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조선건국 4252년 3월 1일’이라고 밝혔다. 3·1정신을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가 단기 연호였다. 이것을 하루아침에 없애고 서기로 바꾼 것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던 1961년의 일이다. 그 해 12월 2일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법률 775호를 공포함으로써 폐지된 것이다.

그 나라의 국호와 연호는 개인의 성과 이름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정권은 이것을 몰랐던 것이다. 성을 간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가장 심한 모욕이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나라의 이름을 바꾸었으니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우리 나이요 이름인 단기를 잊은 지 48년이나 지났으니 반세기가 지난 것이다.

단기연호를 버린다는 것은 단군의 고조선 건국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하여 경축하고 있으나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았다. 단군의 건국 사실은 명백하다. 조선왕조 초 서거정의 『동국통감』(1485)에 보면 ‘단군이 동방 최초의 임금’이라 하였으니 후대의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다. 후손이 족보를 뜯어고친 것이나 다름없다. 단군의 건국 사실을 역사에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다르고 오랬다는 독립선언이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요와 순이 은나라를 세웠으나 우리 동방에는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이며 조선은 단군조선의 맥을 이은 나라라 선언한 것이다.

조선보다 앞선 동명성왕의 고구려, 온조의 백제, 박혁거세의 신라, 왕건의 고려가 모두 단군조선을 이은 나라였다. 조선이 이들 나라의 맥을 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전 왕조의 시조와 장군 그리고 명신들을 모두 모시고 함께 제사지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심지어 삼한시대에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나라(奈良)에다 나라를 세운 우리 조상들도 단군을 잊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수관 등 도공들의 후손들도 마을 언덕에 단군신전을 건설하여 해마다 “오늘이 왔다! 오늘이 왔다!”는 단군가를 불렀다. 또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백두산 남쪽 기슭에 신시를 열고 그것을 천평天枰이라 하였다. 일찍이 신시를 답사한 육당 최남선은 이런 말을 하였다.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보아라! 조선 1만 년의 천평天枰(신시神市)이 여기에 널려 있다, 천평은 조선역사의 요람기를 파묻은 큰 무덤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없으나 한번 마음의 눈(心眼)을 열면 거기에 우리 상고사의 모든 사적이 보일 것이다. 천평은 본디 신국의 옛 터였다. 동무야! 천평에 새 나라를 만들자. 나도 그 국민이 되어 보자. 그러나 조선인은 백두산을 잊어버렸다. 그중에서도 천평을 아주 잊어버렸다. 민족 생활의 근본인 여기를 이렇게 잊어버려도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근본이 있기를 기대하리오.”

큰 과거도 거느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큰 장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기를 잊었으니 우리의 근본을 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기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큰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큰 과거도 거느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큰 장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1910년 한일병합을 당했다. 올해는 2010년. 망국이라는 큰 수치를 당한 지 100주년이 되는데 해이다. 그런데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남북이 서로 총질을 하면서 비방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다. 모두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는 개천절 노래를 잊은 것이다. 말로만 단군! 단군!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이 하나란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가 되자.

1919년 3월 1일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날은 잊지는 않았으나 하나가 될 줄 모르고 날이 갈수록 남북이 갈라서고 있다. 통일은 먼 훗날 일로 멀어져가는 것인가. 자칫 잘못하면 북한이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소리가 오가고 있다.

1919년 2월의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에 보면 “우리 대한은 대한의 대한이다. 우리나라는 무시無始이래로 한인의 한韓이요 비 한인의 한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무시란 태초부터란 뜻이며 무종無終이란 역사의 끝을 말한다. 단기를 다시 쓰자. 그리하여 반만년 민족사를 기억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하나가 될 날을 기다리자.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