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이라는 언명처럼 20세기에 종말을 선고 받은 듯했던 종교는 9ㆍ11사태로 21세기의 문을 열었고, 이제 세계는 삶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는 신들의 전장터가 되었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 또한 근래에 들어 종교에 이해와 소통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종교는 더 이상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와 등대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문제 자체로 변하여 갈등과 반목의 주역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오랫동안 비교종교학의 균형 잡힌 지성으로 한국 종교의 오늘을 탐문해온 오강남 교수는 그 까닭이 우리 종교와 종교인들이 '표층 종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새 책 『종교, 심층을 보다』는 ‘혼자만 잘살려는’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표층 종교를 뛰어넘어 종교의 심층, 즉 깨달음(영성)을 찾은 세계 여러 종교의 선지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소개한다. 지성을 넘어 영성에서 ‘참나’를 찾은 그들의 이야기는 종교의 다양한 진면목을 소개하는 지식을 넘어 우리 종교 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통찰에 이르게 해줄 것이다.

    지난 오월에 발행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에서 비교종교학계의 대가 오강남과 젊은 종교학자 성해영은 우리나라의 종교 현실을 두고 솔직하고 대담한 대담을 나누었다. 오강남은 이 대담에서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는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가 존재하며 종교의 심층을 찾는 것이 종교적 폐단을 극복하고 새 장을 여는 길이 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가 심층 종교라는 문제 제기의 서론 역할을 했다면 새로 출간된 『종교, 심층을 보다』는 그 본론 격으로, 대체 심층 종교란 무엇이며 인류의 역사상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오강남은 2001년 『예수는 없다』를 통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심층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하여 종교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논의를 세계의 모든 종교로 확장하여 그리스ㆍ로마 철학,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아시아 사상(도교, 유교), 인도 종교(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 그리고 한국의 지혜 등을 모두 조명한다. 세계 종교ㆍ철학의 창시자, 지도자, 실천자, 학자 등 세기의 스승들이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보여준 종교의 심층을 빠짐없이 다루었다.  이는 세계의 종교사인 동시에 현대 철학의 근간을 이룬 사상적 뿌리이며 고전 그 자체이다.

    평생을 비교종교학에 바친 대가만이 다룰 수 있는 넓디넓은 지식이 가득한 이 '세계 종교 깊이 읽기'는 학술서가 아닌 친근하고 쉬운 대중적인 글쓰기로 명쾌하게 읽힌다. 동서 철학사와 종교사를 관통하면서 지식의 깊은 차원과 그 맥락을 전연 놓치지 않으면서도, 종교 대중의 교양과 관심에 적극 공명하는 '깨친 글쓰기'가 값진 독서의 기회를 선사한다. 더 이상 종교에 희망을 두지 못하고 고개 돌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종교인들에게 영성의 갈증을 채우고 타종교에 대한 벽을 허무는 샘터이자, 모든 종교가 심층에서 하나의 맥을 이룬다는 '소통의 장'을 자연스레 체험하는 학습 마당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의 심층이란 무엇인가? 오강남 교수는 종교의 본질적인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의 ‘표층’과 ‘심층’이라는 개념을 취한다. 변화되지 않은 지금의 나를 잘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이다.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변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이다.

신이 내 안에도 내재 하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신을 찾는 길

    표층 종교가 신은 하늘에 있다고 믿는다면 심층 종교는 신이 내 안에도 내재하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곧 신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각 종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경전들의 표피적인 뜻에 매달리는 문자주의를 넘어 그 상징와 은유, 속내를 알아차리면 이웃의 종교가, 또한 다른 모든 종교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를 연장하면 신과 나와 내 이웃, 우주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 이것이 종교간 평화는 물론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도 기본이 되는 철학 근간이다. 종교사에서는 이를 신비주의라 하는데 이는 육체이탈, 영매, 마술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유체험들을 일컫는 'Mystismus'가 아니라 신을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절대자와 궁극 실재를 의식의 변화를 통해 내면적으로 깨닫는 'Mystik'을 의미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발원지였던 서구 사회에서조차 표층적 종교 생활이 점점 줄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70~80%가 표층 종교에 매달려 있음을 직시하며 심층적 종교관이 세계적인 추이임을 알린다. 저자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 사상가, 유대교의 지도자, 그리스도교의 선각자, 이슬람교의 성인, 동아시아의 사상가, 인도의 영성가, 불교의 선지자, 한국의 스승 등 60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삶과 가르침의 고갱이를 추려 소개함으로써 독자는 물론 한국의 종교인들이 종교의 심층을 엿보고 이를 열린 마음으로 체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오강남이 뽑은 영성의 거인 60인은 모두 종교의 심층을 깨치고 삶으로 그것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이는 종교계의 '60인보人譜'이자 ‘종교란 무엇인가’의 해답을 찾는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이다. 세상을 읽는 합리적 이성의 창에 금이 가고, 물신이 지배하는 욕망과 혼돈의 세상에서 평화와 궁극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 ‘영성’이라는 지도는 더욱더 긴요한 요청이 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영적 지도자들의 헌신과 신념의 삶을 읽어나가다 보면 끝내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상과 철학의 큰 물줄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세기 현대의 영성가들의 삶과 가르침은 더욱 생생하여 큰 울림을 전한다.

      류영모, 함석헌 등  참스승 60명 소개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고 한 현대 지성인의 사도 폴 틸리히. 인도 사상, 특히 자이나교의 ‘불살생’에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깨쳐 ‘생명 경외’를 근간으로 자신의 삶을 밀고나간 알베르트 슈바이처. 20세기 최고의 유대 사상가로 도덕경과 장자를 접하며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이 되는 ‘나와 너’의 ‘관계 철학’을 탄생시킨 마르틴 부버. 이밖에도 범종교적 에큐메니즘 신학자인 한스 큉, 해방신학의 아버지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심층 종교의 영성을 문학으로 그린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한국의 참스승 류영모, 함석헌 등 삶과 사회의 비전을 찾았던 지혜의 대가들의 목소리는 모든 종교의 심층에서는 서로 갈등이 없으며 활짝 열린 진리가 서로 넘나든다는 ‘깊고 기쁜’ 진리를 맛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