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는 흑피옥 유물이 발굴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흑피옥 문화를 연구해온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는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가 동일하며흑피옥은 한국의 단군, 중국의 신농·복희 같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입증할 수 있는 단서라고 보고 있다. 정 교수의 최근 논문 '흑피옥 문화와 고조선 문자'를 소개한다. <편집주 주>

신석기 시대 홍산문화는 지리적으로 중원지역의 황하문명의 중심지가 아닌 문명의 변방 요하지역 일대에서 발견됨으로써, 한중일 삼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홍산문화는 약8000년 전 사해(査海)문화, 흥륭와(興隆窪)문화 등 신석기 시대 문화와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하가점(夏家店)하층 문화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는 역사적으로 숙명적인 관계에 놓여있다.(주1) 동시에 양자강 유역의 양저(良渚)문화와 함께 당시 중국 대륙의 남북을 대표하는 옥(玉)문화로서 황하문명의 수준보다 질으로나 연대에서 앞선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주2)

이와 더불어 최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흑피옥 문화는 기존의 홍산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인 C자용(옥룡), 옥결, 태양신, 옥조, 구운형 옥패 등 옥기와 외관상 완전히 동일한 형태이고, 겉으로 드러난 표피 색이 다를 뿐이다. 두 문화의 공통점에 대해 중국의 진일민(陳逸民)은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공통점인 옥질, 문양, 독특한 조각기법, 구멍 뚫기 등으로 미루어, 두 문화가 완전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주3)

중국 중앙미술학원의 하덕무(夏德武)도 "흑피옥 조각의 조형상 특징과 내몽고 적봉지구 우하량 출토의 홍산 옥기는 닮은 점이 아주 많아 요하유역의 초기 문화 현상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주4)

한국 이형구 교수(선문대학)는 "옥기의 출현·제작은 엄청난 의미가 있어요. 옥기를 독점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신분계급이 생기고, 전문화 분업화가 이뤄지고, 하늘과 소통하는 독점자가 고국(古國)을 통치하는 이른바 제정일치 사회의 개막을 뜻합니다. 그걸 동이족이 창조해 낸 겁니다."라고 하였다.

더욱이 신석기 시대 이후 내몽고 지역과 요하지역의 홍산문화 영역에서는 옥기 유물이 적석총, 빗살무늬 토기, 비파형 청동검, 다뉴세문경 등, 동이족 계통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다.(주5) 특히 1980년대에 발굴된 우하량(牛河梁)유적지에서 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적석총군 등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는 중국 고고학계에 일대 충격적 사건이었다. 우하량에서는 홍산문화의 대표적 옥기인 옥결(옥저룡), 옥벽(玉璧), 옥환(玉環), 옥패(玉珮) 옥 거북(玉龜) 등 각종 옥기들이 발굴되었다. 이와 같은 옥기와 관련된 신분의 차별은 사회 계급의 발생을 의미한다. 당시 홍산문화 사회는 이미 원시씨족 취락 단계를 넘어섰으며, 성방식(城邦式) 고국(古國)이 등장하는 초기 원시국가가 이미 북방에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연대적, 지역적으로 해당되는 국가나 부족과 관련된 한국이나 중국의 문헌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외에 달리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주6)

위와 같은 홍산문화를 둘러싼 한중 양국의 논란 가운데, 필자는 2006년 12월 흑피옥 조각 실물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2007년 [미직립인이 창조한 제일차 인류문명-초고대 문명시대의 흑피옥 조각상]을 출판, 중국으로 건너가 장충배(張忠培 중국 고고학회 이사장), 양백달(楊伯達 중국 고궁박물원연구원), 왕세민(王世民 중국 사화과학원), 계준의(桂遵義 중국 화동사범대)등, 중국학계와 옥기 전문가들을 직접 방문해서, 흑피옥 발견자 김희용을 소개, 흑피옥 조각 실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위 책을 전달하고, 중국 측의 공식적인 관심을 촉구했다.(주7)

2007년 이후, 당시에도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흑피옥문화 조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과학적인 실험결과나 학문적 근거가 상당히 취약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흑피옥 발견자 김희용 씨 조차 "조각상에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을 사용할 수 있는 C14만이라도 붙어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게 없습니다. 옥은 C14를 함유하고 있지 않아 알 수도 없고."라고 주장할 정도였다.(주8) 그러나 필자는 흑피옥 문화에 대한 본인의 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학술적(과학적) 근거가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필자는 흑피옥문화의 상징이기도 한 검은 색 표피(칠)에 주목을 하여 동일한 흑피옥 조각상에서 시료를 채취,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연대측정 실험을 실시했다. 우선 제1차로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의뢰한 결과 14,300±60(SNU07-R131:2007.12.18)년 전, 제2차는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GEOCHRON LABORATORIES)에서 3,150±40(GX-33119-A

MS 2009.7.23)년 전이라는 각각의 실험결과를 얻어 냈다.(주9) 위 두 차례 실험의 연대의 차이에 대해 중국 옥기위원회 위원 천익중(錢益中)은 오히려 "이 연대는 중국 상대 만기에 해당하고, 조각 기술의 성숙도와 발달로 보아 사리에 맞는다. 상대에 이미 갑골문을 사용하고 있어서, 흑피옥 가운데 출현한 문자와 고조선 갑골문<천부경>의 문자가 같은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고, 고대 동북아 지구 민족이 같은 조상 같은 근원(同祖同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10) 고 주장했다.

