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 짜리 와인을 마시면서 9만 7천 원짜리 와인오프너(wine opener)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화점을 2시간 돌고 돌아 물건을 고르는 여자와 바로 보자마자 구매하는 남성 중 누가 더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일까?

▲ 알렉산드로 멘드니가 디자인한 와인 오프너. 독특한 디자인으로 높은 가격에도 전세계적으로 1천만 개 이상이 팔렸다.

21세기 소비자들의 트렌드는 ‘감성소비’이다. 최근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은 디자인이나 스토리 등에 영향을 받아 미묘하면서도 즉흥적인 판단으로 물건을 선택한다고 한다.

성영신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장)는 8일 '뇌와 통하다'라는 주제로 고려대학교 경영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인간의 복잡 미묘한 소비심리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설명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 성영신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장)

20대 여성 17명에게 화장품 구매 실험을 했다. A 집단에는 제품정보를 꼼꼼히 보고 비교 평가해서 구매하도록 하고, B 집단에는 제품정보를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집중하기 어렵게 복잡한 과제를 풀게 했다. 실험 후 참가자들 모두 본인이 마음에 드는 화장품을 골랐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구매 물품에 대한 제품만족도에서는 차이가 없었으나 구매결정에 대한 '확신' 부분에서 제품정보를 꼼꼼히 보고 구매한 A 집단이 훨씬 높았다. 구매 전 제품정보 처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가 고른 물건을 잘 샀다는 확신이 높게 나온 것이다. 소비자들은 실제로 산 물건의 결과와 관계없이 자기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즉, 자신이 '좋은 소비자'라는 것에 만족했다.

성 교수는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비교하는 여자들은 자기가 '좋은 소비자'임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니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더는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청중들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김수현 광고 17개의 비결은? 바로 인간의 뇌 덕분??
 
'해를 품은 달' 출연 이후 탤런트 김수현은 20여 개의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고 있다. 광고주들은 김수현이 이미 너무나도 많은 광고를 찍고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김수현을 모델로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해를 품은 달' 출연 후 20여 개의 광고를 찍은 탤런트 김수현 (사진제공=(좌)KBS, (우)카스후레쉬)

"김수현이 광고에 나오면 우리의 뇌는 김수현을 보는 것이 아닌 김수현이 나온 드라마를 기억하고 회상활동을 한다.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을 보면서 느꼈던 긍정적 감성이 광고 제품으로 이어지면서 구매로 연결되는 것이다"

성영신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긍정선택방식(positive choice)'과 '부정선택방식(negative choice)'이다.

'긍정선택방식'은 제품이 모두 매력적일 때에 사람들은 비교 후 조금 더 좋은 것을 골라내어 마지막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주로 명품샵에서 여성들은 긍정선택방식을 쓴다. 그러나 제품이 모두 매력적이지 않을 때에는 비교 후 조금 더 나쁜 것을 골라버리고, 마지막에 한 개 남는 것을 선택하는 '부정선택방식'을 택한다.

"부정선택방식의 대표적 사례는 선거이다. 무언가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면서 '네거티브 초이스'를 한다. 투표율이 높지 않은 이유는 뽑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자질이 뛰어나고 매력적인 후보자가 나온다면 투표율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한국심리학회는 8일 고려대학교 경영관에서 '뇌와 통하다'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산업사회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비한다. 눈 뜨자마자 내가 고른 치약과 칫솔로 양치질하고 내가 선택한 비누로 샤워한다. 100년 전의 산업사회에는 소비심리학자들은 소비자들이 물건의 질과 양, 가격 등을 이성적으로 정보처리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는 브랜드가 대세였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소비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에는 브랜드보다 훨씬 더 많은 '감성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도 기업도 알게 되었다. 감성소비의 몇몇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소비자들은 그동안 소비심리학자들이 가정한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게 미묘하면서도 순간적이고 즉흥적으로 그리고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감성과 순간의 판단으로 물건을 고른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행동양식과 가치관을 꿰뚫어 보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내는 '컨슈머 인사이트(Consumer Insight)'는 우리 시장경제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