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가 원했던 진정한 독립을 우리들이 이어가리!
유관순 열사가 원했던 진정한 독립을 우리들이 이어가리!
  • 글/사진=문지숙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강사
  • streamsong@daum.net
  • 승인 2013.09.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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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답사기 - 충남 천안 유관순열사기념관

 학교에서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 수업을 하며 독립투사에 관해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들의 입에서 처음 나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아는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대한독립만세운동에 바치신 유관순열사이시다. 지난 일요일 ()우리역사바로알기 시민연대에서는 충남 천안시에 있는 유관순열사기념관을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40명과 함께 답사의 길에 올랐다.

▲ 천안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기념관에 들어서기 전 보이는 큰 비석에는 순국소녀유관순열사 초혼묘봉안기념비'라는 글이 적혀있다. 비문을 읽으며 우리 모두는 절로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유관순열사는 19021116일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유중권(柳重權)선생과 모친 이소제(李少梯)여사 사이에서 5남매 중 가운데 둘째 딸이었다. 가산을 털어 향리에 흥호(興湖)학교를 세워 국권 회복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운동을 전개한 계몽 운동가이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유관순열사는 민족의식을 함양해 갔다.
▲ 순국소녀 유관순 열사 초혼 묘 봉안기념비
어린 시절 열사는 한글을 따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익혀 성서를 읽고 줄줄이 외울 정도로 총명한 소녀였다. 후에 선교사 샤프 여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교비장학생으로 수학하게 된다. 먼저 다니고 있던 사촌언니 유예도와 함께 신학문을 배우며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191931일 고종 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프라이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열사는 서명학,  김분옥 등 학생 시위결사대 6명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학교가 만세 시위운동의 계획 및 추진 기점이 되자 일제는 310일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임시휴교령을 내린다. 이에 열사는 아직 만세운동이 전개되지 않고 있던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4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고 3,000명의 민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치는 어린 유관순열사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들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천 헌병주재소 헌병들의 총검에 죽임을 당하고 큰 부상을 입었다. 그 자리에서 유관순열사의 부모님도 목숨을 잃으셨다. 그럼에도 열사는 굴하지 아니하고 더욱 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무엇이 이토록 간절하게 만세를 외치도록 한 것일까? 오직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 컸으리라... 그 간절함을 느끼며 기념관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는 아이들의 뒷모습 속에서 미래의 유관순열사와 같은 호국인재의 모습이 느껴졌다.
 
▲ 용수를 씌우고 일본 순사가 유관순 열사를 끌고 가고 있다.
만세를 외치다 잡힌 수많은 사람들은 감옥에 용수를 쓰고 들어왔다. 굳이 용수를 머리에 씌운 이유는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심과 혐오감을 일으키고 독립투사의 얼굴을 우리민족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공포심으로 독립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지를 꺾으려 한 일제의 참으로 치밀한 계획과 만행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유관순열사의 학창시절.
열사는 천안의 일본헌병대를 거쳐 공주재판소로 넘겨졌다. 그리고 어린학생이고 시위대가 인명을 살상하지 않았음에도 아우내 만세운동가 중 최고형인 5년형을 받는다. 그만큼 독립만세운동에서 유관순열사의 역할이 컸음을 의미한다.
옥중에서도 열사는 독립만세를 부르고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고취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럴 때마다 일제는 가혹한 매질과 고문을 했지만 유관순열사의 뜻을 결코 꺾을 수 없었다. 19203.1운동 1주년을 맞아 감옥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열사는 이 일로 수많은 고문을 받고 같은 해 928일 오전 820분 서대문형무소 어두운 감옥에서 열아홉의 나이에 끝내 그토록 원하던 독립된 나라를 보지 못하시고 순국하셨다.
 
▲ 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유관순열사의 가족.
기념관 앞에는 유관순열사의 독립운동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자료들을 100년 뒤 후손들에게 전해 주기 위한 타임캡슐이 있어 이색적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 열사의 업적을 기리는 일일까? 유관순열사와 같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우리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유관순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며칠 전 일본의 국권침탈과 식민지화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관순열사가 옥중에서도 그토록 원하던 진정한 독립이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드는 건 왜일까?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의 역할이 매우 큼을 절실히 느끼며 유관순열사기념관 답사 후기를 마무리한다.
▲ 유관순열사의 나라사랑과 독립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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