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언어문자(言語文字)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桓雄)이 8음(音) 2문(文)을 수학(修學)하였다라고 부도지(符都誌)에서 기록하고 있다. 배달나라는 한국(桓國)에서 파견되어 세워진 나라로서 한국시대가 마감되고 배달나라가 한국을 계승한 것이 된다.

그래서 한국이 9족의 나라이므로 배달나라 또한 9족의 나라가 된다. 다만, 한웅천왕이 황하 중상류지역의 태백산을 수도로 삼아 호족과 웅족의 난을 진압하고 다스린 나라로서 나라의 중심이 옮겨진 것이 된다.

서기전5000년경에 9족은 씨족(氏族)을 넘어선 광할한 지역에 걸치는 대단위의 부족(部族)으로서 자치성이 정립되어 독자적인 언어문자가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통상적으로 문자보다는 말이 먼저가 될 것이다. 그래서 9부족의 한국시대가 약1,000년 이상 흐르면서 9족이 각 독자적인 언어집단이 되었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9족에는 9가지 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보이는 것이다.

반면, 문자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도 되는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즉 뜻을 통하는 수단이므로 언어의 수만큼 문자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웅(桓雄)은 배달나라 9족 중에서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을 포함하는 황족(黃族) 출신이다. 그래서 한웅은 이미 9족 중에서 일 부족의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던 것이 된다.

한웅이 8개의 언어를 배웠다라는 것은 9족 중 나머지 8개족의 언어를 수학하였다라는 것으로 타당성이 있게 된다.

한편, 한웅이 2가지 문자를 수학하였다라는 것에서, 배달나라 시대에는 2가지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 되며, 이는 상형문자와 소리글자가 분명해진다.

배달나라 시대 초기에 녹도문(鹿圖文) 즉 녹서(鹿書)가 있었다. 녹도문이란 사슴과 관련되어 생긴 문자여서 생긴 명칭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 명령(命令) 담당이며 재정담당이었던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냥을 나갔다가 암사슴을 쫓던 중 암사슴이 남긴 발자국에서 착안하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문자를 만든 것이다.

신지 혁덕이 만든 문자는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만든 문자이니 단적으로 상형문자(象形文字)인 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상형문자가 되는 것으로 초기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서기전3500년경의 태호복희가 용서(龍書)를 만들었으며, 서기전2700년경 치우천왕 시대에 화서(花書)가 사용되었고 이때 대학자였던 자부선인(紫府仙人)이 우서(雨書)를 만들었고, 창힐은 조족문(鳥足文)과 과두문(蝌蚪文)을 사용하였다. 이들 문자들은 녹서에서 변형발전된 상형문자가 된다.

서기전3897년경 한웅이 하늘나라 한국에서 지방의 태백산으로 파견될 때, 한웅이 전수받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상징하는 도형(圖形)은 원방각 즉 ○□△이다. 이 ○□△은 또한 모양을 본딴 글자이다. 즉 상형문자인 것이다.

○은 둥근 하늘과 둥근 태양을 나타내는 표시이며, □은 땅에 터를 닦은 모양이며 전후좌우 또는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표시이며, △은 서있는 존재인 사람을 표시한다.

이 ○□△은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모습으로서 도출되어 그려진 부호(符號)가 된다. 이 부호의 뜻을 말로 표현하였던 것이 분명하며, 그 말은 곧 소리로서 그 부호를 특징 지우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을 읽는 소리는 지금으로는 원방각 또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되며, 철학적 상징부호로 하늘, 땅, 사람이라 읽히게 된다.

