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이라는 축약어로 통용되는 '포르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야동은 무엇일까. 포르노는 우리 시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춘화(春畵)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화공이 그린 것이었다. 사진 형태로 포르노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한 것은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래서 포르노를 보기 위해서는 청계천 노점상에 가서 외국의 잡지를 구입해야 했다. 구입하는 경로도 복잡하고 값도 비싸서 아무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노획물이 아니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달라졌다. 인터넷은 포르노의 황금시대를 열어놓았다. 마우스를 한번 클릭하기만 하면 전광석화처럼 재빨리 포르노세계(pornotopia)에 입장할 수 있다. 구태여 포르노를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온갖 매체에 범람하는 유사포르노물에 의해서 사방팔방으로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포르노는 이제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시간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국경과 나이, 인종, 성별을 초월해서 도처에 편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포르노에 대한 연구와 성찰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고 시급한 형편이 되었다.

건국대학 몸문화연구소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유럽에서 포르노가 혁명과 반항, 자유라는 고상한 개념과 연결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부장적 권위와 위선으로 봉인했던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성의 해방과 더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부풀었던 시절이었다. 억압은 무조건적인 惡이었으며 해방은 무조건적 善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반면 포르노를 성적 도착과 폭력으로 단죄하면서 "포르노는 이론이요, 강간은 실천이다"고 외치면서 금지와 검열, 법적 제제를 요구했던 도덕적 엄숙주의의 시기도 있었다. 또 성의 건강한 예술적 재현과 달리 포르노는 성의 대상화와 파편화, 비인간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세를 얻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상상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포르노를 옹호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명분의 차이가 왁자지껄하게 이론·정치적 각축을 벌리는 광장에 포르노가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산발적인 논의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포르노가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놓고 이야기하기에는 불편한 사안이었다. 예술적 에로티카가 아니라 비속하고 외설적인 야동을 다뤄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였다. 밀실정치처럼 광장보다는 밀실에 어울리는 주제였으며, 학문적 논의로 끌어올리기에는 2%가 부족하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학작품을 읽듯이 포르노를 ‘열심히’ 봐야 한다는 부담도 한몫을 했다. 그것은 학자로서 구미가 당기지 않을 뿐 아니라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또 연구자가 여자인 경우에는 혐오감의 문턱을 넘어야만 했다.

이런 주제를 놓고 학자들이 모여 학술대회를 연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가 '포르노(Ponrography)를 말한다'를 주제로 21일 오후 1시부터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406호 교수회의실에서 2012년 상반기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제1부 과학, 몸, 포르노에서는  황혜진 건국대 교수의 사회로 '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포르노(서울대 장대익 발표 / 김종갑 토론)' ' 여자도 포르노하고 싶다면?(동국대 이은정 / 김석)' '미래의 이브를 향해 한 발짝 - 기술과 포르노(건국대 김운하 / 이은정)'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고 종합토론을 한다.  
  이어제2부   환상, 실재, 법에서는 서유석 한라대 교수의 사회로 '포르노의 유혹: 환상의 힘(경희대 이명호 / 서윤호)' '실재에 대한 열정(건국대 김종갑 / 김운하)' '기호화된 몸에 대한 향유의지(건국대 김석 / 장대익)' '포르노를 허하라? - 포르노 규제 법리에 대한 고찰(건국대 서윤호 / 이명호)'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후 종합토론을 한다.                      

 이들 교수들이 포르노를 연구하는 데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몸문화연구소 김종갑 소장은 그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런 예술과 외설의 차이나 포르노의 역사, 통계자료와 같은 학문적 주제의 '우회로'가 아니라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즉 야동의 중심에서 야동을 말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는 다움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야동을 보아야 했으며, 또 보는 동안에 우리의 심리에 일어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살펴야 했다. 무엇보다도 야동에 취약한 현대인의 심리를 이해해야 했다. 그런 다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미래의 야동, 여성의 야동을, 야동의 환상을, 야동과 현대문화를, 야동과 법률을, 야동과 진화론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로 오늘의 학술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비록 각자 바라보는 관점과 대상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왜 야동을 보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될 수가 있다. 상아탑의 높은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고고한 태도나 도덕적 훈계조는 우리와 거리가 멀다. 포르노에 전방위로 노출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포르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증상을 담론화하는 것이 학술대회의 취지이다.  "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논문을 요약한다.

‘기호화된 육체에 대한 향유의지’
김석 건국대 교수(정신분석 전공)

본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관점을 포함해 육체적 쾌락이라는 관점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성욕의 논리만으로 포르노의 다양한 발전 양상과 끈질긴 생명력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포르노가 섹슈얼리티를 확장하고 변질시키기도 하는 심리적 양상을 ‘기호’, ‘향유’, ‘성화’라는 관점에서 짚어 보면서 에로티즘을 초월하는 포르노의 정념적 속성과 매력(?)을 밝히는 것이 실질적 작업이다. 이를 위해 육체를 기호화하는 다양한 방식의 대표적 예(: ‘파괴와 혐오의 대상’, ‘에로스와 충동의 시관적 동력으로서 대상’ 등)를 이론적으로 검토하면서 포르노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 해보고자 한다. 포르노의 대상이 되는 육체는 이미 생물학적 육체가 아니라, 사드가 탐닉하면서 법을 통해 길들이고자 했던 죽음 대상Thing으로 끝없는 환상, 망상과 좌절을 낳은 기호화된 육체라는 게 논지의 핵심이다.


