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해, 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옛날부터 '설은 질어야 좋고 추석은 말라야 좋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며칠째 비가 내리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만 설이 되면 귀성길이 복잡해지니, 모두의 안전운전을 빈다.

우리는 '설을 쇤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이런 단어를 배운 적이 없다. 공교롭게도 설이 방학때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이 정확하게 이 발음을 하신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설은 '쇤다' '쇠다'라고 표현한다. '쇠다'라는 말은 '새해를 맞이하다'라는 뜻풀이지만, 옛 문헌을 보면 '설 쇠다'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새해를 맞아 삼가하고 조심하는 날로,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의미다. 음력설이니만큼 새해가 시작되니 나쁜 기억이나 번뇌를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인 것이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더불어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 받으며 행운을 빌어준다. "복은 짓는다"라고 표현하고, 이는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한다라는 말이다. "집을 짓는다. 시를 짓는다. 밥을 짓는다. 죄를 짓는다"등과 같이 복은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자에게 하늘이 응답하는 것이다. 가만 있어도 뚝 떨어지는 요행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는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는 덕담을 서로에게 권하자.

새해에는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내는 일은 고대 우리의 환국(桓國)에서 비롯된다. 삼원조화의 천,지,인 일체사상으로 광명이세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였던 고대 우리의 조상님들은 하늘에 천제를 지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삼원사상의 형상화된 표현은 삼태극 마크에서 잘 알 수가 있다. 빨간 것은 '아랫배의 힘'을 말하여 땅의 기운과 정력, 후덕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파란 것은 가슴의 에너지가 커야함과 심력, 즉 기력이 맑아야 함을 강조한다. 노란 것은 '신명', 정신세계가 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삼원사상은 세세대대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위에서 순서대로 보면 하늘, 사람, 땅이며 이는 신, 기, 정으로 구분된다. 신,기,정을 바로 세우는 일을 "정신차린다"라고 말한다.

차례는 예절의 한 방법이다.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을 '예절'이라고 정의한다면, 차례는 예의를 갖추고 조상님을 모시고 절을 하는 것이다. 이는 가족 상호간의 질서를 바로잡고 상하좌우의 관계를 반듯하게 하며 효,충에 근거하여 서로간의 사이를 공고히 하고 조상에 대해 보은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사는 사람사이에 주고 받는 인사의 가장 품격 높은 모습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제사의 모습은 사대교린의 국시를 정하였던 조선시대에 명나라의 요구로 진행방식이 굳어진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자기들은 천자의 나라라는 이유로 천제를 지냈으나 우리는 그들에게 책봉과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라 조상님에 대한 제사에 만족해야만 했다. "현고학생 부군신위"라는 지방을 쓰고, 조상님에게만 제사를 올리고 있다. 한해 한 번 지내는 묘사 또한 비슷한 모습들이다.

그러면 명나라에게 강요당하기 전의 우리의 전통 제사는 어떠하였을까?

우선 지방부터 달랐다. 그때는 우리모두가 고구려 이전부터 내려온 천손(天孫)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천손아무개신위"라고 바로 썼으며, 이는 남녀 구별 없이 동등했다. 제사가 시작되면 하늘에 고인의 덕을 알리는 숭덕문을 제주가 간단히 말하고, 천부경81자를 삼독이상 크게 봉송하였으며, 일작삼배를 하며 마무리 할 때는 항상 감사의 9배를 올렸다 한다.

지금의 지방(紙榜)을 보면 "현고학생부군신위와 현비유인아무개신위"가 대표적이다. 학생은 공자의 학생을 의미하며 유인은 '젖먹이'라는 뜻이다. 공자와 유학이 훌륭하긴 하지만, 우리는 공자의 학생들이 아니다. 더구나 철없는 젖먹이는 더욱 아니다. 명나라에서는 이런 지방쓰기를 우리에게 강요하며 그들의 정신세계 안에 우리를 집으넣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공적(?)으로 안착해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공자는 성인이며 유학도 좋은 학문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본래 모습은 '천손'이며 이는 단군이전까지 올라간다.

하늘의 자손임을 아는 것은 우리가 우리 정체성을 바로 찾는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의 꿈이며 희망이다. 과거에는 적어도 우리 조상님들이 천손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심과 염치를 알았다. 혈성이 맑아 장수하였으며 인정이 많아 굶는 사람이 없었으며 서로 존중하여 상처받은 이가 없었다. 안으로 따뜻하였으며 밖으로는 한없이 크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경영하였던 것이다. 덕과 사랑으로 세상을 품고 따뜻하게 행복을 나누었던 시기가 바로 우리 천손시대의 특징이었다.

공자가 성인이긴 하지만 그가 살던 그 시대에는 그가 그리 존중받지 못하였고 자기 나라를 떠나기도 하였다. 우리의 원래 모습은 밝은 땅의 광명민족이다. 배달나라, 천손의 민족이다. 2000년 동안 중국의 술수에 우리가 놀아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가문에서는 이제 천제를 지내며 지방도 바꾸었다. 널리 알았으면 좋겠다.

설이 다가온다. 날씨가 그리 좋지 못하다. 멀고 먼 고향길, 또한 돌아오는 길이 서로 양보하며 미소짓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