그런데, 하늘, 땅, 사람은 어원적으로 볼 때, 바로 이 ○□△을 읽은 소리가 된다. 즉 ○을 읽었던 소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음되어 [한]이 되고 지금의 [하늘]로 된 것이다. 또 □을 읽었던 소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음되어 [땅]이 된 것이며, △를 읽었던 소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음되어 [서이]가 되어, [사람]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은 상형문자이면서 소리글자가 된다. 상형문자가 되는 ○□△이 소리글자임을 유추하면 배달나라 초기에 이미 소리글자가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 ○□△은 천지자연의 모습을 세 가지 즉 삼태극의 상징으로 타나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 ○□△에서 천지자연에 존재하는 모양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데, 배달나라 초기에 ○□△을 분해하고 조합한 모양으로서 ㄱ, ㄴ, ㄷ, ㄹ, ㅁ, ㅂ, ㅅ, △, ㅇ 등을 표시한 글자가 있었다라는 것이 되며, 이들 글자들이 독자적으로 혹은 상형문자에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가림토38자는 곧 배달나라 시대부터 있어온 글자를 종합정리한 것이 된다. 즉 가림토38자를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이 처음으로 단순히 만든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글자를 모아 같은 모양을 하나로 통일시켜 대표적인 글자를 도출함으로써 정리한 것이 된다. 그래서 가림토38자를 정선(精選)하였다라고도 하는 것이다.

배달나라 초기인 신시(神市) 시대에 투전목(鬪佃目)이 사용되었고 , 말기인 서기전2700년경 이후의 청구(靑邱) 시대에 산목(算木)이 있었다. 특히 산목은 수(數)를 나타내는 부호로서 지금의 한자(漢字)와도 다르지 않다.


9.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條)

배달나라 시대에 율법이 있었다. 율법은 백성들을 계도(啓導)하는 법이다. 특히 세상이나 지상에 남김이 없도록 하는 법이 있어 무여율법(無餘律法)이라 한 것이다.

세상이나 지상에 남김이 없도록 함으로써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여율법은 환부(鰥夫)가 조절(調節)하였는데, 환부는 무여율법의 집행을 맡은 그 직책의 명칭이 된다.

부도지(符都誌)에서 기록하는 무여율법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행적(行蹟)은 수시로 깨끗하게 구제하여 생귀(生鬼)가 모르는 사이에 맺히지 않도록 하며, 번거롭게 머물러서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간세상을 밝게 통하게 하고, 한 가지 장애라도 남지 않도록 하라.

2. 사람의 쌓은 공적은 죽은 뒤에 그 공(功)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며, 함부로 낭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게 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흡족하게 하여 한 가지 유감이라도 남지 않도록 하라.

3. 고집이 세어 집착하고 사악하고 미혹한 자는 텅빈 광야에 귀양을 보내어 살게 하여 수시로 그 행위를 돌아보게 하고 사악한 기운이 세상에 남지 않도록 하라.

4. 크게 죄와 잘못을 저지른 자는 해가 돋는 섬에 유배를 보내어 살게 하여, 죽은 뒤에 그 시체를 불살라 죄의 덩어리가 지상에 남지 않도록 하라.


여기 무여율법 4조를 보면, 생귀나 마귀가 없는 세상, 밝고 막힘이 없으며 아무 의혹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공동체의 선(善)을 위하여 악한 자와 범죄자를 귀양이나 유배를 보내어 추방시킴으로써,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귀양이나 유배를 보내는 법집행제도가 있었던 것이 되는데, 귀양은 텅텅 빈 사막이나 육지에 보낸 것이 되고, 유배는 고립된 섬으로 보낸 것이 된다.

무여율법을 조절하면서 집행을 한 직책이 환부(鰥夫)인데, 환부라는 글자에서 보듯이 세상의 일을 걱정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곧 환부는 종교(宗敎)의 직을 수행하는 자로서 교화(敎化)와 치화(治化)를 담당한 것이 된다. 여기서 종교란 지금의 구복신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되도록 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서기전2324년경에 고대중국의 천자(天子)가 된 순(舜)이 원래 단군조선의 신하로서, 단군왕검이 파견한 사자(使者)로서 인솔자였던 아버지 유호씨(有戶氏)를 따라 요임금을 토벌(討伐)하러 갔던, 환부(鰥夫)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 환부라는 제도는 후대에 쌍어문(雙魚紋)과 관련되며 목욕재계(沐浴齋戒)나 세례(洗禮)와도 직접 관련된다. 즉 쌍어문과 세례는 환부제도의 유습(遺習)이 되는 것이다.

쌍어문의 문양은 서기전7~8세기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타나며, 이후 인도지역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의 김해지역에서도 1세기경에 나타나는데, 역사적으로 배달나라 환부제도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세례(洗禮)는 배달나라 시대에 행해지던 계불(禊祓)이라는 의식이기도 하며, 목욕재계(沐浴齋戒)라고도 하는 것이 된다. 즉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세례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우리 역사에는 서기전7000년경의 한국(桓國) 시대부터 계불의식이 행해져 왔으며, 이는 일정한 종교의식으로 이어져 온 것이 된다.


