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국교회복을 위해 정부에 외면당한 독도의용군
“우리는 육군도 해군도 아닌 독도군이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두 척을 상대로 독도의용수비대가 벌인 1954년의 10월 23일 해전 이후 더 이상 일본 배는 독도에 접근하지 못했다. 물론 경상북도 경찰국과 울릉경찰서가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주었다. 울릉경찰서는 무선통신사를 파견해주었다. 경북도경 김종원씨는 박격포를 제공, 일본 순시선을 격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김 국장을 뒤에서 밀어준 이가 바로 평화선을 선포했던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외교의 귀신’인 이승만은 군사력을 투입하면 무력점령 시비를 일으킬 수 있지만, 순수 민간조직이 지켜주면 이런 부담 없이 독도를 실효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차차 악화돼 갔다. 첫째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태풍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허학도 대원이 숨졌다. 둘째는 혹독한 추위였다. 1954년과 55년 사이 겨울은 혹독한 추위와 살벌한 바람에 날씨도 안좋아 식량보급선이 오지 못해 식사는 커녕 먹을 물도 부족, 어렵게 연명을 했다.

셋째는 일본의 반발과 우리 정부의 자세도 문제였다. 55년부터 한국은 독도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과 국교를 회복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일본과의 국교 수립은 경제개발을 위한 대일청구권 자금과 관련, 포기할 수가 없었지만 독도는 지켜내야 했다.

일본 기자들은 국교 정상화 논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 외무장관에게 “독도에 있는 무장 세력은 한국의 군경이냐?”고 물었다. 한국 장관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거기서 총을 쏘는 자가 누구냐”고 따졌다. 장관이 마땅한 답을 하지 못하자, “허가도 받지 않고 독도에 들어간 무장세력이라면 해적이 아닌가”라고 몰아붙이자, 한국 외무장관은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인정을 하기도 했다.

이 답변을 근거로 일본 언론과 정치인들은 독도에 한국 해적이 있다고 떠들며, 해적소탕을 한국정부에 요구했다. 외무장관이 곤욕을 치렀단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해 오히려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국회는 홍순칠 대장을 불러 직접 추궁했다.

어떤 국익이 먼저이냐가 혼란스런 상황에 홍대장은 “우리는 육군도 해군도 아닌 독도군이다”라는 명답변을 남기고, 증언대를 내려왔다.  또 그해 여름 홍 대장은 수비대 운용자금 마련을 위해 제주도에서 해녀를 데려와 독도에서 미역을 따 팔게 했다. 그러나 울릉도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미역채취가 제주도 해녀에 의해 이뤄지자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경찰을 독도에 상주키로 결정했다. 경찰은 무력강점(强占) 시비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러한 정부의 대안이 제대로 정착, 1955년 12월30일 의용수비대는 독도 방어를 경북 경찰에 넘기고 울릉도 주민으로 돌아왔다.
독도의용수비대는 6·25전쟁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울릉도의 제대군인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만든 ‘마지막 의병’이었다. 이들은 독도를 울릉도 주민들의 옥답(沃畓)으로 보았기에, 그리고 불법과 합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홍순칠이라는 큰 인물이 있었기에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며 독도를 지켜낸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울릉도의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만명 대에 이르던 울릉도 주민도 9천여 명대로 떨어졌다. 호박엿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오징어잡이가 뜸해지면서 독도는 더 이상 울릉도 주민들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와중에 지난 여름 일본을 간 필자는 일본 지도를 보다가 깜짝 놀랄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인 오키(隱岐)섬에 공항 표시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독도 영유권을 확실히 굳히려면 하루빨리 울릉도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항이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에 오게 될 것이다. 아마 헬기를 이용한 독도관람자도 나올 수 있다.

독도 관광이 활성화되면 울릉도에 활력이 돌게 된다. 이렇게되면 주민들은 자연스레 독도 가꾸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다. 또 유사시 이 공항은 군기지로 이용될 수 있다.

이 생각으로 필자는 수년 전부터 울릉도 공항건설을 주장해오고 있다. 아울러 국가 사랑정신 전파를 위해 ‘마지막 의병’인 홍순칠씨와 수비대 동상 제막을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끝>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