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란 건국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 문화, 철학 등을 포함한 종합학문이다. 국학의 뿌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문화인 ‘선도(仙道)’, ‘풍류도(風流道)’, ‘신선도(神仙道)’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핵심은 홍익철학과 천부경(天符經)이다.
 신라시대의 석학인 최치원 선생이 쓴 ‘난랑비 서문’에는 “우리나라에 고유하고 현묘한 도가 있어 풍류도라 한다. 이 정신의 연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본래 유불도(儒佛道) 삼 교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고 모든 생명을 접화하여 교화시킨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중 신라본기)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등 나라를 이끈 엘리트들은 민족 고유의 국학인 선도수련을 연마한 선인들로서 백성의 귀감이 됐다. 신라의 화랑들이 실천윤리로 배운 선도정신이나 고구려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에서 가르친 학문이 모두 우리 고유의 국학 곧 ‘선도’였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2천 년 전 고열가 단군의 폐관으로 그 맥이 끊어졌다. 삼국시대 이후 불교와 유교 등 외래문화가 지배문화로 세력화되면서, 역사적 격랑(激浪)을 겪으며 재야(在野)에서 선맥(仙脈)의 형태로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한민족의 선도관련 책을 불사르고 선도(仙道)의 대가(大家) 460명을 생매장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시대 5백 년 동안엔 우리 스스로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와 철학을 ‘유교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일컫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억압했다. 단군시대 이전의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가 실린 고서(古書)인 조대기, 삼성기, 삼성밀기 등은 나라에서 금서령(禁書令)을 내려 보지도 못하도록 했다. 일부 학자들은 조선시대를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어둡고 수치스러운 시대로 평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에 일본은 조선총독부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1925년) 단군을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神話)로 조작했다.
 100년 전 일제 침략 하에서 민족이 갈 길을 잃었을 때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과 독립운동의 대부 홍암 나철 선생 등이 홍익철학에 바탕을 둔 국학부흥 운동에 나서면서 국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광복 후 국학을 부흥시키고 홍익인간 정신을 널리 선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한국역사의 큰 축을 이룬 불교와 유교, 기독교의 영향으로 진정한 국학은 계승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전통문화는 없다. 있다면 중국과 일본의 아류이다. 고유한 문화가 있다면 샤머니즘(Shamanism, 무당)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바 이는 외부의 영향도 크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과 전통성을 잘 지키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곡되고 끊어질 듯 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조 단군의 홍익정신을 알리는 민족지도자(의병)가 출현하였고, 민초들 가슴속에 잠자고 있었던 한민족의 순수한 국학인 홍익정신이 성난 불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학을 부흥시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 고유의 좋은 문화와 정신을 살리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와 사상 문화를 홍익정신으로 포용하여 인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유태인들이 나라를 잃은 지 2천 년이 지난 후에도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고 세계의 지도국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이 물려 준 위대한 사상과 지혜 그리고 역사가 담긴 토라와 탈무드를 잊지 않고 지켜 온 데 있다.
영국에는 신사도 정신,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중국은 중화사상 등 역사가 오랜 국가는 그 나름의 중심 철학이 있다. 1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 민족에겐 어떤 철학이 있을까. 바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조상이 남겨준  고유한 정신과 지혜 등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면 많은 성현이 얘기 했듯이 우리나라는 21세기 아시아의 등불이며, 세계 평화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