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면 여행은 더욱 자연으로 가야 한다. 더위를 피해 바같으로 나가야 하는데, 회색과 매연과 시멘트 일색인 '도시의 일상'을 탈출해 가는 곳은 옥계수가 넘쳐 흐르고 녹음이 드리워주는 상큼한 그늘이 있고, 낮엔 꾀꼬리와 뻐꾹새, 밤엔 소쩍새와 휘파람새 소리가 생음악으로 들려오는,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자연의 품안이어야 한다.

피서철이면 으레 물가에서 여름나기를 많이 한다. 해변이나 강가 또는 개천은 대도시에 갇혀지내는 답답함을 일시에 풀어준다. 그러나 물가에서는 자칫 인명사고가 나기 쉽고, 몰려든 사람들로 호젓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에 비해 숲속의 여름나기는 물가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수목의 싱그런 모습에서 활력을 얻으며 삶의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담양 대나무 숲.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우리나라엔 여름 피서지로 삼을 만한 숲이 많다. 각지에 조성된 수십 곳의 자연휴양림도 여름에 피서객들을 부른다. 그러나 안면도 소나무자연휴양림 등 서너 곳을 제외하고 강원도 양양 미천골자연휴양림 등 대부분은 원시의 자연에 '인공'을 너무 덧칠해 '인공휴양림'이 돼버렸다. 그러니 그런 곳으로 '자연' 만나러 가기에 크게 기대할 일은 없다. 이름난 자연휴양림보다는 차라리 어릴 적 뛰놀던 고향마을 뒷산에 들어가 노송 그늘에 자리를 깔고 매미소리와 뭉게구름을 벗삼는 것이 몰려가는 '고생길' 피서보다는 나을 것이다.

특이하고 운치있는 숲 피서로 ‘대밭골피서'는 어떨까? 대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 상록수다. 쭉쭉 뻗어올라간 대나무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할 뿐만 아니라 절개의 표상이기도 해서 다른 잡목숲에 드는 것보다는 기분이 훨씬 정결해진다. 대숲은 또 차나무를 안고 있는 곳이 많다. 차나무는 문화예술품 수준의 음요수인 차를 만드는 원료인 찻잎을 내어주는 나무여서 나무 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품격이 높은 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차나무를 안고 있는 대숲에 드는 맛은 1500년의 전통 차문화를 일궈온 조상의 숨결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대숲은 다른 숲처럼 생명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대숲에는 참새와 뱁새들이 떼로 깃들이거나 지나다닌다. 아침에는 참새떼가 지나가면서 새벽잠을 깨워주고, 궂은 날엔 뱁새떼가 떠들고 다니면서 널어놓은 빨래와 곡식을 걷어들이기를 재촉한다. 대숲은 폭풍이 불거나 소나기가 내릴 때는 뒷산의 멧비둘기와 꿩이 피난해 오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또 대숲은 해로운 곤충은 거의 발붙이지 못하게 하면서 요즘 저녁 무렵엔 고추잠자리 쌀밥잠자리 보리밥잠자리 호랑잠자리 등 대여섯 가지의 잠자리들에게 잠자리를 열어준다. 어스름 저녁에 더위도 잊은 채 대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열린 듯이 달라붙은 잠자리 잡기는 대밭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 만점의 여름나기다.

대나무 냄새는 너무나 정결하고 상큼하다. 울창하고 건강한 대나무숲에는 바닥에 야생차가 더부살이를 한다. 그 차나무는 대이파리에 내린 이슬을 받아먹고 산다고 해서 '죽로차'라 한다. 대숲에 바람이 일면 죽로차를 품은 대나무숲의 청량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대나무숲에 녹색 파도를 일렁거리게 하며 "쉐~ 쉐~" 불어대는 대숲바람은 듣는 이의 귓전에서부터 온몸과 마음까지를 시원하게 닦아준다.

 

