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원은 지난 8월 28일 제2회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한·중 국제학술회의를 국립박물관 소강당에서 열었다.

홍산문화의 제사의식이 중국 고대 교사지례(郊社之禮)에 영향 미쳐


요령사범대 전광림 교수는 1992년 발굴된 동산취 제단에 관해 “홍산문화의 조상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천지, 조상, 산천 등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중국 고대 서주(西周)이전의 교사지례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단국대 복기대 교수는 홍산문화와 주나라는 약 2천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고 주나라의 본거지는 서쪽, 홍산문화의 근거는 동북쪽 임을 지적했다. 전 교수는 “홍산문화는 중국 고대의 하·상을 거쳐 주에 이르렀고 하나라는 동북아에서 기원했다”고 답했다.
 
홍산문화는 씨족부락을 기반으로 한 신앙동맹, 기후변화로 동남쪽 이주


우건설 적봉시 문화국장은 사정상 참석지 못해 논문으로 뜻을 전했다.
‘홍산문화는 황하유역 및 동북아 지역 신석기 문화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가진다. 사회적 분업도 심각하지 않아 본질상 씨족부락을 기반으로 하는 신앙동맹으로 절대적 권력계층도 없다. 홍산의 옥기나 대형 적석총도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무당이 죽은 후 하늘을 모시고 백성을 보호하려는 직업적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홍산문화인은 의지하던 정신적 지주가 붕괴한 후 자신들이 만들었던 우상을 훼멸하고 점점 추워지고 건조해 지는 기후로 말미암아 동남쪽으로 이주했다’고 주장했다.


초기국가 형태, 중국 중원과  다른  문화


이에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적석총이나 석관묘는 중원에서 보이지 않는 북방문화계통으로 중원지역과는 처음부터 이질적인 문명권이다. 그리고 많은 학자가 홍산문화를 씨족연맹으로 보다는 이미 초기국가단계 또는 초기문명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어마어마한 옥기가공을 위해 분업은 필수적이며 홍산 흥륭와 문화에서 발견된 옥결에 쓰인 옥은 요동반도 끝에서 나오는 수암옥이다. 또 이 옥결과 동일한 것이 서기 전 6천 년경의 유적으로 밝혀진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도 발견된다. 이를 살펴보면 이미 요동과 요서, 한반도 북부는 하나의 문화권이었다. 또 기후의 변화와 정신 지주의 붕괴라는 두 요인만으로 거대한 문화의 소멸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고 논평했다.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까지 시야 넓혀 우리 신석기문화 연구해야


신숙정 한강문화재연구원장은 “우리 신석기문화 연구가 1930년대 일본학자의 영향으로 빗살무늬 토기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전파설을 따랐다. 80년대 이후 다양한 연구와 발굴성과로 신석기에는 현재의 국경, 영토의 개념 없이 한반도 북부, 홍산문화지역인 중국 동북부, 러시아가 동일 문화권을 형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일본학자에 의한 전파성 이론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 주변문화와의 교류에 관한 연구와 함께 우리 신석기문화의 시공간을 확대해야 할 필요”를 지적했다.


신석기 무덤 속 토기  홍산문화와 같아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 관장은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발굴된 신석기 집단묘의 매장형태, 인골을 덮은 토기, 매장품인 옥기, 팔찌, 발찌 등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일본 구주지역, 중국 동북부 지역 신석기 무덤과 비교 분석했다. 임 관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토기인 덧무늬토기를 비롯한 대표적인 신석기토기 문양, 옥기 등 많은 요소가 중국 동북지역 소위 홍산문화권 지역에서 발굴된 것과 같다. 이는 바다와 반도를 사이에 둔 한·중·일의 빈번한 접촉과 교역이 선사(先史)이래 상존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