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 너무 좋지요. 국학을 만나서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사랑하는 꿈을 꾸게 됐어요. 하지만 단지 좋아서 국학을 하는 건 아니에요. 좋은 것을 넘어 정말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지난 1일 인터뷰를 위해 부산국학원 김인식 운영이사(이하 김 이사)를 찾았다. 처음 봐도 늘 만나 왔던 사람처럼 편안한 느낌, 김 이사가 정겨운 사투리로 자신의 국학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 부산국학원 김인식 운영이사

"국학을 만나기 전 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어요. 1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올릴 때마다 내 안에서 바로 응답이 느껴질 정도였죠. 하지만 뭔가 갈구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 되는지 알려달라고, 제일 먼저 보이는 것에 내 인생을 걸겠다고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지나는데 국학건물 간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죠."

김 이사가 국학을 시작한 지도 올해로 13년 째다. 어렸을 적부터 다른 과목 공부는 몰라도 국사만큼은 만점을 받을 정도로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가 좋아한 것은 중국사. 하지만 국학을 접하면서 한국사에 관심을 두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 "국학 교육을 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하는 게 제 인생 목표지요"

"국학을 만나고 한국사를 공부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핍박을 받고 힘들게 살아왔어야만 했는가'란 생각에 민족역사에 대한 실망도 컸죠. 하지만 그건 한국사를 조금만 깊이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이에요. 국학을 계속 공부하고 명상도 하면서, 그럼에도 끊기지 않고 흐르는 맥이 우리 역사 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단군 할아버지는 왜 2000년 전 폐관(깨달음의 법을 폐하다)하시고 산으로 들어가셨나(일반적으로 역사에서는 산신이 되었다고 표현), 백성을 버리고 가신 것 같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외부로부터 핍박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한다.

결국, 공부하면서 느낀 건 단군 할아버지는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단 것, 나라가 위험에 빠져 위태로울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순신 장군으로 유관순 누나로 늘 함께 해왔었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분노와 실망도 느끼는 거에요. 현재 우리나라 학교 역사교육은 분노의 단계까지만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바로 식민사관이죠. 분노의 단계까지만 들추어내는 거에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민족이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리 없죠. 분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역사를 바르게 고찰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훌륭한 면을 보여줘야 합니다."

김 이사는 국학강의를 하면서 '국학 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날'을 기다린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국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홍익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 말이다.


✔ "내 한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희망을 던져줄 수 있다면"

김 이사의 국학 활동은 학생캠프, 중국 만리장성 반대 서명운동, 외부 국학 기공 지도, 국학 강의, 건강 강의, 3.1절 행사, 광복절 행사, 개천절 행사 등 다양하다. 그는 특히 소년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인성・국학 강의를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교육 하는 곳이 있어요. 분류심사원이라고 해요. 이 아이들은 여기서 어떤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뀝니다.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냥 내가 이렇게 살겠다고 하면 정말 소년원에 가서 자기 인생에 빨간 줄을 긋는 거에요. 하지만 자신이 학생일 때 학생의 본분을 되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학생은 판사가 학교로 돌려보냅니다."

그는 소년원에서 학생을 위한 건강 기공, 자신의 정체성 찾기 인성 교육, 국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주유소에 들렀는데, 거기서 일하던 사람이 꾸뻑 인사를 하길래 보니 예전에 소년원에서 저에게 국학강의를 받은 학생이더라고요. 그때 제 강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대요.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꼈다더군요."

김 이사는 주유원으로 일하던 그 아이 얼굴이 참 밝았다며 아직도 그 순간의 보람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 "운영이사요? 더 높은 꿈을 향하여 선택한 자리죠"

김 이사는 부산국학원 운영이사로 취임한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며, 이 직책을 맡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고 한다. 올 1월 인사 소식을 듣고 거부도 많이 했었다고.

"2월 인사발령이 나기 전 소식을 전해 듣고 굉장히 고민했어요. 마음이 심란해서 한겨울 밖에서 차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한참을 떨면서 생각했지요. 드는 생각은 '직책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 두 가지였어요. 직책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국학강의만 하며 청중에게 존경받는 모습, 직책을 받고 책임감으로 고민하고 힘들기도 할 모습이 풀칼라 영상으로 떠올랐어요. 그때 정말 '선택'이라는 단어가 화두처럼 내려왔어요."

그는 이제 '즐거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해야 할 일을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또한, 운영이사 직책을 맡았을 때 자신이 어떻게 더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 너무나 궁금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학 강사라는 자리에서의 행복과 성장드라마는 명확하게 그려질 만큼 안정되어 있었지만, 도전하는 기쁨은 없었다. 원래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했다던 그가 선택한 자리는 더 높은 꿈을 향한 것이었다.


✔ "국학의 통 큰 정신으로 비전을 위해 돌진합니다!"

부산보다 외침이 많았던 지역이 또 있을까? 부산 동래구에는 아직도 임진왜란 시대의 유골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조국을 지켜내기 위해 전방에서 온몸으로 적을 막아냈던 곳, 가슴이 동하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는 성향이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국학은 고추장이에요. 비빔밥에 고추장을 안 넣으면 제삿밥이 되듯이, 국학의 홍익정신으로 모든 사상과 사람을 아우를 수 있어요. 이런 국학의 통 큰 정신과 부산시민 특유의 돌격파 성격이 만나면 게임 끝나는 거죠."

김 이사 자신 역시 부산사람답게 머리보다 가슴이 깨어나야 움직이는 스타일이라며, 부산국학원의 발전을 위해서 운영진들과 함께 앞으로 돌진할 거라고 허허 웃는다.

▲ 부산국학원 운영진. 왼쪽부터 서재활 사무처장, 김인식 운영이사, 김성임 회원관리 팀장, 곽귀숙 재무팀장

지금은 시국학원밖에 없지만 앞으로 부산지역 16개 구군에 시국학원 지부를 세우는 것, 자신처럼 뜨끈뜨끈한 심정을 가진 핵심 국학 강사 100명을 키워내는 것, 부산국학원의 진정한 주인 국학회원 1만 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김 이사의 비전이다.

언젠가 1만 명 앞에서 홍익을 전하는 강연을 하는 것이 개인적 소망이라며, 운영이사이기 이전에 국학정신을 전달하는 사람으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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