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9세기에 일어났다면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될 수도 있는 큰 사건이었다.

지난 5일 아침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괴한이 흉기를 휘둘러 볼과 팔에 큰 상처를 입었다. 칼이 1~2cm만 위치가 달랐다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대사는 봉합수술을 마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이번주 내로 업무에 복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사건 발생 직후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다.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며칠간 언론지상에는 약속이나 한듯 뉴스 타이틀을 이렇게 뽑았다.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

괴한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카피도 무리는 아니다. 괴한은 진보성향의 단체 대표인 김기종 씨다. 김 씨는 반일, 반미 성향의 인물로 주한 일본 대사에 대한 테러도 시도한 적 있다. 이번 피습 직후에는 “미국의 전쟁 훈련을 반대한다” “미국 때문에 남북이 통일을 못하는 것”이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김 씨는 북한을 7차례 방문했으며 30여 점의 불온서적도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나 국가보안법 위반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5일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 이후 이례적으로 발빠르게 논평을 발표하며 김 씨를 옹호하고 나섰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미국의 현지 식민지 총독과 같은 미국대사가 직접 분노의 칼 세례를 당한 것”이라며 “미국을 규탄하는 남녘 민심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김 씨를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같은 것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침착한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사건 직후인 5일 “무분별한 복력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한∙미동맹은 강력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 언론들이 ‘테러’라고 규정한 점에 대해서 현재까지는 ‘공격’ 혹은 ‘습격’이라는 단어를 쓰며 이번 사건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듯하다.

대신 국내 정치는 이번 사건으로 새로운 정쟁(政爭) 거리 하나가 늘어나면서 활기(?)를 띈다. 새누리당은 작정하고 ‘종북몰이’에 나섰고, 김 씨와의 교류를 해온 국회의원들이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세에 몰렸다. 이와중에 양당 대표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너나 없이 리퍼트 대사에게 병문안을 가거나 인사를 전하며 존재감 어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이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범죄행위인지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를 지켜봐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종북 논란’이 다시 정쟁의 뇌관으로 급부상할지, 아니면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 강화 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정치권이 지나치게 모든 이슈를 정쟁의 도구로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쟁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종북’이냐 아니냐를 두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를 수 있는, 내 편을 확실히 함으로써 싸움거리를 만들 아주 좋은 소재다. 하지만 국회는 정쟁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정치권은 정쟁 이전에 국민의 대표로서 그 대표성을 국민의 삶을 위해, 나라의 안녕을 위해 건강하게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한, 건설적인 정쟁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다만 정쟁만을 위한 정쟁은 국민의 외면을 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