한국에서 대숲이 울창한 곳은 전남 담양과 구례~하동 사이의 섬진강변, 경남 산청과 함양 등지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싼 죽제품이 대량 수입되면서 대부분의 대밭들이 방치되거나 대를 베어버려 대숲이라는 또 하나의 토종 정서를 담은 풍물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피서지'로서의 대밭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가운데 '죽향' 담양은 대나무 생존 최적지여서 건강하고 넓은 대숲이 아직 많다. 세계 하나밖에 없다는 죽물박물관도 있고, 대나무 고장답게 죽세공이 발달해서 각종 대나무 제품이 많이 나온다. 특히 요즘 담양에 가면 대나무골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고, '대밭사잇길'을 걸어보는 멋진 피서여정을 체험할 수 있다. 또 군 당국이 대나무 산업의 활로를 찾기 위해 대잎차를 개발하고 수제 죽로차 제다를 장려하는 등 대밭 살리기 대안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담양에서 일반인들이나 여행객들이 쉽게 가볼 수 있고 규모가 큰 대밭으로 금성면 봉서리에 있는 '대나무골야영장'(061-83-9291, 9922)과 추월산 중턱인 용면 통천리 약수길 대밭골을 들수 있다. 대나무골야영장은 담양에서 가장 대나무숲을 잘 가꾼 곳이다. 대나무와 죽로차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대밭사잇길'이 나 있어 죽향을 맡으며 산책을 할 수 있다. 울창한 왕대밭은 대나무삼림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대밭 길섶엔 대나무골샘이 생수를 솟구치고 있다.

약수길 대밭골은 넓이가 약 2만평에 이른다. 단일 대밭으로는 담양에서 가장 넓다. 대밭골 한가운데로는 약수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25분을 올라가면 추월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터가 있다. 대밭은 이 약수길 양쪽에 펼쳐져 있다. 특히 대나무 사이사이엔 차나무가 들어서 봄이면 약수도 긷고 찻잎도 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 약수길대밭골은 명산 추월산 중허리에 들어서 있어서 민가 가까이에 있는 대밭보다 공해가 적어 대나무의 때깔이 순결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산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풍겨대는 상큼한 대나무 향기가 도시인들의 가슴에 서려있는 매연 그을림을 말끔히 씻어줄만하다.

  대나무, 전국 8천ha에 70여종 자생

대나무는 중국 하남지방이 원산진데, 지구상에 약 3200여 종이 분포하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남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북아메리카동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서인도제도 지중해연안의 아프리카 등지에 자생한다. 

 

우리나라는 충청남도 태안반도까지의 서해안지방과 동해안 강원도 고성까지를 잇는 선을 북방한계로 보고 있으며, 호남과 영남지방이 주산지다.
대나무의 종류로는 솜대, 왕대, 맹종죽, 오죽, 갓대, 조릿대 등 70여 종이 우리나라에 자생한다.  담양은 삼림대가 온대 남부에 속해 연평균 기온 12도, 연평균 강수량 1천mm 안팎이어서 대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아 전국 8천ha 중 600ha의 죽림면적을 갖고 있다.
대나무는 공예품 원료로서뿐만 아니라 죽순, 죽피, 죽엽 등 부위별로 조단백질, 조지방, 탄수화물, 회분, 비타민시의 함유량이 풍부해 죽순요리, 죽염, 죽엽주, 죽력 등 건강식품으로 활용된다.  특히 담양의 대는 알맞은 토양과 기후조건에서 자라 굳기와 탄력성이 뛰어나서 질좋은 죽제품을 낳고 있다.

 

■담양 죽림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로 동광주나들목을 옆으로 지나(여기서부터 이하 남쪽으로는 남해고속도로라 한다) 88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여기서 담양나들목까지 30분. 담양죽물박물관은 담양나들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있다.
담양시내에 숙식시설이 많다. 30분 거리인 광주시내로 나와도 된다. 또 담양읍내에서 30분 거리인 장성 백양사 관광단지로 나가면 호텔급 숙박시설이 많다.
담양에 간 김에 죽제품을 구하려면 담양죽물박물관에 들르면 된다. 또 대나무 원료를 구하려면 담양천변에서 서는 죽물5일장(2일과 7일)을 찾으면 된다. 죽물박물관 옆 죽물상설가게에서는 죽부인과 각종 바구니, 부채, 차덖음용 방석 등을 서울 백화점 가격의, 반 또는 3분의 1로 살 수 있다. 또 매년 5월 초엔 담양대나무축제가 열려 대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담양의 명산 추월산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막골 등 깊은 계곡을 안고 있어 피서철 가볼만한 곳 명소로 꼽히기도 한다.
죽물장이 서는 담양천 옆 승일식당(061-382-9011) 숯불구이돼지갈비는 막 잡은 싱싱한 돼지고기를 참숯으로 구워서 구수한 맛이 그만이다. 또 군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덕인관(061-381-3991)은 떡갈비로 유명하다. 주문하면 대통밥과 죽순추어탕도 나온다. 국보966(061-381-9662)은 직접 만든 손두부, 대통밥, 청국장이 유명하다. 대통은 한 번만 쓰는데 대통밥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대통을 쪼개 밥을 꺼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