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하 (陳泰夏) |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인류가 창출한 문명의 이기利器 가운데 가장 소중한 문자文字는 최첨단시대에도 그 중요성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천 년을 써 온 한자漢字를 버리며 한글전용을 고수하고 있다.

한자가 중국문자인 줄 알지만 ‘漢字’명칭은 원나라 몽골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자기들 문자와 구별하려고 붙였을 뿐이다. 1899년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은나라 갑골문의 공인된 학설은 북방민족, 동이(東夷)가 만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처음으로 글자라는 의미의 한자는 갑골문 ‘ ’로 나뭇조각에 표시해서 반을 갈라 후에 맞춰보는 상거래문화에서 발생한 징표였다. 그 후 ‘大’를 더해 ‘契’로 바뀌며 뜻도 변했다. 契의 본래 옛 음은 글(귿)로 자전의 발음기호도 기흘절(欺訖切)이다. 文字를 예로부터 ‘글’이라 칭하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뿐이다. 이런 징표문화로 魚驗(어험-물고기 형의 증표)에서 오늘의 ‘어음’이, 상장이나 계약서의 반쪽도장인 계인(契印)으로 내려왔다.

은나라 갑골문 발견 후 한자가 북방민족 동이(東夷)의 글자라고 인식해

한자가 우리글이란 예는 가을‘秋’로도 알 수 있다. 추상적인 것을 상징하기는 어려우나 갑골문에는 메뚜기로 가을‘ ’을 나타냈다. 그 후 벼에 붙어사니 ‘벼 화(禾)’를 붙여 간략하게 만들었지만, 메뚜기를 불에 구워먹던 사람의 글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지금도 ‘메뚜기’를 ‘蝗蟲(황충)’이란 벌레로 인식해서 먹지 않는다. ‘집 가(家)’도 마찬가지다. 중국학자들은 오랫동안 ‘家’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家’는 당시 파충류의 극성으로 뱀의 천적이 돼지임을 알고 집 밑에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이 만든 글자다. 이런 흔적의 집 구조가 은나라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 풍속은 지금도 제주에 남아있다. ‘무사하십니까?’란 인사말도 ‘무사無蛇’로 “뱀 피해가 없느냐?”라는 인사였다.

그럴 연‘然’도 개를 불에 그슬려 잡는 민족이 만들었고 물들일 염‘染’도 식물에서 즙을 내어 아홉 번 물들이는 사람들의 글자다. 개를 불에 그슬려 잡아먹는 민족도 우리뿐이요, 우리나라 천연염색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다.

옛 한자의 구성을 보면 중국이 아닌 한민족의 생활습관 반영되어있다

이렇듯 초기 400여 자에는 당시 생활습속에서 빚어진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대초원에서 해가 지면 일을 멈춰서 생긴 莫(말막)자에 다시 해(日)를 덧붙여 ‘저물다’란 暮(모)를 만들었다. 이처럼 만든 것을 누증자(累增字)라 한다. 수천 년간 이런 누증자가 많아진 한자는 몇백 자만 알면 아주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렇듯 한글 한자는 모두 우리 조상이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두 문자를 제대로 쓰는 민족도 우리뿐이다. 한글 한자를 함께 사용하면 선진문화국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가치가 무한대로 상승하여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역(主役)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