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백여 년 전, 천여 년 전의 전통문화를 찾는 것은 찬양과 흠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빛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은 그런 점 있어서 아주 유리하다. 재해석할 유산들을 시대별로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휴면계좌라서 아직 아무도 안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휴면계좌를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열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의 시각, 보편적 학문의 논리들을 적용해 숨겨진 비밀을 해석해 내어야 한다. 오래된 시각, 폐쇄된 이론으로는 결코 비밀번호를 풀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비밀이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비전의 홍수를 맞게 될 것이다.” _ 책 머리말 중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 나왔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3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사업 선정작인 <한국문화버리기>는 기존의 고미술, 고고학적 이론보다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보편적 학문의 시각으로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인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고 있다.

 

저자는 총 5개의 한국 문화를 선별하여 철학이나 미학, 예술학, 디자인 이론 등 현대 인문학적 메스를 가해 세밀하게 해부하고 있다. 예컨대 포드 자동차에서 기능주의 디자인에 이르는 서양의 산업디자인의 흐름은 고구려의 철갑옷을 설명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석굴암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석굴암에는 당시 가장 발달했던 서양 문화가 구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을 만든 신라인은 당대 그리스나 로마문화의 정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던 국제적인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석굴암에 담긴 비례의 규칙들은 그리스 조형미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돔 구조는 로마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존불에는 석가모니의 오리지널 판형을 가져왔으며, 그 위에 중국과 삼국시대를 거쳐 완성된 완벽한 불상의 전형이 총 집대성되어 있다.” _ 책 본문 중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의 대표적 건물인 파르테논 신전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 현대 건축과 서양의 총체적 건축역사, 세잔느에서부터 몬드리안, 피카소에 이르는 현대 미술도 한국의 전통문화의 추상성을 설명하는 데에 인용됐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세계문화의 다양한 특징과 비교하며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잘 모르고 있던 현대 문화와 서양 문화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분석 이론을 다양한 인포 그래픽으로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한국 전통문화를 설명했던 ‘소박하다거나 자연스럽다’ 등의 기존 논리들이 사실은 이론적인 근거가 없는 감성적 표현에 불과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진 가치를 가려 버리고 오해하게 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서양 문화에 대한 우월주의나 고립된 국수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확립할 수 있다.

한국문화버리기 ㅣ 최경원 지음 ㅣ 현디자인연구소 ㅣ 289 페이지 ㅣ 1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