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의 주인공은 한민족 고유의 머리인 상투를 틀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한민족 고유의 머리인 상투를 틀었다
  • 강현주 기자
  • sunlove10@ikoreanspirit.com
  • 승인 2011.08.05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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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 박선희 교수,『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출간

황하문명 보다 1천년 앞선 신비의 옥 문화유적, 홍산(紅山)문화. 고조선 문화의 전신前身인 홍산문화를 일으킨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짐승가죽에 돌도끼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상투를 틀고 옥으로 만든 상투머리 덮개로 머리를 장식하고 옥단추와 옥장식을 단 옷을 입었다. 실을 뽑아 옷감을 짓는데 필요한 가락바퀴가 함께 출토되어 이를 입증한다.

홍산문화유적지에서 출토된 옥 장식물로 상투머리를 감싸던 '옥고'들. <사진자료=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지신산업사)>

 

홍산문화유적지에서 출토된 달개장식으로 옷에 달았던 장신구.


박선희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지식산업사)에서 신석기 홍산문화에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복식문화를 분석해 그동안 감춰져 왔던 고대 한민족 문화의 고유성과 역사의 진실을 밝혔다.

박선희 교수는 “중국 랴오닝성 네이멍구에 위치한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자주 발굴되는 옥은 황하문명 유적지에서는 발굴되지 않고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며 홍산문화와 고조선 문화의 연계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조선 이전 시기의 복식문화를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3백 개 이상의 도판을 이용해 고조선 전과 후의 자료를 이웃나라의 것과 비교 분석해 실증적 해석을 거쳐 고조선 복식의 기원과 원형을 밝히고 그 발전과 전개 양상을 추론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여 아무도 해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학문을 전개했다.

박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옥으로 만든 상투머리 덮개인 ‘옥고’의 발견이다. 옥고는 속이 비스듬히 드러나 보이는 원통형으로 아래 양쪽에 구멍이 있어 미끄러지지 않게 머리꽂이로 고정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홍산문화의 인형식
홍산문화 '옥고'

 

《후한서》《삼국지》《진서 晋書》등에서는 고대 한민족이 머리를 틀어 올려 상투머리를 했다고 기록했으며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인형에도 상투를 튼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 북방지역 사람들이 주로 머리의 반을 올려 묶거나 변발을 했던 것과 다른 고유한 두발양식이다. 상투를 튼 모습은 신라시대 초기의 기마인물형 토기와 인물상에도 뚜렷하게 남아있어 수 천년에 걸친 전통문화임 확인할 수 있다. 상투머리는 신석기시대부터 갖추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와 만주 유적에서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꽂았을 머리꽂이가 골고루 출토된다.

신라시대 초기의 기마인물형 토기와 인물상 토기. 한민족 고유의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이 상투머리 덮개는 고조선 시대에는 변弁(고깔)이나 절풍折風과 같이 상투에 쓰는 작은 모자 형태로, 삼국시대에는 속관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고구려나 백제사람들은 머리에 절풍을 쓰니 그 모양이 변과 비슷하고 양옆에 새의 깃을 꽂았는데 귀천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나 광개통대왕릉에서 출토된 금관, 충남 공주 수촌리 4호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관,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 안에 쓰는 속관이 홍산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홍산문화가 바로 고조선 문화의 이전단계라는 증거가 된다.

광개토대왕 왕릉에서 발견된 작은 금관과 날개장식.
(왼쪽) 공주 수촌리 4호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관. (오른쪽)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금관과 속관


이후 고조선의 복식양식은 출토된 유물로 보아 매우 화려한 청동장식이 빼곡히 달린 의복과 가죽신발을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유물로 본 청동은 암녹색이지만 처음 제조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박 교수는 이 청동장식이 이후 갑옷의 형태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고조선의 직물기술은 매우 뛰어나 누에고치로 짠 고조선의 실크는 가공과정에서 세리신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남겨 탄력성이 뛰어나고 염색이 잘 되어 당시 주변국과 주요 교역품목이 되기도 했다. 한나라에 무제가 등극했을 때 귀족계층의 사치를 없애기 위해 고조선의 실크를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는 칙령을 내렸다고도 전한다.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한중일 학자 모두가 고대 한국의 양잠 기술은 기자에 의해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홍산문화유적에서 출토된 누에모양의 옥잠을 비롯한 유물자료를 보면 고조선의 독자적인 기술형태로 발달시켜온 것으로 밝혀졌다.

실크 뿐 아니라 모피옷과 면직물 기술도 뛰어났다. 특히 면직물은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인도면이 아니라 재래종인 초면草綿으로 백첩포를 생산했다. 초면은 꽃이 작고 생산량이 적은 대신 희고 빛이 나며 부드러워 당시 백첩포은 최고급의 면직물로 인정받았다.

고조선의 훌륭한 직물기술은 고구려에도 그대로 전수되어 고구려는 금(錦, 비단)으로 상징될 만큼 금을 즐겨 입었다. 금은 누에 실을 여러 색으로 물들이고 이를 섞어 화려한 문양을 혼합 직조기법으로 직조했던 고급직물이다.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난 절풍의 형태.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돕는 셈

이 책의 저자 박선희 교수는 단순히 뛰어난 복식기술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3년 여 동안 홍산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며 집필한 박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홍산문화를 포함한 만주의 고대문화를 총칭하여 ‘요하문명’이라 부르려 한다. 이는 홍산문화를 황제문화로 포함시키려는 계책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우리 학자들도 아무런 검증 없이 따르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요하문명’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동북공정을 돕는 셈”이라고 지적하며 “한반도와 만주의 선사문화와 문명은 ‘요하’라는 하나의 강 이름으로 포괄될 수 없다. 더욱이 홍산문화는 황하문명과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므로 이 명칭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우리는 이 문화를 반드시 ‘고조선 문명’이라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조선 복식 연구를 통해 고구려 등에 계승된 고조선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정확히 찾는 일이야말로 중국과 일본 등 이웃나라의 역사왜곡에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방패가 된다는 것이 박선희 교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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