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0호,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 그리고 우리 국민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으로 꼽는 '한글',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한글과 한글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가,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왜 만들었나, 일부 양반들은 왜 한글 반대 상소를 올렸는가, '훈민정음, 언문, 한글'은 어떻게 다른가, 훈민정음 28자를 만든 원리는 무엇인가, 한글(훈민정음)을 왜 과학적인 글자라고 하는가, 15세기 훈민정음 기본 낱글자 가운데 없어진 글자는 무엇이며 왜 없어졌나,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이 되었나, 왜 ‘ㄱ, ㄷ, ㅅ’을 ‘기역, 디귿, 시옷’이라 부르게 되었나, 현대 한글의 자모음이 결합된 글자 수가 왜 11,172자인가 …

▲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게기로 한글과 한글날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이야기 10+9’ 제작ㆍ배포했다.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한글과 관련하여 무수히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국민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글날이 국경일이자 공휴일임을 정확히 아는 비율은 응답자의 절반(52.1%)에 그쳤고, 한글날이 공휴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30%가 넘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 해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며(65.3%), 한글날이 반포일을 근거로 제정된 것을 모르는 경우도 42.2%에 이르렀다. 15세기 훈민정음 반포 당시와 현재의 한글 자모의 수를 정확하게 아는 비율은 55.8%에 그쳤다.
국민 모두가 꼭 알아야 한글 상식으로는 △한글날의 의미,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역사적 배경, △한글창제의 원리 등을 꼽았고,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 △세계 속에서의 한글의 의미 등도 정확하게 알고 싶다고 답했다.

문체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이야기 10+9’를 제작ㆍ배포하고 문체부 홈페이지(http://www.mcst.go.kr)에도 5일 게재했다.

이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이야기 10+9’는 크게 '한글(훈민정음) 창제 이야기' , '15세기 훈민정음 이야기' , '현대 한글 이야기', '한글 역사 이야기', '세계 속의 한글 이야기' 다섯 마당으로 구성하였다.

첫째 마당 ' 한글(훈민정음) 창제 이야기' 에서는 한글은 언제 만들었나, 한글은 왜 만들었나, 일부 신하들은 왜 한글 반대 상소를 올렸나, 한글을 반포할 때 도움을 준 신하는 누구인가로 나누어 한글 창제자, 창제 시기, 창제 이유, 창제 반대 이유, 한글 반포할 때 지원한 신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둘째 마당 '15세기 훈민정음 이야기'에서는 ‘훈민정음, 언문, 한글’ 등의 용어는 어떻게 쓰였나, 훈민정음 28자를 만든 원리, 한글(훈민정음)을 왜 과학적인 글자라고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은 무엇인가, 《훈민정음》 언해본은 무엇인가로 나누어 정리했다.

이 자료를 통해 '훈민정음', 언문, '한글'을 알아보자.

조선 시대에는 주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일까. 이 자료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주로 '언문(諺文)'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고 세종대왕도 그러했다. '훈민정음'은 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주로 특별할 때만 사용하였다.

'언문'은 보통 우리 고유의 문자 '훈민정음을 낮춤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하는 말이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그대로 옮기어 적을 수 있는 문자'라는 뜻이다. 세종대왕도 이 이름을 사용한 기록이 있고 특별한 경우에만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썼다. '언문'은 궁중과 일부 양반층, 백성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얕잡아 보아 '언문'이라고 쓰다 보니 낮춤말이 되어 버렸다.

'한글'은 '오직 하나의 큰 글, 한나라의 글'이라는 의미로 1910년 이후에 주시경 선생에 의해 널리 퍼졌다. 주시경 선생은 1913년 3월 23일 조선언문회(지금의 한글학회) 총회에서 '배달말글몯음'을 '한글모'로 바꾸기로 결정하였고, 1914년 4월에는 '조선어강습원'을 '한글배곧'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한글'은 주시경 선생에 의해 1913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남선이 이름을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어 셋째 마당 '현대 한글 이야기'에서는 한글날의 유래, 15세기 훈민정음 28자 가운데 없어진 글자와 없어진 이유, ‘ㄱ, ㄷ, ㅅ’을 ‘기역, 디귿, 시옷’이라 부르게 된 유래, 현대 한글의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 수 등을 다룬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맨 뒤를 보면 '정통 십일 년 구 월 상한(上澣)'이라고 적혀 있다. 정통 11년은 1446년을 가리키고, '상한'은 '상순'과 같은 말로 1일부터 10일까지를 뜻하는데 당시 조선어학회에서는 1일부터 10일 중 어느 날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10일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한 날로 정했다. 1945년부터는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꿔 10월 9일에 기념식을 거행하기 시작하였다.

한대 한글의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수는 모두 11,172자이다. 한글 기본 자모의 수는 24자(자음14자, 모음 10자). 이를 바탕으로 응용하여 확장한 글자로 자음 5자(ㄲ, ㄸ, ㅃ, ㅆ, ㅉ), 모음 11자다. 이를 가지고 계산하면 첫소리에 올 수 있는 자음자의 수(14자+ 5자) 19자. 가운뎃소리에 올 수 있는 모음자의 수는 (10자 + 11자) 21자이다. 끝소리에 올 수 있는 받침 자음수는 모두 27자.

받침 없는 글자 수 (19자*21자) 399자

받침있는 글자 수 (399자*27자) 10, 773자. 이를 더하면 11,172자.

넷째 마당 '한글 역사 이야기'에서는 세종대왕 이후의 임금들의 훈민정음 사용, 조신 시대에도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있었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어떻게 지켰나, 광복 후에 우리 말글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다룬다.

다섯째 마당 '세계 속의 한글 이야기'에서는 '세종대왕상'과 '세종학당'을 소개한다.

‘세종대왕상’의 정식 이름은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이 상은 유네스코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문해 보급에 헌신한 개인 및 단체를 격려하기 위해 주는 상입니다. 우리 정부 요청은올 1989년 제정되었다. 이 상은 '문해 사업 직접 진행,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문해 사업 추진, 문해 보급을 위한 언론 캠페인, 문해 관련 자료 개발 또는 학술 연구 및 조사, 청소년 대상 문해 사업 수행, 언론을 통한 문해 사업 전개 ' 등 특히 개발 도상국 모국어의 발전, 보급에 기여한 개인 및 단체에 주는 상이다.

'세종학당'은 대한민국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기관이다. 세종학당은 케이팝,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 문화가 국외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이 증가함에 따라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보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글 관련 자료를 배포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자료가 해외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51개국 117개소)과 한글학교(1,934개)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