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물이 흐르는 곳으로 사람들은 따라간다. 그러면서 길이 생긴다. 길은 바닷길(海路)도 있고 강물을 따라가는 육로(陸路)도 있다. 지금은 하늘길(航路)도 생겼다.
 길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그곳에는 시장이라는 것이 자연히 생긴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서로 교환하면서 교류가 일어난다. 이런 물물교류를 주된 일거리로 하는 사람을 장사꾼, 상인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장사꾼이란 단순한 물물교역의 주역만이 아니다. 그들은 문화교류에도 단단히 한 몫을 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중심에 한민족의 개성상인, 유대민족의 유대상인 그리고 중국 민족의 화상이 있었다. 이들 세 상인은 각자 역사와 민족성이 독특해서 그들 나름의 상술(商術)과 상혼(商魂)을 가지고 지금까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됐던 중국 국보전에는 3~8세기 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한 동·서문화의 교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물 53점이 왔다.
 이 유물들을 보면서 옛날 장삿길의 원초가 비단으로 시작되어 세계문명의 대교류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 동·서양 경제, 문화 번영의 다리역할을 해 왔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 유물전을 보면서 우리 한민족 상인들의 역사도 만만치 않음을 체득했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중국을 경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까지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이를 한반도까지 들여온 개척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상인정신이 바로 개성상인으로 이어짐을 짐작하게 한다.
개성상인은 신용을 목숨과 같이 여기며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그들은 우리 민족성인 근면, 성실과 은근과 끈기에 바탕을 두고 일찍이 대외거래를 통한 외국문물을 접하면서 높은 지식수준을 쌓았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의 상업합리성과 상술을 개발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그 결과 서양보다 2세기나 앞서서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이라는 독특한 복식 부기법을 고안하여 부기회계 문화의 개척자라는 금자탑을 이룩했다.


서양보다 2세기 앞서 복시부기법 고안


 유대민족은 인류역사상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온 민족이다.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세상의 뒷골목을 떠돌며 갈기갈기 찢어지고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인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돈의 힘이었다. 유대정신문화의 근간이며, 유대 5천 년의 지혜와 슬기가 모두 들어 있는 그들의 정신적 보고(寶庫)인 탈무드에도 돈이란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내리는 신의 축복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유대상인은 전통적인 상술 바탕을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입에 두고 있다. 특히 어린이는 한번 고객이 되면 평생고객이 된다는 인간 본성의 회귀심리를 터득했다. 또 입을 대상으로 하는 식품사업에 정성을 들이라고 했다. 전 세계 곡물시장을 거의 유대 거상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지나칠 일은 아니다.
 중국화상들은 한·당시대 이미 중앙아시아 비단길을 누비면서 초인적인 능력을 보였지만 체계화된 장사꾼은 명·청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중국 상인들의 기질은 중국인 특유의 기질과 맥을 같이한다. 만만디(慢慢的)하며 참을성(忍)과 신뢰가 대단히 강하다. 한번 신의를 주고받으면 생사를 초월한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문학 영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혈연과 지연의식이 남다르다. 이런 기질적 심성을 바탕으로 중국의 장사꾼들이 지금은 화상이라는 이름으로 동남아는 물론 세계 각국을 누빈다.
 중국 상인들의 강한 동향의식(同鄕意識)과 동향동업(同鄕同業)정신이 바로 세계 어디를 가나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집성촌을 이루었다.
 우리 속담의 “돈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선조의 깊은 철학을 음미해야한다. 개성상인에게는 “인색하면 잃고 베풀면 얻는다”는 정신이 있다. 철저하게 근검절약하지만 그 바탕에 우리 고유의 홍익철학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격동의 세월을 지나온 우리는 서양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 민족정신인 홍익철학을 잊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누구나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현상이 크다.
 유대상인은 그들의 민족정신이 담긴 토라와 탈무드를 생명처럼 여겼고, 중국의 화상은 공맹(孔孟)정신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발전하고 성공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조상이 물려 준 홍익정신을 바로 세워 이익의 사회환원으로 밝고 건강한 경제문화를 이뤄야 하겠다. 


장홍렬 (기업평가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