10. 제천문화(祭天文化)

배달나라는 서기전3897년 갑자년 10월 3일에 개천(開天)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제천(祭天) 즉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으로 행사를 치른 것이 된다.

배달나라의 수도가 있던 신시(神市)의 중심이 되는 태백산 산정에는 천단(天壇)이 있어, 마고성 시대와 한국 시대의 천부단(天符壇)을 본따 만든 것이 되며, 산 중턱에는 신단(神壇)을 두었던 것이다. 이 신단은 후대에 선왕당(仙王堂) 또는 성황당(城隍堂)으로 다시 변음되어 서낭당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왔다.

천부단은 하늘님 즉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이며, 신단은 한웅이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상징하는 제단이 있는 곳으로서, 신단에는 특히 신단수(神檀樹)라는 신목(神木)이 있으며, 이 신목은 곧 한웅상(桓雄常) 또는 웅상(雄常)이라 불리는 것이다. 웅상이란 한웅천왕이 늘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웅상이라는 신목(神木:신단수)에는 천연색의 옷감이 걸쳐져 있는데, 고대중국의 기록으로 보면, 이들 옷감으로 해 입은 옷이 고대중국의 천자(天子)가 즉위할 때 사용되던 옷이 된다. 즉 배달조선의 천왕(天王)이 제후인 천자(天子)의 즉위를 축하하면서 하사한 것이 된다.

신단에서도 하늘에 제사 지냄은 물론 마을의 입구에 있던 지석단(支石壇)도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서, 특히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제단이기도 하다. 지석단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데, 고인돌이다.

천단, 신단, 지석단이 모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인 것이다. 조상신은 곧 삼신(三神)으로서 천신(天神)과 연결되는 것이다.

소도(蘇塗)에서도 제천행사를 벌였다. 소도는 천단, 신단, 지석단 외에 명산을 택하여 제천단을 축조한 신성한 지역이다. 신단(神壇)과 직결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국(桓國) 시대의 제도를 이어 배달나라 시대에도 소도제천을 행하였던 것이다. 소도를 순행하면서 수련하던 단체가 선인도랑(仙人徒郞), 화랑도(花郞徒)의 원류가 되는 천왕랑(天王郞), 국자랑(國子郞)이다.

소도(蘇塗) 제도는 역사적으로 볼 때 마고성(麻姑城) 시대의 궁소(穹巢) 제도에서 나온 것이며, 소도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곧 솟대가 된다. 솟대는 솟은 대, 즉 신성지역임을 멀리서도 보이도록 높게 나타낸 대이기도 하다. “소도”와 “솟”은 신성(神聖)을 나타내는 말로서 상통하는 말이 된다. 솟대에 앉아 있는 새는 기러기나 오리의 모습인데, 철에 따라 북쪽을 오가는 새를 조상신이 계신 곳을 오가는 것으로 대입한 것이 된다. 또 새는 하늘을 날므로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 생각한 것이 된다.

제천행사를 벌일 때 바치는 노래가 대표적으로 공수(供授)이다. 즉 하늘에 바치고 드리는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 “받드리“라는 의미이며, 이두식으로 두열(頭列 : 드리), 조리(朝離 : 됴리), 주리(侏離 : 듀리), 도리(兜里), 도율(兜率 : 도솔? : 드리)이라고도 한다.

소위 도솔가(兜率歌)라고도 불리는 공수가(供授歌), 즉 헌가(獻歌)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서기전1130년에 단군조선 25대 솔나 단군이 번한(番韓) 임나(任那)에게 천단(天壇)을 축조하고 삼신(三神)께 제사지내도록 하니, 이에 무리들이 둥글게 모여 북을 치면서 황운(皇運)과 풍년(豊年)을 노래한 것이 있다. 또 서기전795년 단군조선 34대 오루문 단군 때에 백성들이 풍년을 노래한 도리가(兜里歌)가 있는데, 이때 노래가사 중에 단군조선의 나라이름을 또한 “배달(박달, 檀)"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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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