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6회 한민족 역사·문화 청소년 글짓기 논술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은 박현우 학생(전북 익산고 2)의 글. 국학운동시민연합과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816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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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국지리’라는 과목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국지리’란 대한민국과 관련된 지리적 특징들을 탐구하는 과목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산지 분포나 인구 분포 등을 연구한다. 지리에 관심이 깊었던 본인으로서는 당연히 이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학기 어느 날 그 사건이 벌어졌다. 처음에 지리 수업은 평소와 같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해와 관련되어 EEZ(배타적 경제 수역)를 배우고 있을 때, 우리들 사이에서 한 질문이 나왔다. ‘왜 독도가 일본과의 중간 수역에 위치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때 선생님의 대답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이게 다 우리나라의 잘못인 거여.” 이 말을 하시던 선생님의 표정 역시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후에 선생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던 중에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도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신한일 어업협정’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신한일 어업협정’이란 1998년 11월 28일 일본 가고시마에서 한․일간의 중간수역 설치와 관리에 관한 내용을 다룬 조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어업관련 조약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과 아주 관계가 깊다. 모든 나라는 자국 영토의 200해리 안의 바다를 배타적 경제 수역이라 하여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는 채 200해리가 되지 않아서 국제법상 두 나라는 바다 사이에 중간수역을 설치하기로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때 우리나라에서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만약 독도를 우리나라의 엄연한 영토라 여겼다면 중간수역에서 독도와 그 주변의 영해만큼은 제외했어야 한다. 허나 어리석은 우리나라는 이 사실을 잊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 사실들을 알게 된 순간 선생님의 눈물없는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에 본인은 혼자가 된 독도를 다시 한반도의 품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독도’라는 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으로서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다. 동도와 서도, 2개의 화산섬을 통틀어서 우리는 ‘독도’라 명명했다. 허나 초기 이주민들은 독도를 돌이 많다고 해서 ‘돌섬’이라 불렀다. 이 명칭이 전해지다가 ‘독섬’이라 바뀌었고, 결국에는 지금의 독도가 되었다. 많은 이름을 지니고 역사를 겪어온 독도는 512년에 처음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우리 민족의 땅이 되었다. 후에 조선 태종의 공도(空島) 정책이 있기 전까지는 가끔씩 독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 곤했다. 공도 정책이 있은 후에도 독도엔 별다른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693년 어부 안용복이 독도에 당도했을 때 어업을 하던 왜인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안용복은 엄연히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왜인들을 쫓아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 막부에 직접 가서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는 서계까지 받아오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선보다 이른 근대화로 성장한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예전부터 관심이 깊었던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부르고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 때 당시 우리 민족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36년 일제통치가 사라진 뒤, 독도는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독도의 가치를 포기 못한 일본은 계속 독도의 영유권을 두고 우리나라와 다투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홍순칠 대장’의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은 자발적인 영웅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의 일로는 앞에서 언급한 ‘신한일 어업협정’ 등이 있다. 이렇게 험난한 역사를 지닌 독도는 현재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줄다리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 오랜 줄다리기를 끝낼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의 정신으로, 일본 측의 주장부터 파헤쳐 보겠다. 일본 측 주장의 가장 핵심적은 근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맺어진 ‘대일평화조약’이다. 이 조약은 대일전쟁에 참여한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서 전후정리를 위해 체결되었다. 이 때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은 대일전쟁에 참여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약에 어떠한 참여도 할 수 없었다. 이는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허나 주목해야할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이 ‘대일평화조약’을 앞세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진상은 다음과 같다. ‘대일평화조약 제2항’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 때 일본은 ‘독도를 포기한다.’라는 문장이 제시되지 않았음으로 독도는 여전히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신한일 어업협정’을 일본한테 유리하도록 맺은 점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독도를 중간수역에 편입시킴으로서 울릉도의 속도(屬島)가 아니라고 주장한 꼴이다. 이런 점들을 등에 업고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갈취하기 위해 다가오는 중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본은 한민족의 의견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신한일 어업협정’에 의한 한국 측의 실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멋대로 해석한 ‘대일평화조약’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된 일본 측의 주장은 너무 자기편향적인 해석이다. 만약 일본 측의 말대로 한다면 조약에 제시되지 않은 한국의 수많은 섬들의 영유권도 아직 일본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모순이 있으므로 일본 측의 주장은 얼토당토한 소리다. 게다가 독도는 예부터 울릉도의 속도(屬島)로 보아왔다. 그러므로 조약의 표면상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언급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아무리 영토 분쟁이 치열해도 일본은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짓은 해서는 아니 된다.

 이렇게 일본에서 제시한 핵심적인 주장의 결점을 파헤쳐 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줄다리기를 끝낼 방도는 아니다. 줄다리기를 끝낼 열쇠는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태도는 은밀하고 신속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불같이 대응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이런 식이면 꾸준한 일본의 공격에 언젠가 우리나라는 ‘독도’를 ‘다케시마’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들은 자세를 고쳐야 한다. 현재 일본의 자세를 ‘바다’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육지’와 같다. 비열이 작은 육지처럼 극과 극을 달리지만 지속기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바다는 어느 정도 일정하게 오래가는 특징이 있다. 바로 우리는 이런 점을 본받아야만 한다. 그러면 사태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줄다리기에 관련되어 앞에서 말한 ‘대일평화조약’이외에도 수많은 의견들이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주장이든 그 주장을 내세우는 쪽의 자세가 정작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알맹이를 중요시 할 게 아니라, 각자의 껍데기로 어떻게 알맹이를 포장해야할 지를 중요시해야한다. 독도는 육지가 아닌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우리 국민들이 독도를 둘러싼 바다와 같은 자세로 일본과 맞선다면, 틀림없이 미래에 지도에서 ‘일본해’대신 ‘동해’를, ‘다케시마’대신 ‘독도’를 볼 수 있을 거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