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체험합니다. 담배를 끊으려 했던 사람은 "진동이 오고부터 담배 맛이 없어지면서 담배를 끊게 됐다. 이것을 하고부터 피로한 줄 모르겠다"라고 하고,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사람은 "잠이 잘 온다.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또 이것을 하고부터 기억력이 더 좋아졌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만을 위해서라면 석 달 이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웬만한 병은 석 달이 지나면 다 좋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호흡을 통해서 근본적인 자신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잡힐 듯 말 듯 하던 여러 가지 감각을 느끼게 되고,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단학수련은 어머니의 품으로, 우주의 품으로, 원래의 근본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수련입니다. 이 수련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고, 그 안에서 더 큰 어떤 세계와 연결되면서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무엇인가가 자신을 인도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입력된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보았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인간은 역사의 산물입니다. 역사에 의해 길들여지고, 길들여진 대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길들일 수 있는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 내 몸의 주인이 되는, 내 몸에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고 내 몸의 주인이 되어서 내 몸을 지배하고 내 인생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역사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끊임없이 창조의 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은 지식과 정보에 의해서만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세계를 접하게 되면 생각과 말과 행동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창조적으로 변화합니다. 길들여진 역사의 산물이 아니고 역사를 창조하는 광명천지 대인간으로서의 성품이 나타납니다. 

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됩니다. 생(生)이다, 사(死)다, 행복이다, 슬픔이다 하는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망상입니다. 그 속에 갇혀 계속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을 초월해서 보면 이 땅에 태어난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지식의 힘으로써가 아니고 천지의 기운, 천지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다는 것에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로 깨달은 자가 아니면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통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너비가 30센티미터, 길이가 10미터 정도입니다. 그것을 땅바닥에 놓고 그 위를 걸으라고 하면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30미터 정도 높이의 옥상 위에 놓고 걸어가라고 하면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바람이 부는 것은 땅이나 옥상이나 똑같습니다. 조건은 같지만 선입감이 있습니다. 떨어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리의 힘부터 빠지는 것입니다.

역사가 우리 민족을 강아지로 길러 놓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인데 강아지가 된 것입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너는 강아지다." 라고 교육을 시키는 것과 "너는 호랑이다." 라고 교육을 시키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것이 '의식의 힘'입니다. 의식을 그렇게 심어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민족의 한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가 무수한 외세의 침략으로 얼룩져 있는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조인 단군도, <삼국유사>도 외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고려 불교의 대승이며, 국사이었던 일연 스님이 불교의 확장과 진흥을 위해 <삼국유사>에서 국조 단군을 곰의 아들이라는 신화 속 인물로 왜곡시켜 놓은 것입니다.
민족 선도의 맥을 아예 끊어 놓으려 한 것입니다. 그것이 구실이 되어 훗날 강점기의 일본은 우리 민족의 역사의 근본을, 뿌리를 아예 말살시켜 버린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족보 없는 민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광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참 광복이 아닙니다.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미국 눈치도 보고, 소련 눈치도 보아야 하고... 단기연호도 마음대로 못 쓰고 있습니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 때 단기연호가 서기로 바뀌었습니다. 강대국의 압력이었습니다. 단기는 민족의 얼의 상징입니다. 서기가 세계 공통 연호이기는 하나 우리는 우리 연호를 지키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얼입니다.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기를 살리는 것은 얼을 살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기를 터득하려고 하는 것은 얼을 터득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기를 터득하지 않고는 얼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얼은 내 얼이고, 민족의 얼이고, 인류의 얼입니다.  지금 얼이 깊이 갇혀 있습니다. 잠재의식 속에만 있습니다. 역사에 의해, 현실에 의해, 교육에 의해 형성된 외부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요즘 이야기하기를 자아상실의 시대라고 합니다. 자아가 무엇입니까? 얼입니다. 잃어버린 얼, 내 얼을 찾자는 말입니다. 얼이 빠지면 지식도, 기술도 내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노예밖에 될 수 없습니다. 얼이 없으니 로봇이나 같습니다. 

선진국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얼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일본도 그러했고 미국도 그렇습니다. 얼을 빼놓고 기술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마음 놓고 가르쳐주어도 노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노예라고 안 가르칩니까? 노예도 똑똑하게 가르쳐야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노예는 노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