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규 / 단국대학교몽골학과교수

우리나라와 몽골은 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기원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여 왔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공통성을 연결고리로 묶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학설이 알타이어족 설이다. 즉 한국어와 몽골어, 투르크어, 만주어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사료가 적고 유물 발굴이 용이하지 않은 한민족의 시원에 대한 실마리를 몽골의 언어, 설화, 민속에 대한 연구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지역적으로도 상고시대에 우리 조상의 주 무대였던 드넓은 만주와 몽골은 맞닿아 있었다.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보더라도 특히 동부 몽골에서 발견된 인골의 DNA 검사 결과는 우리 조상과 직접 연결될 정도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들을 흉노라고 불렀다. 훈누 또는 한자어 흉노에서 ‘노’나 ‘누’는 고구려의 5부를 연상케 한다. 소노부, 관노부, 순노부, 계루부, 절노부 등 고구려의 5부는 물론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작은 나라들의 뒤에도 ‘노, 나 또는 나가, 나라’라는 말이 붙었다. 당시 북방민족의 부족 명 뒤에 붙이는 접미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이칼 호수 주변의 몽골인의 무속 서사시인 ‘게세르’의 내용과 단군신화의 전개는 닮은 측면이 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된 배경과 그 경위가 아주 구체적이고 장대하게 서술되어 있다. 지구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면서 조건을 걸고 하늘의 천사가 수많은 것을 가지고 내려오는 모든 상황과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한 삼천의 무리와 함께 내려오는 과정이 닮아있기도 하다. 게세르의 탄생과 단군의 탄생과는 다른 측면도 있어 보다 깊이 있는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하늘의 신들 간 싸움과 샤먼이야기가 나오는 몽골의 또 다른 신화는 우리 무속의 ‘본풀이’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학자들은 필요한 것만 발췌하여 비교하고 구체적인 연구가 부족한 편이다.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왕검과 관련된 내용을 언어학적으로 풀어보자. 우리말의 단군(檀君)은 몽골어와 투르크어로 ‘텡게리’이며 이때 ‘텡’은 天, 즉 하늘을 뜻한다. 또한, 단군은 천군(天君)이라 했는데 이때 단은 ‘당’과 연결되며 이는 당골, 당집 등 巫(무당, 샤먼, 제사장)와 연결된다.

우리나라와 몽골이 협력해 상고역사를 공동연구할 필요가 있다

‘왕검(王儉)’은 왕(王)과 검(儉)이 같은 뜻으로 왕은 한자이고 뒤의 검은 우리말로서 한자와 우리글을 함께 붙인 것이다. 우리말 검(儉)의 어원은 ‘금’으로 신라의 니사금, 이사금, 질금, 즐금, 매금(광개토대왕 때 신라 임금을 가리키는 말) 등을 미루어 ‘금’은 5천 년을 돌아 그대로 이어진 오늘의 ‘임금’이며 그 ‘금’의 고어(古語) 형태는 ‘구마’‘고마’의 변형으로 이는 곰(熊) 즉 웅족과 연결된다.

단군 왕검의 두 번째 수도가 아사달(阿斯達)이다. 몽골의 조상인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사서, 요사(遼史)에서 ‘아사’는 넓다는 뜻이고 ‘달’은 들판을 말한다. 넓은 들 즉, 평양이다. 그 외 삼국유사에서 아사달을 궁홀(弓忽) 방홀(方忽)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홀’은 구릉 언덕을 뜻한다고 밝혀졌다. 여기서 금미는 곰과 연결되며 즉 왕검의 검(儉)과 통한다. 즉, 금(임금)미달은 임금이 사는 동네, 수도를 말한다.

지금 만주와 내몽골 등에서는 홍산문화, 하가점 하층 문화, 비파형 동검 등 우리의 상고 역사를 밝혀줄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 부여 등 고고학 연구를 정립시켜야 하는 우리로서는 현장에 가서 직접 발굴하고 자료를 채취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동이문화의 집결지인 동북아의 유적 발굴에 우리나라 학자들의 발걸음을 엄금하고 있다. 발굴현장에 만주일대의 주인이던 우리나라 학자들이 없으면 유물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가뜩이나 동북공정이 역사 왜곡인데 왜곡이 힘들면 그냥 “덮어”하면 끝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고고학의 현실이다.

다행히 홍산 지역과 가까운 동부 몽골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피라미드 유적이 있다. 또한, 중국의 25사 중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요사가 내년에 그 번역본이 출간된다. 몽골의 조상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역사서인 요사는 같은 몽골족인 원나라에 의해 기록되어 중국의 사관(史觀)이 들어가지 않아 왜곡되지 않은 유일한 역사서이다. 한국과 몽골에 의한 합동연구가 절실하고 요사의 연구 또한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