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루 김기수 옹.
얼마 전 KBS 라디오 '동창이 밝았느냐‘에서 인간문화재 김기수 옹(1917~1986)의 천부경 연주를 흘러나왔다. 느릿하게 읊조리는 천부경을 따라 장중하고도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국악 중 천부경 연주는 처음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천부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자 군더더기 없이 숫자로만 엄정하게 기록하여 우주생성과 인간완성의 진리를 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있으나 해석도 분분하고 응용범위도 광범위하다. 위서 논란도 있으나 그 철학적 깊이를 새겨본다면 어느 한 인물이나 한 시대에 급조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우리의 정신적 보물이라는 점이다.

천부경을 연주한 대마루 김기수 옹은 일본 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나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소속으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종묘제례악의 집사악사를 거쳐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면 ‘근대 한국음악의 자각 대마루 김기수 선생’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민족주의 음악이 그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기수 옹의 마지막 작품은 ‘당굴(檀君)’이다. 단군의 옛 표현인 당굴이라 이름붙인 이 작품은 돌아가시기 1년 전인 1985년 8월에 완성된 작품이다. 김 옹의 작품 노트에는 “당굴은 국조 단군 왕검이시다.…소재는 건국신화에서 택했으나 취향은 번영과 도약과 환희의 미래지향적 상징에 무게를 두었다.…”고 적혀있다. 장중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연주 속에서 진취적이고 힘찬 기상을 지닌 단군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는 평생 국악과 민족에 관한 책을 읽거나 작품을 쓰고 난초화분에 수석 한점 올려놓은 책상에 항상 꼿꼿이 앉아 작품 활동을 했다. 국악의 조기교육을 위해 ‘국악 유치원’을 세워 국악 인재를 양성하여 국악의 저변 확대를 말년의 꿈을 삼은 김 옹은 아이들에게 맞는 크기의 ‘베이비 대금’ ‘베이비 가야금’을 개발하여 보급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국악인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김기수 옹은 “새것을 찾으려거든 전통을 더 깊이 파라”는 삶의 철학으로 전통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많은 음악교본과 함께 이를 바탕에 둔 수많은 창작곡을 만들었다. 깊이 새겨야 할 철학이다.

천부경은 우리 역사 중 까마득한 옛날 구전으로 내려오다 신시배달국 거발한 한웅때 신지혁덕에 의해 녹도문(사슴발자국모양의 문자)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신라 최치원이 해석하여 한자로 묘향산 석벽에 기록했고 이를 일본 강점기 계연수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