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 3월이다. 간만에 반가운 봄비가 내린다. 비를 보니 옛날에 친구들과 함께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뛰어놀던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과 함께 '비=산성비'라는 인식이 상식이 된 지금, 비를 맞으며 걷는 낭만은 사라졌고 머리카락 보존을 위해서라도 비는 피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이 말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편견에 불과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머리카락을 다 심어 드리겠다!"고 말하며 빗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해온 '빗물박사' 한무영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빗물에 대한 상식 깨기
가끔 갑자기 예정에 없던 비를 어쩔 수 없이 맞게 되었을 때, 비를 맞는다는 사실보다 머리카락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경을 쓸 때가 있다. 이에 한무영 교수는 "물이 산성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음료보다 훨씬 더 약한 산성이라는 겁니다. 콜라나 맥주, 오렌지 주스, 사과즙, 요구르트 같은 것은 산성비보다 100배, 1,000배나 더 강한 산성을 띠고 있어요. 유황온천도 그렇고, 샴푸나 린스도 산성비보다 훨씬 강한 산성 제품이 많아요." 라고 말한다.

빗물의 새로운 모습 ‘구름주스cloud juice'
"비는 모두 산성입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지면 금방 중성, 알칼리성으로 변하죠. 빗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에요.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팔고 있어요. ‘구름주스cloud juice'라고 하는 아주 비싼 물이죠."
한 교수는 서울대학교에 설치된 '빗물저장조'로 물을 처리하여 ‘구름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펩시콜라가 했던 챌린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수돗물과 생수, 빗물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수돗물 6표, 생수 7표, 빗물 23표로 빗물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빗물 버릴 것인가? 모을 것인가?
이외도 한 교수의 주도로 서울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에도 빗물저장조가 설치되었데, 이 시설은 2008년 국제 물 학회지<Water21>커버스토리에 '세계적인 미래형 물 관리의 모델'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 지역은 상습 침수 지역이었으나 스타시티 착공 시 빗물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홍수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수자원 절약, 단수나 화재 시 비상용수 확보 등 효과를 보고 있다. 1년 간 4만 톤의 물과 그것을 운반하는 데 드는 에너지 10,000 KWh 를 절약하였다. 작은 시작이지만 이것이 주위의 건물에, 도시에 전파되면 엄청난 양의 절약효과를 가져온다.

한무영 교수가 빗물연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한 교수의 빗물이야기는 2011년부터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지구를 살리는 빗물>이라는 내용으로 실리는 성과를 냈다. 한무영 교수의 빗물강의를 듣고 감명 받은 많은 사람들의 활동으로 현재 우리나라 59개 지자체에 빗물조례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빗물의 소중함을 알고 빗물을 잘 활용하는 레인시티는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빗물박사의 마음은 바쁘다.
"빗물의 중요성에 대해 언론을 통해 기고를 하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지만 저변 확산이 느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KBS TV특강에서도 ‘산성비는 과연 해로운가, 빗물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지요. 제 강의를 들은 분들은 빗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공감대를 가집니다. 공개 토론 같은 것을 해서 더 많은 분들이 알면 참 좋겠습니다."

수토불이 水土不二 물 관리
빗물박사 한무영 교수의 빗물관리법은 사실 생소한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의 분산치가 크기 때문에 물관리가 매우 어렵습니다. 매년 나오는 홍수문제에 대해 문제해결방안으로 외국의 사례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같은 땅에서 5천년간 잘 살아오지 않았나요? 증거가 바로 동洞자에 있습니다. 동洞자를 보면 水와 同으로 이루어져 있죠. 도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물이고, 물을 개발 전과 후를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면산 사태는 동洞자 철학을 안 지켜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활 속에서 이미 실천해왔던 것이다. 경복궁에 있는 커다란 연못 두 개는 대궐을 세울 때  하천과 지하수로 가는 물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목적의 빗물관리 시설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전국의 절이나 기와집이 있는 곳에 연못을 파놓은 것을 보면 선조들이 어떻게 빗물관리를 실천했는지 볼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한 물 관리
기후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뿐 아니라 물 관리 문제는 전 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한무영 교수는 “우리에게는 물 관리 문제를 해결할 답이 있습니다. 5천년 간 지속 검증된 방법으로, 인간 뿐 아니라 환경까지 풍요롭게 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풍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홍익철학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가 있어요. 이 철학과 기술력을 전 세계에 보급하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비가와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비가 온다면 집 안에 있는 모든 통을 들고 반갑게 빗속으로 뛰어나가지 않을까 싶다.
비를 맞으며...

[참고: 브레인비타민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