‘실재에 대한 열정으로서 포르노’
김종갑 건국대 교수(문화비평 전공)

포르노는 “섹스란 무엇인가?” 하는 관심과 더불어 시작한다. 일찍이 이러한 관심이 없었던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재에 대한 열정과 결합되어 하이퍼섹스로 폭발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성의 실재를 보고야 말겠다는 욕망은 근대의 발명이며 후유증이다. 유니섹스의 유행과 더불어서 성전환까지 가능한 현대사회에서는 드러난 현상만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여자가 진짜 여자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대상을 진짜와 가짜, 실재와 현상으로 양분시켜 놓는다. 그러면서 여자의 진짜 성을 향한 시각적 욕망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포르노가 개입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실재를 향한 욕망을 무한한 욕망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여자의 진짜가 누드라면 누드의 진짜는 성기이고 성기의 진짜는 그것 내부의 살, 살의 실재는? 이러한 일련의 공제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의 성은 해체되어버린다. 그녀는 가짜 여자인 것이다. 물론 이 실망감은 또 다시 진짜 여자를 향한 욕망을 낳는다. 포르는 실재를 향한 욕망을 부추키면서 진짜 여자를 가짜로 만드는 무한퇴행의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미래의 이브를 향해 한발짝 - 기술과 포르노, 현대 사회에 대한 고찰’
김운하 서울대 교수, 소설가

포르노그래피도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통신 - 로봇기술의 발달로 생기는 첨단 포르노테크놀로지는이전의 근대적인 형태의 포르노와는 차별화된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급격한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초래하는 사회와 인간관계의 변화, 특히 개인들의 원자화, 고립화 속에서 첨단 포르노 테크놀로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고찰한다.

 
‘포르노를 허하라? - 포르노 규제 법리에 대한 고찰’
서윤호 건국대 교수 법철학 전공

 포르노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포르노에 대해 향유의 자유를 얼마만큼 허용하고 있는가? 포르노에 대한 법적 규제는 과연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포르노 규제의 법리가 가지는 성정치학의 차원은 무엇인가? 공동체가 허용하지 못하는 포르노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이 포르노에 대해 취하는 입장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어느 때보다 성의 자유를 구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포르노를 허하라”는 목소리에 대해 공동체의 법은 이제 무어라 답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현대 다원사회에서 포르노 허용과 금지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논란을 음란물 규제에 대한 현행법의 규정과 판례, 비교법적 고찰을 중심으로 법규제의 측면에서 포르노의 문제를 살펴본다.


‘여자도 포르노하고 싶다면?’
이은정 동국대 교수 현상학 전공

“여자는 로맨스하고 싶고, 남자는 포르노하고 싶다.”, “포르노 읽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와 같은 책 제목이 시사해주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여자의 욕망은 남자의 그것과 사뭇 다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들이 즐기는 포르노를 즐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자들이 포르노를 좋아하지 않게끔 진화심리학적 또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남자들이 즐기는 포르노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만약 여자들이 즐겨보는 포르노(예를 들면 야오이류의 포르노물처럼), 남자들이 즐겨보는 포르노가 따로 있다면, 이는 또한 어떤 의미에서든 남녀 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의 차이를 다시 드러낼 뿐이지 아닐까? 여자도 포르노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담론은 시작된다.


‘포르노, 외계인의 시선에서(Pornography: from an Extraterrestrial Point of View)’
장대익 서욷대 교수 진화론과 과학철학 전공

과학적 관점에서 포르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질문들을 던져봐야 한다. 포르노는 왜 진화했을까? 포르노에 대한 반응의 성차는 왜 있는 것일까? 포르노는 사람을 어떻게 중독시키는가? 포르노 소비 현상을 신경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포르노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이득이 있는가? 포르노의 확산은 대체 누구(또는 무엇)에게 이득이 되는가? 인간 본성의 진화의 측면에서 포르노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포르노는 미래에 어떻게 진화해나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하면서 여기서 나는 마음 및 행동의 진화의 관점으로 포르노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진화론적 인간론’에 마주하게 되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인간은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이고 연애 기계(mating machine)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밈 기계(meme machine)이다. 게다가 최신 신경과학은 이 밈 기계가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진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발표에서 나는 밈 기계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포르노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외계인의 시선에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포르노의 유혹: 환상의 힘’
이명호 경희대 교수 페미니즘과 문화비평 전공

 1997년 포르노를 둘러싼 검열과 표현의 자유논쟁이 한국사회에 불거졌을 때 맑시스트에서 자유주의자로 전환한 문화비평가 이재현은 "왜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섹시하지 않는가?"라는 반대심문을 던지며 한국사회에서 "포르노에 관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포르노 논의에 참여하려면  자기 몸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보수적 남성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도 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몸의 향유라는 것이다. 나는 이재현의 판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젠더화된 존재로서 개인들이 어떻게 몸을 즐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만큼이나 어렵다.  이 글에서 나는 남성들이 몸을 즐기기 위해 활용하는 '주류 이성애 남성 포르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왜 남성들은 반복해서 포르노 텍스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지, 그 매혹의 메카니즘을  읽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남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