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 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중한국대사에게 아리랑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인데, 우리 대사는 어떻게 답했을지 궁금하다. 누구나 알다시피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전민요다. 민족의 정한이 깃들인 이 노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애창되었던 겨레의 노래이며, 한말 이후 일제 강점기 때는 겨레의 울분과 억눌린 민족의 한을 표출하는 저항의 노래였다.

아리랑을 언제부터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학자에 따라 아리랑의 의미나 기원도 설이 분분하다. 그 기원이야 어찌되었든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노래가 되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옆 사람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걸고 하나가 된다.

나는 외국인들에게 아리랑을 '나를 찾아가는 기쁨의 노래'라고 가르친다. 나는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얼이 영글고 영글어서 만들어진 영혼의 노래라고 믿는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원망가怨望歌이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민족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님이 삶의 영원한 근원, 참나, 커다란 민족적 자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아리랑을 불러 보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뭉클함이 애절한 가락이나 떠난 님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겠는가?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영원하고 근원적인 어떤 것에 대한 간절함과 그리움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불러줄 수 있는 노래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는 없을 것이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가 되려면 단순히 정한의 노래에 그쳐서는 안 된다. 끝없는 개인적, 집단적 수행을 통하여 자기완성, 전체완성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신이 녹아들어갈 때라야만 아리랑은 진정한 민족의 노래가 될 수 있다. 아리랑은 잠든 나를 깨우는 노래요,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깨우는 힘을 가진 노래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영적인 노래이며 인류가 함께 부를 수 있는 깨달음의 노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아'라는 글자를 한자로 보면 '나'라는 뜻을 가진 '아我'이다. '리'는 ‘이치를 깨닫는다’ 할 때의 '리理'이다. '랑'은 즐거울 '랑朗'이다. '아'는 평소에 보고 듣고 느끼는 나가 아니라, 평상시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근원적인 '나'를 말한다.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진짜 '나'를 일컫는 말이다. '아'를 깨달은 사람은 참나를 깨달은 사람이며 모두가 다 하나이고 형제인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 '나'를 알때 큰 포용력과 자유로움이, 사랑이 생겨난다. 참나는 생명 자체이고 사랑 자체이다.

'아리', 그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다. 아를 알았다는 얘기이다. '리'는 깨달음을 말한다. '랑'은 기쁨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참나를 깨닫는 기쁨이여' 이런 뜻이다. '아라리요'는 '나를 깨닫는 기쁨을 다 같이 누립시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의 의미는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여,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여, 나를 깨닫는 즐거움을 다함께 누립시다', 이런 뜻이 된다.

아리랑 고개에서 '고개'는 언덕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이 세상의 인생 역정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때 "아리랑 고개를 참 많이 넘으셨군요"하고 말한다.

'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리랑 고개를 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아'를 알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삶의 의미를 알게 되고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게 된다. 나는 이 '아'를 아는 사람을 '홍익인간'이라고 한다. 홍익인간은 '아'를 알고 이 세상의 모든 '아'를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 는 참 나를 버리고 거짓 나를 위한 욕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십리'는 이정표처럼 거리를 나타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숨은 뜻이 있다. '십'이라는 의미는 통합과 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것은 깨달음을 이루지도 못하고 장애가 생긴다는 뜻이다.

참 나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살게 되면 그 사람은 인간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성공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도 '아'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중심에 있는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병들고 아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수많은 갈등과 미움, 전쟁 속에 있다. 먹을 것을 놓고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단지 서로의 생각 차이, 정보의 차이 때문에 싸우고 있다.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는 토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힘을 가진 자가 이길 뿐이다. 가치관이나 문화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나'를 아는 길뿐이다.

우리 안에 ‘아’가 있다. '아'가 살아날 때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아'가 존재하는 것과 나타나는 것은 별개다. '아'는 존재하나, 나타나지 않고 실현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 '아'를 알리고 실현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얼을 회복하는 수련이며, 명상의 목적이며, 얼을 찾는 운동이다.

'아'를 찾고 실현하는 길이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도 '아'를 깨닫고 실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아'와 통한다. '아'를 만남으로써 유한한 인생이라는 비극을 창조라는 축복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힘이고 깨달음의 삶이다. 얼찾기운동으로 이 '아'를, 이 깨달음을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바란다. 무한한 창조의 근원인 '아'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아리랑을 불러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승 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뇌교육 창시자
국학원 설립자
한국인 최초 美 4대 일간지 베스트셀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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