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에서 온전한 형태의 진흙벽돌 '초낭(草囊, 풀로 엮어 진흙을 담은 주머니)' 처음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재)전북문화재연구원(이사장 최완규)이  김제 벽골제 발굴 조사하는 중 제방 동쪽 부분의 보축 제방(補築 堤防,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에 설치한 보강 시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보축 제방의 성토층 하부에서는 '초낭'이 발견되어 주목받고 있다. 초낭은 김제 벽골제에서 사용된 부엽공법(敷葉工法 나뭇가지,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방식 )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 카메이 유적(7~8세기) 등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김제벽골제 보축제방 하층에서 초낭이 확인됐다. <사진=문화재청>

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맞추어 배치된 초낭은 연약한 지반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7세기 전후의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 원성왕 6년(790)에 전주 등 7개 주(州) 사람들에게 제방을 증ㆍ수축을 하게 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 복숭아씨가 출토되었으며 그 하층에서는 담수(淡水) 지표종(指標種)인 마름(한해살이 물풀)이 발견되어, 김제 벽골제가 과거 담수지(淡水池)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 초낭(草囊)은 풀로 엮어 진흙을 담은 주머니이다. <사진=문화재청>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最大) 수리시설로 알려진 김제 벽골제는 2012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 중에 있으며, 올해 조사는 당초 직선 형태였던 제방이 일제 강점기에 곡선 형태로 변경되어 하부구조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골마을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보축 제방의 규모는 길이 약 75m, 너비 약 34m이고, 성토층의 최대 잔존높이는 160㎝로, 남서-북동 방향으로 좁고 기다란 띠 모양(帶狀)을 이루며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단면 토층은 약 140~300㎝ 간격으로 성분이 상이한 토양이 ‘之’자 형태로 맞물려 교차 성토된 양상을 띠고 있다.

▲ 보축 제방 단면 토층. <사진=문화재청>

 이 밖에도 제방의 기저부(基底部, 가장 아랫부분)를 조사한 결과, 제방은 직선으로 연결되었고 일부 경사면에서 목주열(木柱列, 나무기둥열)이 확인되었다. 목주열은 2열이 연속성을 보이고, 성토된 제방을 더욱 견고히 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시설일 수 있다. 또한, 제방 기저부의 최대 너비는 27.67m로 조사되나, 일부 확인되지 못한 부분을 감안하면 제방의 너비는  30m 내외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저부의 넓이가 21m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사를 통해 살펴본 넓이는 이보다 넓게 확인돼 지점별로 다른 넓이로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발굴조사와 관련한 현장설명회와 자문위원회가 오는 13일 오전 10시 30분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282 일원 발굴현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