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암 환자는 1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 수명 81세까지 산다면 남자는 3명 중 1명이, 여자는 4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셈이다. 조기발견과 빠른 암 치료법으로 암 환자 생존율도 64%가 넘었다. 통계는 암에 걸려도 살 수 있다고 말해주지만, 막상 3명 중 1명이 된다면 생각은 달라진다.

최근 한국식 명상법 '뇌파진동'이 유방암 환자들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었다. 서울아산병원 암교육센터는 유방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51명에게 6주 동안 총 12회의 ‘뇌파진동’ 명상을 시행한 결과 명상에 참여하지 않은 환자 51명에 비해 불안, 피로감이 감소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의 제 1저자인 서울 아산병원 김연희 간호본부장을 지난 5일 아산병원 암교육센터에서 만났다.

"환자들은 암에 걸린 것이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내가 잘못해서 암에 걸린 것이 아님을 인지하죠. 병에 걸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뇌파진동 명상으로 해소합니다."

서울아산병원 암교육센터는 암환자와 가족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암 관련 통합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암교육 코디네이터와 자원봉사자가 상주하고 있어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안내받을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 2006년 암교육센터를 맡은 후 약 3년간 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조사했다. 센터가 2009년 문을 열기 전까지 의학통계학과 임상조교수, 암교육센터 코디네이터와 책임의사 등 전문가들이 각 프로그램의 과학적 근거를 찾고, 직접 체험해 보고 평가해 환자들한테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암 환자들에게 좋다는 각종 대체요법이 난무하여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아산병원이 추천하는 대체요법은 신뢰감이 있는 서비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조사와 연구 끝에 나온 프로그램 중 하나가 '마음을 다스리는 암환자 명상요법'이다.

▲ 서울아산병원 암교육센터에서 환자들이 뇌파진동 명상을 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외국에서는 명상수련이 어린이부터 성인, 일반인부터 환자까지 다양하게 적용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명상수련이 대부분의 인도나 티베트 요가에서 비롯된 것이라, 우리나라 사람한테 맞는 명상법을 찾다 ‘뇌파진동(Brain Wave Meditation) 명상’에 주목하게 되었죠.”

뇌파진동은 우리나라 전통 육아법 단동십훈에 실린 ‘도리도리’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뇌교육 프로그램이다.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드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 심신을 이완하는 두뇌 건강법으로 한국뇌과학연구원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심신단련법과 그 원리를 바탕으로 현대화했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이 서울대학교 병원, 런던대학교 등과 공동 연구한 결과, 뇌파진동 명상은 두뇌 노화방지와 우울증 감소, 수면장애 개선 등에 다른 명상에 비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우리 병원에서 기업교육 회사인 HSP컨설팅 유답(대표 우종무)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병원 내 명상 동호회가 생기며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죠. 왜 세상이 늘 악(惡)으로 치달을까 궁금했습니다. 2004년 단월드에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고 여기에 그 답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암환자들은 치료과정 중에 많은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호소한다. 암환자 37.8%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이중 여성 암환자가 많다. 또 방사선요법을 받는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기간이 길다. 수술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술하고 항암요법, 방사선치료, 호르몬치료까지 받아야 한다. 5~6개월간 병원을 다녀야 하니 피로감도 크고 지치는데다 여성성을 상실한다는 현실에 우울함도 커진다. 그러나 암 치료 과정에서 치료에 집중하다보면 이런 증상은 간과하기 쉽다.

▲ 김연희 서울아산병원 간호본부장.

"아프고 지친 암환자들이 과연 정상인처럼 명상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암환자를 위한 맞춤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김연희 본부장은 서윤정 단월드 명상트레이너와 함께 6주간 12회 과정으로 6개의 명상 주제를 정해 어느 시점에 참여하더라도 6개의 주제를 순환하여 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대화하기, 암에 대해 수용하고 건강회복에 대한 의지 다지기, 자기 칭찬 및 긍정의 메시지로 자존감 높이기, 자신이 세상의 빛처럼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기, 건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등을 통하여 현재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고, 현재 상황에 감사하며, 더 나아가 건강회복을 위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유방암 환자는 어깨와 팔 운동에 제한이 많습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져 가발이나 모자를 쓰고 다니죠. 일반 명상센터에 가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동작도 따라 하기 힘들고, 가발과 모자를 쓰고 수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 센터에서 환자들은 모자도 가발도 다 벗고 편안하게 수련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수련하니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마음의 위안도 컸던 것 같습니다."

김 본부장은 암환자들에게 명상이 효과가 있을지 철저한 검증을 위해 2011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유방암 환자들은 방사선 치료를 위해 6주 동안 매일 병원을 방문해야 해서 연구 대상자로 적합했다. 연구 참여에 동의한 102명의 환자 중 무작위로 51명을 선정해 뇌파진동 명상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다. 불안·우울·피로 등의 정신적 영역과 피로·오심구토·통증·수면장애·식욕부진 등 증상영역, 그 외에도 경제적 문제 등 전반적인 삶의 질을 검토했다.

방사선 치료와 명상을 함께 진행한 환자들은 불안이 평균 6.84점에서 5.51점으로 20% 정도 줄었고 피로감은 평균 3.94점에서 3.46점으로 12% 감소했다. 또한 환자들 스스로 느끼는 삶의 질은 평균 57점에서 70점으로 향상되었으며, 일부에서는 호흡곤란에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는 보완의학 분야의 대표적 국제학술지인 '보완대체요법(Complementary Therapies in Medicine)' 7월 호에 게재됐다.

▲ 서윤정 단월드 명상트레이너의 지도로 서울아산병원 암환자들이 뇌파진동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많은 환자들이 암에 걸린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병에 걸렸나?’ 그런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게 이끌었습니다. 6주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은 오랜만에 잠을 잘 잘 수 있었다거나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어떤 환자는 그동안 억제하고 있던 감정이 풀리며 암에 걸린 후 처음으로 울었다며 이후 빠른 회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천 번 설명해줬던 암 치료 과정, 막상 나에게 닥치니

"저도 몇 년 전 암에 걸렸습니다. 양쪽 눈 결막에 림프종이 생겨 오른쪽 눈은 방사선 치료를 17회가량 받았죠. 치료하는 과정 내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수없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환자들에게 치료과정을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말이죠. 막상 나에게 일어나니 너무 불안하고 두려운 거예요."

김 본부장은 암 치료를 받으며 가장 고민했던 것은 자신의 바디이미지(Body Image)가 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 눈 주위가 빨개지고 흉해지니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어느 날 수련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모습이 변하는 것이 내 본성이 변하는 건 아니잖아!' 내 본모습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동안 마음은 없고 겉모습만 신경 쓰고 살았다는 것을 느꼈죠. 눈에 림프종으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환자들은 오죽했을까요? 항암치료로 얼굴색이 구릿빛으로 변하고, 머리카락은 빠지고, 더구나 여자로서 유방을 잃어야 하는데 말이죠.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어지럽고, 사람들에게서 떨어졌다는 격리감에 친척도 못 만난다고 합니다. 명상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며 이겨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포인트였습니다."

아산병원 암교육센터는 매주 화·목요일 10시는 암환자를 대상 뇌파진동 명상수련을, 목요일 11시에는 암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해 진행한다. 

"암을 극복하는 과정은 눈물겹습니다. 배우자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혹은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으면 심리적인 불편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과정을 서포트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