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극하면, 우리나라 사극사상 최대의 제작비와 스케일의 태왕사신기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와 크나큰 감동을 주었던 ‘불멸의 이순신’ 그 외에 연개소문, 대장금, 허준, 태조왕건, 조선왕조500년등 인기와 더불어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사극이 참 많이 있다.

그러나 태양에도 흑점이 있고, 옥에는 티가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왜곡되어지거나 잘못 묘사를 하고 있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혹자들은 그에 대한 오류의 지적에 대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드라마 중에 ‘사극’ 만큼은 절대 녹아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극중에서 묘사되어진 부분이 잘 못된 정보라는 것을 알고 보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의식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사극같은 대중매체에 의하여 습득된 역사적 묘사가 여과없이 ‘역사’ 자체로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나라를 넘어서서 아시아의 히트작이라 손꼽히는 대장금의 경우,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주영하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왕실에서는 대장금과 같은 여자상궁이 왕실 주방장을 맡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서유럽의 왕실 주방장역시 모두가 남자였기에 만약 여자로서 궁중의 주방장을 지냈다면 이는 세계 왕실문화 연구에서 획기적인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실상은 조선시대 궁중 음식의 장만은 사옹원(궁내 음식을 관장하던 관청)의 잡직 남자들의 몫이었다. 종6품으로 주로 대전과 왕비전의 수라간을 책임진 주방장인 재부, 종7품으로 문소전과 대전다인청의 주방장인 선부, 종8품으로 왕비전다인청의 주방장인 조부, 정9품으로 세자궁과 빈궁의 주방장인 임부, 종9품으로 궁궐 내공관의 주방장인 팽부등이 그들이다. 이들 아래에는 육고기 담당 별사옹, 구이담당 적색, 밥과 국 담당 반공, 술과 음료담당 주색, 그리고 떡과 과자 담당 병공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비 출신의 남자들이었고, 나인들은 연회나 식사에 동원되어 일을 보조해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러한 역사상의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라를 잡수시는 왕을 도왔던 상궁과 나인들이 음식까지 모두 조리했다고 여기는가?

일제에 망한 조선은 나라(王國)가 아닌 일황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이씨 왕가(王家)가 있었다.(일제가 조선을 낮추어 부르던 것이 바로 '이씨조선') 조선왕실의 자손들 몇사람으로 연명되던 조선의 왕실에는 직책을 갖춘 왕실 주방장을 둘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상궁과 나인이 왕실의 음식을 장만했다. 이들이 해방 뒤 마치 500년 조선왕실의 궁중음식 모두를 도맡아 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러한 ‘대장금’이 대만, 홍콩, 일본등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고하니, 울어야 될지, 웃어야 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