여하튼 필자에 의한 두 차례 실험은 세계 최초의 흑피옥 조각에 대한 공식적인 연대측정 결과로, 흑피옥 문화가 최소 3000년전 이상의 고대 유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연대적 공간과 과학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특히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지오크론연구소의 실험결과인 3150년 전이라는 연대를 우선 절대 연대로 볼 경우, 한국의 고조선과 중국의 은(상)이 공존했던 연대적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고조선 연구에 한 획을 긋는 실로 엄청난 역사적 발견을 한 셈이었다.(주11)

이런 일련의 연구과정 가운데, 필자는 2007년 흑피옥문화 명문옥도와 홍산문화 명문옥도에 새겨진 ‘冬, 丌’등 고문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2008년 10월, 전남과학대학 동북아문화연구소 주최로 졸저 [흑피옥] 출판기념과 함께 [홍산문화와 고대문자 발견]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개최했다.(주12)

한편 흑피옥 조각에 대한 중국사회의 관심도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2008년11월, 중국문물국이 공식문서를 통해 흑피옥문화의 존재와 현장공개를 밝혔다. 중국정부 당국은 2010년6월, 오란찰포맹(烏蘭察布盟)고고대가 화덕현(化德縣)에서 시험발굴을 마쳤고, 같은 해 12월 19일, 흑피옥 발견자 한국인 김희용씨(61고대유물수집가)에게 ‘중국 문물보호와 전승공헌 금상’을 수여했다.(주13) 이러한 중국정부 당국의 발견자 김씨에 대한 포상과 흑피옥 조각에 대한 민간국보 지정은 흑피옥문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앞으로 흑피옥문화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과 의심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그런데 중국 측은 흑피옥문화를 범홍산문화이거나 홍산문화의 일환으로 간주, 중화문명이나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든 반면, 한국 측은 아직도 유력 일간지조차 "흑피옥의 비밀<黑皮玉:검은 염료를 칠한 옥돌 조각상>1만년 前 '超古代문명'의 대발견이냐 '국제 유물사기'에 휘말린 해프닝이이냐. 유일하게 '진품이 맞다'는 입장에 서 있는 학자는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동양사학)다. 그는 "흑피옥은 한국의 단군, 중국의 신농·복희 같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입증할 수 있는 단서"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7년 11월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흑피옥의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1만4300년±60년'이라는 놀라운 수치가 나왔다"고 할 정도로 양국 간의 입장이 판이한 상황이다.(주14)

지금까지 최고의 문자로 알려진 은 갑골문보다 연대적으로나 문화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명문 옥기가 발견된 것은, 당시 중국 대륙 북방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일련의 신석기 시대 문화가 황하유역의 중원문화와는 다른 독자적 문화로 판단하는 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문명의 기원을 밝혀주는 결정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주15)

본 논문은 기존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옥기 방면,

1.석월(石鉞) 북경부근 전세유물과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명문 옥도.

2.내몽고 적봉시 삼좌점 인면상(암각화)과 흑피옥문화 옥결.

3.한국 울주군 반구대 인물상(암각화)과 흑피옥문화 남자 인물상.

문자 방면,

1.적봉시 대흑산 부호문자(암각화),

2.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옥도, 옥도에 새겨진 문자(명문),

3.고조선 갑골문<천부경>과 이와 관련된 한중 양국 박물관 소장 유물, 공식 언론기관 보도 내용 등과를 직접 비교분석함으로써, 중국 북부지역에서 신석기 시대 전반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독자적 문화세력으로 존재했던 고조선을 둘러싼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는 데에 연구목적이 있다.

[1] 흑피옥 문화

신석기시대 유물 가운데 석기, 토기 등은 주로 생활 도구로 쓰였지만, 옥기는 신물(神物)과 제기로서 당시 사회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로서 귀중한 인류의 역사적 보물이다.

특히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옥기 유물은 형태적으로 인물상, 동물상, 기타 등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인물상은 당시 사회 구성원을 대표하거나 상징적 인물 즉 족장이나 조상 등 주요 인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동물상은 각 씨족이나 부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새족(鸟族), 돼지족(猪族), 소족(牛族), 곰족(熊族), 양족(羊族) 등 각 종족의 구분(族徽)으로 보인다.

* 흑색 표피(주16)

흑피옥문화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검은색 피부야말로 흑피옥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것이다. 흑피옥 조각은 외부가 두꺼운 흑색표피로 덮혀 있다. 검은 색 가운데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도 있고, 흑색 가운데 담백색이 보이는 것도 있다. 표피는 광택이 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돌처럼 거칠고 촉감이 철 같다. 그리고 흑피옥 표피의 화학적 성분에 대한 분석은 이미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실험이 끝난 상태이고, 한국 측에서 전자현미경을 사용한 실험 결과 표피층이 일정하고 균등한 피막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 옥기의 차이를 말하자면, 전자는 옥기 표면에 검은 색칠을 한 뒤 매장한 것이고, 후자는 제작을 마친 옥기를 그대로 매장한 것이다. 결국 흑피옥 조각의 표피의 검은 색은 인공적 행위(예술)즉 표면에 칠을 한 것이고, 결코 매장된 지하에서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검은 색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문화의 옥기는 표피 색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관계로, 이미 중국 측에서는 두 문화는 옥 재료(대부분 岫岩옥), 제작기법 등 과학적 실험결과를 근거로 동일한 문화로 파악하고 있으며, 중국중앙미술원 하덕무(夏德武)교수는 흑피옥문화를 ‘범홍산문화(泛紅山文化)’라고 부르고 있다.(주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