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이 한마디로 인하여 역사학은 존재 이유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라는 '기록'을 남기는 자는 대게 승자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역사가 권력을 둘러싼 것이라면 더 하다. 어떠한 권력다툼이든 그 싸움의 승자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기록을 남긴다. 자연스레 패자는 승자에게 반역을 꾀한 악인(惡人)으로 서술된다.

 승자가 쓴  역사가 갖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승자가 만든 '선(善)-악(惡)'의 구도는 오늘날의 후손들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과거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기록'이기 때문이다. 승자에 의해 쓰인 역사서를 중심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수 세기 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민족의 역사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 패자 중에서도 패자다. 세계사 그 어디에서도 우리 조상의 눈부신 활약상을 찾아볼 수 없다. 통치 정벌 학문 과학 발명 문화예술 종교 사상 어느 한 분야 빠지지 않고 인류사를 발전시켜온 선각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역사를 움직인 세계 100대 위인'에서 한민족의 이름은 없다.

 우리는 정말 동아시아 그 끝에 자리한 작은 반도에서 속닥거린 민족에 불과한 것인가? 미국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것과 같이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아류에 불과한 것인가?

 동아일보에서 30년 간 '역사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조강환 생활경제TV 대표이사는 이 질문에 대하여 가장 확실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저서 <영웅, 세계사에 빛나는 한국인>(이하 <영웅>)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된 '한민족의 영웅'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자가 책을 통해 되살려낸 한민족의 영웅은 모두 33명이다. 뛰어난 통치력과 업적을 남긴 왕부터 민족사를 빛낸 장군, 한류의 시작이 된 학문과 예술계의 선각자, 불교 세계화에 앞장선 승려의 이야기까지 그 방대한 스펙트럼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깊이감에 놀라게 된다.

 33명의 영웅은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 장보고, 이순신, 이황, 원효 등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위인들이 절반, 나머지 절반에는 역사에 문외한이라면 조금은 생소한 위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영웅>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에 자주 등장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금나라 시조 황제인 김함보, 72개국을 정벌한 고선지, 중국과 일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승랑과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새롭게 이 시대에 살려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한민족의 명장 이순신 장군(제독)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하였다.  저자는 <영웅> 170페이지를 통해 "'충무공 자살설'은 믿고 싶지 않은 가설이지만 그 정황을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며 당시의 상황을 토대로 10여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차수약제 사즉무감 (此讎若除 死卽無憾) : 임진왜란 마지막 날 자정에 충무공이 노량해협으로 출전하기 직전 '조국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다'며 기원했다.
2. 면주선등 (免胄先登) : 충무공이 전함을 앞으로 몰고 나가 갑옷을 벗고 총알과 화살이 오가는 함상에 올라 지휘한 모습. 당시 왜군의 조총 사거리는 50미터 정도며 정확도도 낮았다.
3. 전쟁 이후의 상황 전개에 대한 불안감 : 의병장 김덕룡이 모략을 받아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 조정에 실망한 의병장들이 해산하여 숨어버렸으며 종전 뒤 훈공 다툼과 당파싸움에서 자신도 희생당할 것으로 내다보았을 것이다.

 10여 가지 근거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산화함으로써 임진왜란과 조선왕실의 모든 정쟁을 끝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30년 간 역사전문기자로 활약한 자신의 역량을 충무공의 마지막 순간을 보는 10가지 가설로 풀어낸다. 이 부분만으로도 이 책의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우리에게는 낯선, 그러나 인류사에서는 혁혁한 발자취를 남긴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72개국을 정벌한 명장 '고선지'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21세기를 사는 후손들의 머릿속에 한민족의 영토를 새롭게 그리게 한다.

▲ <영웅> 122페이지에는 고선지 장군의 원정도가 나와있다.

 당나라로 강제 이송된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은 파미르고원과 인도 서북지역 힌두쿠시를 무대로 동서고금에 찾아볼 수 없는 초인적 전적을 남긴 불후의 세계사적 명장이다.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를 장악한 인물이다.

 장군은 영국의 동양사학자 스타인 경과 프랑스의 샤반느 교수에 의해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이 학자들은 고선지 장군에 대해 "유럽이 낳은 그 어떤 사령관보다 더욱 훌륭한 전략과 통솔력으로 알렉산더에 비견되는 위대한 명장"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나폴레옹에 이르는 유럽의 위대한 장군들을 훨씬 뛰어넘는 정복자"라고 칭송했다.

  이처럼 뛰어난 '영웅'들이 넘치는 한민족이거늘 어째서 세계사 속 한민족은 그 흔적조차 찾기가 어려운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 중 하나를 '후세들의 역사의식 부족'에서 찾았다. 우리 선인들은 세계사의 흐름을 진전시킨 위대하고도 자랑스러운 위인들이지만 후세의 역사의식이 그에 못 미쳐 오늘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와 오랜 세월 영향을 주고받아온 중국과 일본은 한민족의 역사와 그 유적, 유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은 학자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부와 관영언론이 나서서 한민족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무수히 많은 침략에도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선조의 노력에 반해 오늘날 우리는 학교에서조차 역사를 '선택'하여 배우게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제대로 된 정부기구 하나 없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총리의 직속 담당으로 두고 관리하지만 우리는 민간에서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국민과 영토 없이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없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 역사 지키기는 영토 지키기와 마찬가지다."

 책의 마지막을 통해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언제까지 패자의 역사로 남아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내 역사는 뒷전에 두고 세계 위인들의 활약을 부러워만 할 것인가. 선택은 하나다.

<영웅, 세계사에 빛나는 한국인>
   - 조강환 지음                           
- 다할미디어                            
  - 2012년 11월 25일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