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까지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을 놓고 여론이 뜨겁다. 또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운영철학인 ‘공정한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다. 사회 각 부문에서 ‘공정’의 개념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공정’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원래 정치는 공명정대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정치가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정치 그 자체도 혐오스러운 것으로 변질되고 만다. 아무리 탁월한 정책도 국민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공직자나 리더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의 신뢰와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공익’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부정부패는 정치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직’을 중요한 가치로 삼지 않았다. “양심이 밥 먹여주냐?”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할 만큼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편법’이 필요악처럼 따라붙었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하다 보니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예전만큼 강조해서 가르치진 않는다. 또 일각에서는 ‘공정한 사회’ 운운하다보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불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불신사회가 만들어낸 기우일 뿐이다. 나 혼자 정직해봐야 손해라고 생각하니까 최소한의 힘만 쓰는 것이다. 실제로 신뢰가 경제성장률에 얼마만큼 기여하는지, 도덕성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사례들이 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사회의 신뢰수준이 10% 올라갈 때마다 경제성장률이 0.5~0.8%씩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사회의 신뢰수준이 10% 오른다고 가정하면 대략 10조원 이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니 이만하면 양심이 어마어마한 밥을 먹여주는 것이다.

또 서울대 교육학과 김금주 교수는 한 연구에서 ‘도덕지수가 높은 아이가 경쟁력이 높고, 행복지수가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양심적으로 사는 아이일수록 자기 장래에 대한 확신이 높고, 삶에 대한 태도도 낙관적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도덕성이 구호나 제도를 통해서 함양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학교시험에서는 도덕이 가장 쉬운 과목일지 몰라도 실전에서는 도덕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과목도 없다. 특히 청렴도가 떨어지는 우리사회는 도와 덕을 가르치기에 모순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배운 도덕이 교실 밖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배운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가 의식적으로 좋은 본보기를 많이 보이는 것이 현재로선 유일한 해결책이다.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작년에는 OECD 회원국 가운데 24번째로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했다. 이것은 64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원조국으로 탈바꿈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내가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이런 ‘코리아의 기적’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가청렴도나 국민의 행복지수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품격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국격 향상은 먼데 있는 게 아니다. ‘홍익하며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가 되면 국격은 저절로 올라간다. 국격을 훼손하는 주범이 무엇인가? 바로 ‘나만, 내 자식만,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가치관이다. 이 패러다임이 우리의 시야를 협소하게 만들고 부도덕하게 만든다. 낡은 패러다임 속에서 질주하는 자동차를 멈추려면 “이게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나의 성공이 타인의 성공과 연결돼 있고, 남을 위한 일이 곧 나를 돕는 일임을 자각할 때 시야는 넓어지고 삶은 적극적으로 변한다. 서로가 홍익하는 마음을 낼 수 있을 때 이 사회의 진정한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국학원 설립자 www.ilchi.net