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포사회의 1세대 한인들은 대부분 1960~70년대에 외국인 노동자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었다. 생활에 쫓겨 우리 민족, 역사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그들, 그리고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2,3세대들...
 독일 한인교포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독일 땅에 국학을 꽃피우고자 깃발을 높이 세운 국학강사 탁향란 씨도 70년대에 파견됐던 간호사였다. 그녀가 국학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한국에 머물며 동사무소에서 국학기공수련을 배우면서였다. 강사로부터 소개받은 선도명상수련은 대체의학사로서 평소에 자연, 우주철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에게 소중한 체험이 됐다. 그리고 국학원에서 받았던 민족혼교육은 국학강사를 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민족혼교육 중 유관순 연극을 보고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며 외쳐댔던 ‘대한독립 만세’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항상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났어요. 그것이 조국을 오래 떠나 있어서라고만 여겼는데 제 안에 민족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녀는 우리 교포사회에 국학을 알리는 초석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족혼교육을 받고난 후 그녀는 속초에서 개최된 국학기공대회에 심사위원 섭외를 맡았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음에도 국회의원과 시장, 시의회 의장, 보건소장 등을 찾아가 섭외를 성공시키고 열정적인 이미지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고 한다.
 독일로 돌아간 그녀는 독일 내에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최근 교포신문에 ‘아리랑의 참뜻’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그 뜻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대부분 버림받은 여인의 사랑노래 정도로만 답하는데 수많은 사랑노래 중 이 노래가 한민족을 대표하고 그 오랜 세월 전해졌는지 설명을 못하죠. 우리 자신이 그 속에 담긴 철학을 알아야 한다 ”고 했다.
 또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침탈에 대한 칼럼도 게재를 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북경올림픽 전에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마침 역사에 관심이 많던 교포신문 편집장은 지속적으로 칼럼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탁향란 국학강사(대체의학사)의 가족분들


교포신문에 아리랑 참뜻 알리는 칼럼으로 교민들의 큰 호응 얻어
 
 그녀는 지난 91년부터 10여 년간 아우구스부르그에서 한인회장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재외동포재단 등을 통해 우리 춤, 음악 등 문화가 많이 보급됐고 저도 한국무용을 배워 무용단을 이끌고 독일 축제에 참가해 교포와 독일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죠. 하지만 전통문화 속에 담긴 우리의 철학을 알지 못하고 모습만 전달하는 것은 생명력이 짧고 우리세대가 지나면 끝나고 말아요. 반면 우리의 철학을 알면 그 사상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화의 의미들이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전달됩니다”
 그녀는 “2002년, 2006년 월드컵때 모두 거리로 나가 신나게 응원하고 뜨거운 열정을 쏟았지만 그때 뿐이죠. 교포사회를 하나로 단합할 수 있게 하는 구심점은 우리의 중심철학을 바로세우는 국학이 될 것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현재 독일에서 우리의 선도명상수련을 접목한 건강법인 멘탈발란스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독일의 고등학교, 시민대학, 건강보험공단 시설 등에 건강법을 전달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건강과 행복,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홍익철학을 전하겠다”고 한다. “독일인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치중했는데 우리 역사와 정신철학의 핵심을 우리 교포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입니다. 부모가 우리 역사와 철학에 자부심을 갖고 2세,3세에게 전할 수 있게 할 겁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녀의 미래설계에 독일인 의사인 남편도 관심이 많다. 세 아들을 2년에 3개월씩 한국의 시골학교에 보내 한국어를 익히게 할 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이 그녀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최근 남편과 함께 귀국한 그녀에게는 역사자료 수집과 함께 중요한 계획이 있다. 재외동포재단을 찾아 독일에 국학을 전달할 강사와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선 독일교포사회가 우리의 국학이 뿌리내리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