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된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고 이듬해인 1911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독립운동가 600여 명을 검거하고 투옥하면서 수감자가 증가하게 된다. 1940년대에는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자가 3,0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동영상을 보는 학생들.

민족저항실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을 보며, 민중들이 나라를 지켜냈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독립운동을 하신 많은 의사, 열사, 지사 등을 만났다. 서대문 형무소 최고령 수감자였던 강우규 의사.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66세의 나이에 서울역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과 유관순 열사에 관한 설명에서는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나와서 학생들이 더욱 눈을 반짝거린다. 해외에서 삼일운동을 기획한 몽양 여운형 선생, 국내에서 먼저 준비한 천도교와 손병희 선생에 관해 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전 국민이 무기없이 맨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에 대항한 최초의 식민지였던 조선! 세계사에서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던 삼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 수형기록표가 사방에 붙어있는 추모의 방.

2층 가운데 넓은 홀에는 독립운동가 수형기록표가 온 사방에 붙어있는 방이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5,000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많은, 이렇게 어린 사람들까지 잡아 가두다니...... 아픔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지하 고문실로 내려갔다. 물고문, 손톱찌르기 고문, 못상자 고문, 등을 보고 육성 증언 동영상을 본 학생들은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대소변을 받는 통 하나만 덩그마니 있는 좁은 독방에 고문을 받아 상한 몸을 한 마네킹을 보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 좁은 옥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중앙사.

직접 옥사를 체험할 수 있는 중앙사로 발길을 돌렸다. 감옥에 들어가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빙 둘러섰다. 사람수를 세어보니 22명. 덥고 습한 방에 다닥다닥 붙어서니 눈을 어디둬야할지 틈이 없이 둘러섰는데, 이렇게 좁은 방에서 40명이 갇혀 있었다. 그 설명에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탄성! 요즘 학생들 자기 방만한 곳에서 40명이 지냈다니 다들 충격받은 모습이다. 새벽부터 하루종일 군수품이나 물자 등을 만드는 일을 했던 공작사에서는 그 당시 고된 노동에 관한 기록들을 『백범일지』 등에서 볼 수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소인 사형장. 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가면 면회소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사형장이다. 그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릴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사형장 입구에 있는 미루나무를 붙잡고 울었다고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리는 나무가 무심히 서있다. 이곳 사형장에서 조국의 독립을 채 보지 못하고, 그리운 가족들도 보지 못하고 일제의 손에 죽어야 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형장 뒤에는 몰래 시체를 내다버리던 시구문이 있다. 고문으로 인해 훼손된 시체를 숨기기위해 뒷산까지 200미터에 달하는 굴을 파놓은 것이다.

▲ 가슴아픈 장소, 사형장 가는 길.

 가슴아픈 답사를 마치고, 한 여중생은 그동안 좋아하며 들었던 일본 노래를 핸드폰에서 당장 지웠다. 너무 억울하고 가슴아파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힘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많이 알아야겠고, 우리나라와 인류를 지키기 위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했다.

▲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 현장체험학습에 참여한 학생들.

함께 답사한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 강사들도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뜨거운 가슴이 살아났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애국지사들처럼 우리의 홍익정신을 세계만방에 알려 세계평화에 기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