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어느 국민을 막론하고 자국민만이 갖는 덕성과 미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기뻐하고 자랑한다.
한국과 한국인. “우리가 누구란 것은 다 안다. 그런 것 물어보는 것은 싱겁다.”며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데 소홀했다. 중국의 소수민족이 55개, 캐나다의 선주민족이 70개나 되고 언어도 그만큼 많다. 캐나다의 어느 주에서는 공식 언어가 7개나 있다고 하니 문화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당연히 자기문화가 남들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같은 민족문화 속에 오래 살다 보니까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미덕이 있다는 것을 지금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정의 문화’라고 한다. 정의 문화란 인정이 많은 따스한 정(情)의 문화란 뜻이다. 또한 우리는 남과 다투지 않는 고요할 정(靜)의 문화라고도 한다. 의리에 강하고 이해에 약한 윤리 도덕의 문화가 우리 문화의 특징이다. 정의(正義)에도 강한데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서 미국인이 쓴 <정의>라는 책 번역판을 읽는 것이 한국인의 현주소이다.

서양문화는 법法의 문화요, 동動의 문화다. 법에는 반드시 처벌이 따르고 동에는 반드시 승패가 따른다. 투쟁 없이는 살지 못하는 중세 기사의 윤리가 서양문화의 본질인 전쟁문화이다. 흔히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18세기 프랑스인이 만든 것으로 루소가 처음 제창한 근대사상이라 한다. 프랑스인은 그들의 계몽사상과 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화의 선진국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인도주의를 내걸고 조용한 문화인 척하고 행세하나 실은 침략과 전쟁과 살생을 일삼은 제국주의 문화가 근대 서구문화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 수천 년 전에 우리 나름의 철학과 인간관이 이미 있었으니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코리안 스피릿이다. 우리로서는 인도주의가 오래 묵은 고대의 정신문화였던 것이다. 중국 것이 아닌가 묻는 사람이 있다면 홍익인간이란 단어가 중국 고전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또한 성균(成均)이란 말도 중국의 고전에 없다. 성균 역시 단군시대의 <신지비사>내용 중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에서 나온 말이다. 홍익과 성균은 우리의 고유정신 즉 코리안 스피릿의 일단이었다.

홍익은 중국 어느 사서에도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자 앞선 인도주의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는 외래 삼교를 모두 아우른 ‘현묘지도(玄妙之道)요, 풍류(風流)’라 말했다. 그 뒤 오랫동안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의 외풍을 맞아 우리 고유의 국풍이 희석되거나 흔들리는 시대를 지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고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외래종교가 들어온다 해도 우리에게 고유의 정신문화 코리안 스피릿이 꼿꼿하게 서있었다. 그것을 향가 향약 향교라고도 하였고 학교에서 보다 가정에서 우리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 오늘에 전해졌다.

박은식 선생은 그것을 우리의 ‘국성(國性)’이라 했고 정인보는 ‘5천 년 조선의 얼’이라고 하였다. 단재 신채호는 더 날카롭게 “우리 민족성에는 불변의 민족성이 있는데 아무리 밖에서 외풍이 불어도 그 외풍을 막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면 민족성에 동화하여 한국의 불교가 되고 유교 또한 같다. 한 때 유교는 한국을 유교의 한국이라고 착각하고 나라를 망친 일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 기독교는 한국의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한국으로 착각하고 있다. 한국을 기독교의 나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가 한국의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없이는 한국에 기독교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기독교가 뽑은 대통령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엄연히 대통령은 한국인이 뽑은 대통령이다. 일단 한국에 들어온 이상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지만 그것은 단순한 형식적 승인이지 한국인이 마음으로 승인한 것이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기독교도가 말하는 천당과 불교도가 말하는 열반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그곳이 한국이 아니라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은 한국인에게 한국의 정신, 코리안 스피릿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인은 특정 외래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였다.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화해야 한다.

코리안 스피릿! 이 기회에 우리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다시 한 번 한국 발 인간주의와 세계주의의 참뜻이 무엇이며 화백정신이 또한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로 하자.

<국학신문 4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