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8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아하! 그렇구나. 바로 이거야.”
“내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이구나. 마치 그 옛날 단군왕검 할아버지처럼...... 밝고 환한 배달족의 후예이고 천손이며 한민족의 일원이었구나.”

그런데 우리 역사인식의 현 주소는 어떤가? 역사 교과서를 펼치면, “이게 뭐야? 우리나라 역사가 자랑스럽기는커녕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 내가 뉘 집 자식인거야?” 내가 뉘 집 자식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 혼란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찾아 헤맬 것이다.

이렇듯 우리 역사가 이해 안 되니까 재미도 없고 흥미를 잃게 된다. 좀 더 재미있는 역사를 찾게 된다. 남의 나라 역사라도 좋다는 것이다.
결국 홍길동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한 것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홍길동 이야기를 꺼내 보자. 다음은 『홍길동전』의 한 장면이다.
“홍길동이 마음이 답답하여 책을 덮고 뒤뜰로 나갔다. 홍길동의 아버지 홍판서 역시 쏟아지는 달빛에 마음이 동해 뒤뜰로 나갔다가 우두커니 달을 보고 서 있는 홍길동을 보았다. “잠은 자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홍길동의 답인즉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하여 나왔단다. 홍판서 이유를 짐작하지만, 굳이 왜냐고 물었다. 홍길동 가로되, “소인이 평생 서러운 바는 대감의 혈육으로 당당한 남자가 되었으나, 그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 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한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대감’이라 부르고, 자신은 ‘소인’이라 부른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홍판서 말이 궁하다. “재상가 천생(賤生)이 비단 너뿐이 아니거늘, 네 어찌 방자함이 이와 같으냐? 차후 다시 이런 말이 있으면 용서치 못하리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홍판서는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입막음을 하고, 그런 곤란한 것은 다시 묻지 말란다.”

홍 판서는 왜 답이 궁색했던가. 다른 이유가 없다. 조선을 지탱해 왔던 지배이념, 즉 정통성을 따지는 유교적 가부장제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아비라 부르지 말게 한 것이다. 이 잔인한 모순이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데에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었다. 권력은 걸핏하면 원래 이름을 원래 이름대로 부르지 못하게 한다.

세상이 희한하여, 원래 말이 그 뜻을 잃고 엉뚱한 말로 바뀌어 불린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부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권세가 오늘날도 통한다. 아버지는 아버지, 형은 형이라 불러야 정상이다. 또 사슴은 사슴, 말은 말이라 불러야 정상이다.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했던 것은 옛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고 어쩌면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도 홍길동과 같은 신세가 아닐까. 물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오늘까지도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역사를 왜곡하고나 날조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학계에도 분명 권력이 존속한다. 나아가 국가들 간에도 권력은 존재한다. 그 권력의 힘으로 역사를 지배하고자 한다. 역사는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사는 인류의 유산이며 보물이다. 역사를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 왔다는 것이 그 동안 역사가 보여 준 진리이다. 오죽했으면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연산군마저도 역사를 두려워했을까.

그렇다면 실제 역사는 어떤가? 실제 역사는 가슴이 뛴다.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친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그것이 역사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교육의 현장에서 만나는 역사교과서는 너무 메마르다 못해 무미건조하다. 역사교과서를 넘기는 순간 우리의 아이들은 꿈나라로 빠져 든다. 그때는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역사 교육의 현장에 서 본 사람들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돌릴 수 없다. 그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을 나무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대개 한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나선다고 한다. 역사교육을 위한 교과서도 온 마을이 나설 때다. 역사학자나 교과서 집필자의 몫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고 무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역사 교육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역사 교과서는 그 자체가 한 권의 역사책이며, 살아있는 스토리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지정된 역사 교과서만 읽어 왔다. 아니 읽힘을 당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과서라고 할 때 꼭 국정교과서나 검ㆍ인정 교과서만 국한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관점의 역사책을 골고루 읽을 필요가 있다. 사고의 합리성과 유연성을 늘리려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 현장은 어떠한가? 초등학교에서는 국정 교과서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우리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역사교육의 시작을 중학교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초등학교 6년 과정은 허송세월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교과서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교과서가 하나 뿐인 교실에서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사고를 도모할 수가 없다. 가르치는 교사의 뜻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고, 배우는 학생들이 저마다 개성을 살려 이해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교과서의 의미가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앞으로 살아 움직이는 우리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역사교과서를 기대해 본다.

역사의 참뜻은 어제의 사실을 그저 지난 일이나 단순 흥밋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 내일을 설계하는 디딤돌로 만드는 데에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삶의 과정에서 그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 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다듬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 빛나는 보물로 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역사가들의 몫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서술할 때 옛날에 있었던 일을 오늘날의 눈으로 보고 내일을 생각하며 기록한다. 옛날 일 못지않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생각이다. 이처럼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현재의 삶, 즉 우리는 늘 역사 속에 살고, 또 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조선의 새로운 인식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뿌리 역사이자 첫 출발점인 고조선이 반만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인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단군이 고조선을 통치할 때 ‘홍익인간’이라는 궁극적인 평화철학을 기초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편협한 가치관이 아니라 인종, 종교, 국가 등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천지인 사상과 홍익인간 정신이라는 고유한 사유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한민족은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든 인류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가 다시 한 번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한 역사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는 것이 고조선의 역사적 의미이며, 또한 고조선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기 4347년 9월 19일

▲ 민성욱 박사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