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3월 1일  제97주년 3․1절을 맞아 철원군수를 향해 만세시위 참여를 외치며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경순 선생 등 6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밝혔다.

 전북 일대에서 소수 정예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다 순국한 박인곤(朴引坤)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09년 3월부터 10월까지 전북 고부에서 이성화(李成化) 김영백(金永伯)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의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  의병장으로서 헌병보조원을 처단하다 체포되어 악형 끝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폭도에 관한 편책'에서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파악하고, 국가기록원에서 수집한 '합장부(合葬簿)'(전주형무소, 1916)에서 순국한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합장부는 형무소에서 수감 도중 사망한 수인(囚人)들을 가매장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합장한 내용을 정리한 목록이다.

 강원도 철원에서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경순(金敬順) 선생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강원도 철원에서 사립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7백여 군중의 선두에 서서 철원 읍내와 군청, 철원역 일대를 행진하며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4월에 벌금 20원을 받고 6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선생 등이 이끈 시위군중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군수를 향해 만세시위 참가를 외치며 철원 전역을 누볐는데, 철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주모자 가운데 선생을 비롯하여 6명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평남 평양에서 독립운동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단원과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최상홍(崔相鴻)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음력 11월 평남 평양에서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여 단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조합 설립에 공동으로 출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는 선생 등이 단원과 자금의 모집에 그치지 않고 자금의 출자를 통해 공성단을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항구적인 조직으로 전환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위해 선생은 1천원의 적지 않은 금액의 출자를 약정하였다.

평남 강서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광동 중한협회 조직에 참여한 차정신(車廷信)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3월 평남 강서에서 일본 헌병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학살하자 사천주재소(沙川駐在所)를 공격하고 헌병을 처단하여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받았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까지 상해와 광동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사원 및 임시사료편찬회 조역(助役), 대한적십자회 자유대 대원, 중한협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5년 황포군관학교와 광동대사두비행학교(廣東大沙頭飛行學校)에서 수학하고, 1926년 여월(旅粵) 한국혁명군인회에서 활동하면서 한인 청년들의 중국 군관학교 입교를 후원하였다. 선생의 부친 차진규(車鎭奎) 선생은 사천(沙川)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총탄에 순국,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일제 말기 일본에서 항일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한 김덕순(金德順)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평북 선천 출신으로 동경에서 비밀결사 죽마계(竹馬契)에 가입하고, 이후 1941년 4월 서울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하여 죽마계 사업부를 조직하여 부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동안 활동 이후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포상이 미루어지다, 이번에 1947년 4월 13일 서울 명동유치원에서 선생을 포함한 '죽마단(竹馬團, 죽마계) 사건 관계 고인(故人)들의 추도식'이 거행되었다는 일간지(『경향신문』1947.4.12)의 보도기사를 찾아내 광복 이전에 사망한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로써 선생을 포함, 광복을 목전에 두고 안타깝게 사망한 이해룡(李海龍; 애국장, 1990), 구철회(具喆會; 애족장, 1990), 정학룡(鄭學龍; 애족장, 1990), 안종식(安鍾植; 애국장, 2014) 등 죽마계 활동자 다섯 분이 영예를 되찾았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47명(애국장 28, 애족장 19), 건국포장 8명, 대통령표창 10명이다.

훈ㆍ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97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번 포상자 65명 중 국가보훈처가 일제의 행형기록과 정보문서, 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자체 발굴․포상하게 된 독립유공자는 58명이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0,497명, 건국포장 1,150명, 대통령표창 2,682명 등 총 14,329명에 이른다.

■ 정부포상자 명단(65명)

 

건국훈장 애국장(28)

김덕순 金德順 (일본방면)
김동환 金東煥 (의 병)
김만대 金萬大 (의 병)
김보배 金寶拜 (의 병)
김양준 金陽俊 (의 병)
김유성 金有星 (의 병)
김응구 金應九 (의 병)
김찬경 金贊京 (의 병)
김치국 金致局 (의 병)
김치호 金致浩 (만주방면)
박승혁 朴承赫 (국내항일)
박인곤 朴引坤 (의 병)
박정문 朴正文 (의 병)
박희열 朴喜烈 (일본방면)
선백중 宣百仲 (국내항일)
성낙중 成樂衆 (3·1운동)
손성원 孫聖元 (의열투쟁)
안경순 安京順 (의 병)
엄일봉 嚴一奉 (의 병)
윤재형 尹在炯 (국내항일)
이운봉 李雲鳳 (만주방면)
장명운 張明云 (의 병)
천순호 千順浩 (의 병)
최순보 崔順甫 (의 병)
최순종 崔順宗 (의 병)
최인숙 崔仁叔 (의 병)
한신옥 韓信玉 (만주방면)
한진수 韓鎭壽 (의 병)

건국훈장 애족장(19명)

김세현 金世鉉 (만주방면)
김점쇠 金点釗 (3·1운동)
변윤학 邊允學 (만주방면)
신영학 愼寧鶴 (국내항일)
오봉희 吳鳳熙 (만주방면)
유공술 柳公述 (의 병)
이성윤 李成允 (만주방면)
정태인 鄭泰仁 (의 병)
조병철 曺秉喆 (국내항일)
조성학 趙性學 (의 병)
조양현 趙良玄 (의 병)
조윤봉 趙允奉 (의 병)
차석록 車錫錄 (의 병)
차정신 車廷信 (임시정부)
최병환 崔炳奐 (만주방면)
최상홍 崔相鴻 (국내항일)
최선경 崔善京 (의 병)
최판동 崔判東 (의 병)
한인수 韓仁秀 (의 병)

건국포장(8명)

박명근 朴命根 (학생운동)
방정환 方正圜 (만주방면)
신동욱 辛東旭 (의 병)
정정학 鄭正學 (의 병)
차재정 車載貞 (만주방면)
채 오 蔡 五 (만주방면)
최성권 崔聖權 (의 병)
홍익선 洪益先 (의 병)

대통령표창(10)

김경순 金敬順 (3·1운동)
김달영 金達泳 (3·1운동)
석연극 石鍊極 (3·1운동)
신형규 辛亨奎 (만주방면)
예대희 芮大僖 (만주방면)
이소희 李昭姬 (3·1운동)
이원근 李元根 (3·1운동)
정문선 鄭文善 (3·1운동)
정치화 鄭致化 (의 병)
최병현 崔炳鉉 (3·1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