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산을 배경으로 무량수전과 합한 건물로 장대하며, 상승하는 듯한 안양루

구름에 스민 늦은 햇빛은 물결처럼 굽이치는 천산(千山)에 생기를 흩어 내고, 우주에 떠 있는 건물 아래 지상의 모든 존재들은 안양루(安養樓)의 작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무한으로 펼쳐진다. 서방정토(西方淨土)의 다른 이름인 안양루는 우주 안에 두루 있는 숭엄함을 과장 없는 평명(平明)의 진리로 드러내고, 눈앞에 펼쳐진 천산을 비추는 빛은 없는 듯 편재해 있다. 사물의 영원한 상(相)을 저 높은 곳에서 깨달은 듯, 높이 위치해 있으나 상승하려 하지 않고 깨달음을 향한 의지조차 놓아 버린 듯하다.

대상과 그에 의해 사유된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가장 순전하고 심후한 형태가 있다면, 피안(彼岸)만이 아닌 하화(下化)의 모습까지 가진 것일게다. 마치 화엄사찰인 부석사에 화엄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 대신 정토계의 아미타불을 모신 것은 화엄(華嚴)과 정토(淨土)의 융합을 통해 철학적 사고와 실천을 삶 속에서 하나로 정착시키려함일까! 진리를 사유 밖에서 보게 하는 안양루는 무용의 잉여 상태를 가지지 않고 여분의 장식이나 절제조차 없이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직면하여 심원(心源)한 상태를 이루고 있다.
자연의 변화가 어떤 의지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재무애한 것처럼 소백산 자락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있는 그대로 어떤 형태를 다 담아도 무리하지 않는다.

▲ 무량수전에서 바라본 안양루깨달음의 의지조차 놓아버린 듯 바라는 것 없는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천지를 눈 아래 품은 범범함으로 선(禪)의 본성을 예시한다.

무량수전과 함께한 안양루는 여여부동(如如不動)하나 완성의 형(形)이 아닌, 자신의 형식을 가지지 않은 듯 주변의 건축과 합쳐지고 분리되어 작아지고 사라진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형태는 마치 화엄의 사상이 건축으로 드러난 듯 “허공이 다니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서 갖가지 위의(威儀)를 잘 나타내 보이는 것 같고, 빛깔도 아니면서 백 천 가지 빛깔을 잘 나타내 보이는 것 같다.”

안양루는 지극히 간결하고 평범한 형태로 피안(彼岸)의 모습도 함께 가진다. 시각적 대상에서 멀어진 건축으로, 고유의 존재성은 사라지고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이 존재하는 명백한 선(禪)적 건축이다. 무량수전이 귀솟음, 안쏠림 등의 착시 현상까지 배려한 비례와 정미한 배흘림기둥의 완성된 형태의 건축으로 아름답다면, 안양루는 모든 의지에서 벗어나 평안과 화평 그 자체로, 존재의 상(相)을 떠나 자유로운 천상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멀리서보면 무량수전과 합쳐져 거대한 건축이 되고 홀로 있을 때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무량수전에서 자연을 바라 볼 때는 마치 사라진 듯 범범한 건축이 된다. 건축 자신은 부동(不動)하나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갖가지 모습을 가진다.

어떤 미적 형식이 이토록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깨달음을 유도하는가 하는 경외의 물음을 자아내며 하는바 없이 이루는(無爲而成) 선(禪)의 본성을 예시한다.
예술의 숙명인 자기표현조차 힘쓰지 않으나 어떠한 미적 충동도 없이 스스로 완전하게 존재하는 까닭이다. 마치 우주 현상 속에 내재하는 선(禪)을 눈으로 보는 듯 숭고하며 고요하고 지고의 자연미와 본연의 실상으로 천지(天地)와 통한다.

안양루 정면  극락세계의 입구를 상징하는 안양루는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극락 그 자체가 되었다. 함께 있던 무량수전은 사라지고 없으나 뒷산과 하늘을 다 덮은 지붕으로 홀로 장대하다.

글. 김개천 교수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