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회 국학원 종교인 초청강좌에서 혜문스님은 “상호공존과 평화의 시대인21세기에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양심의 제자리 찾기를 뜻한다.”고 했다.

국학원(천안 소재)은 지난 12월 12일 국학원 1층 대강당에서 제6회 종교인 초청강좌를 개최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강사 혜문스님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위해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벌였던 활동과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받아온 성과를 알렸다. 또한 현재 추진하는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 <조선왕실의궤>의 환수활동을 소개했다. 여기에 명성황후의 장례절차를 기록한 의궤가 들어있다.

혜문스님은 “을미사변은 국모를 지키지 못한 참담한 사건이었는데 그 장례를 기록한 의궤마저 일본 왕실이 가지고 있다. 명성황후의 죽음은 조선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행위로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 외교적 역량이 대단했던 명성황후를 죽였다. 수천 년간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우리가 처음으로 망했다.”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을미사변이 촉발이 되어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예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 중 첫 번째가 국모를 죽인 죄이다. 또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말했다. 

혜문스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을 우리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무상원조와 차관의 대가로 국가의 청구권을 포기했다. 당시 반환받은 문화재는 1,432점으로 목록을 보면 짚신 1켤레(각각 2점으로 계산), 우체국 막도장, 간판 등 너무나 초라해 전시회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과 외교협정을 맺게 되면 민족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법률적 지위에 놓이므로 정치 외교 북핵 어떤 이해를 넘어서라도 남북이 공조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스님은 “흔히 명성황후를 일본 낭인이 죽였다고 하나 그들은 당시 미우라 공사을 비롯해 한성신보 기자, 주필 등을 포함한 엘리트였고 차후 일본정부의 주요직책에 중용되었다. 일본정부의책임을 회피하는 흉측한 의도가 숨어 있다. 또한 ‘시해(弑害)’라고 하는데  이는 “신하가 자기 임금을 죽이다.”라는 의미이다. 명성황후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뜻으로 일본에 의해 강점기 내내 교육된 것이 굳어졌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지난 약육강식의 시대를 지나 21세기는 상호공존과 평화의 시대이다. 이제 강자가 약자에게서 빼앗아 간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할 때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양심의 제자리 찾기”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국학원 관계자는 “12월 4일이 식민사관을 심은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총독부 산하에 편입된 날(1922년)이어서 의미 깊은 강의였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또다시 불운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번 초청강좌의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