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야사인『삼국유사』의 저자가 일연 혼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고대사탐구학회는 오는 26일 서강대 정하상관 615호에서 제25차 월례연구회를 개최한다.

이날 조성을 아주대 교수는 '고구려 건국시조 전승의 발전과정'이라는 연구논문에서, 『삼국유사』의 저자는 일연 스님이 대체로 맞지만, 몇 가지 모순이 발견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내용은 다른 사람이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 삼국유사 <사진=문화재청>

조 교수는 첫 번째 모순은 "『삼국유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왜 해부루와 주몽이 모두 단군의 아들이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는가"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시조인 단군 아래로 고구려만을 연결하는 구 『삼국사』의 역사인식에서 발전하여 『삼국유사』는 부여를 포함한 여러 종족도 단군과 연결하려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두 번째로, "『삼국유사』가 「선인왕검(仙人王儉)」 부분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환인(천제)-환웅(천제의 서자)-단군(천제의 손자)’의 3대 구조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 「단군기」에서는 ‘해모수=단군=천제’라고 생각한 점"을 들었다.

그는 환인-환웅-단군 3대 구조는 고려 초 구 『삼국사』의 천제-해모수-주몽 3대 구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이 3대 구조를 단군조선에 적용해 ‘환인-환웅-단군’의 3대 구조가 형성되었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삼국유사』 ‘왕검조선’ 부분에 인용된 ‘고기(古記)’의 내용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이 ‘고기’의 전승은 구『삼국사』「단군본기」의 전승보다 늦게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모순은,『삼국유사』 왕검조선 부분에 인용된 ‘고기’에서는 단군의 후손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고 산신(山神)이 되었으며 1902년간 살다가 죽었다고만 하였다. 단군이 해모수(천제의 아들)라는 언급도 없으며 단군은 오히려 천제의 손자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삼국유사』의 찬자가 이런 모순을 왜 깨닫지 못하였는지 의문이다"며 "이러한 『삼국유사』 내부의 자체 모순은 찬자가 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즉 일연이 대체로 찬자였으나 일부 내용을 다른 사람이 추가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자체 모순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조화시키려고 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